10년간 마이너스 성장...팬데믹 계기로 '대반전'

변압기가 ‘상전벽해(桑田碧海)’했다.

내수 출혈경쟁의 대명사에서 K-전력기기의 글로벌 성공모델을 만들어가며 새 신화에 도전하고 있다. 

특히 그동안 수출 시장에서 소외되던 중소기업들이 세계 무대에서 실질적 성과를 거두며 잠재력을 폭발하고 있다.

본지는 K-전력기기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 있는 변압기의 수출 현황과 업체들의 움직임, 글로벌 경쟁력을 지속하기 위한 과제 등을 시리즈로 짚었다. [편집자주]

‘슈퍼 사이클’, ‘역대급 퍼포먼스’, ‘쇼티지(shortage)’.

최근 변압기를 두고 회자되는 대표적 수식어들이다.

한때 좁은 내수 시장을 두고 과당 경쟁을 벌이며 출혈의 상징으로 평가받던 변압기는 이제 수출의 대명사로 대반전을 이뤄냈다.

그동안 현대, LS, 효성 등 대기업이 주도하던 변압기 수출은 2010년대 초반 반덤핑 이슈가 촉발되기 전까지만 해도 완만한 상승추세를 이어갔다.

그러나 미 행정부가 국내 대기업이 수출하는 변압기에 대해 2012년부터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면서 급제동이 걸렸다. 미국은 국내 변압기 수출의 약 40%를 차지하는 최대 시장이다.

반덤핑 이슈 여파로 북미 변압기 수출은 2010년 4억5700만달러를 넘었으나 2020년 1억5200만달러에 그쳐 10년 사이 3분의 1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같은 기간 초고압변압기 수출도 70% 급감했다.

전체 변압기 수출 역시 2015년을 기점으로 10억달러를 좀체 넘지 못했다.

대기업이 수출 시장에서 고전하던 사이, 중소기업들은 좁은 내수시장을 놓고 과당경쟁을 벌였다. 한전 배전용 변압기 단가입찰도 해마다 응찰업체가 늘어나며 살얼음판을 걸었다. 

그러나 아무도 예상치 못하던 드라마틱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팬데믹은 변압기 업계에 전례 없는 기회가 됐다.

주요 원자재의 공급망 붕괴와 이에 따른 기존 업체들의 납기 지연, 북미시장의 변압기 교체 수요 등 3박자가 맞물리며 다국적 기업과 로컬 기업이 장악했던 시장을 우리 기업들이 공략할 틈이 생긴 것이다.

때마침 10년 동안 대기업을 괴롭히던 반덤핑 이슈도 2022년 말 최종 승소하면서 일단락됐다.

이때부터 대기업이 주도하는 초고압변압기를 비롯해 중소기업들의 배전용 변압기도 수출 고속 열차에 본격 탑승했다.

과당경쟁의 ‘미운오리’에서 수출 효자 품목으로 환골탈태하며 변압기 사업의 판 자체를 바꾸는 데 성공한 것이다. 

전체 변압기 수출은 2022년 8억1900만달러를 기록하며 10년에 걸친 마이너스 성장을 벗어났고 2021년 5억4500만달러, 2023년 15억800만달러로 불과 3년만에 세 배 가까이 급증했다. 

특히 2021년 1억6500만달러 수준이던 미국 수출도 2022년 2억9000만달러, 지난해 8억1000만달러로 불과 3년 동안 5배에 육박하는 역대급 성장을 실현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전압을 바꾸는 변압기가 수출 시장의 판을 바꾸는 전력기기로 거듭났다”며 “최소한 향후 5년 동안 글로벌 변압기 수요는 북미지역을 중심으로 가파른 증가세를 유지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여기에 세계적으로 AI를 위한 데이터센터 설립이 많아지면서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변압기 수요가 대폭 늘어날 것이란 전망도 더해지고 있다.

“You need transformers to run transformers. They’re running out of transformers to run transformers. Then, the next shortage will be electricity.” (변압기를 작동하려면 변압기가 필요하다. 변압기를 작동하기 위한 변압기가 부족해질 것이다. 다음 쇼티지는 전기가 될 것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의 언급대로 전기와 변압기 쇼티지가 현실화된다면, 지금은 장기 호황의 초입에 불과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미 최소 3~4년치 일감을 확보한 업체들은 앞다퉈 설비 확충에 나서는 등 변압기 슈퍼사이클에 대비한 선제적 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다.

전기산업진흥회는 올해 변압기 수출이 지난해보다 42.7% 증가한 21억5300만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 수출도 전년보다 87.8% 늘어난 15억2100만달러 수준으로 예상했다. 이 같은 전망치는 모두 역대 최고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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