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케일 루마니아 사업에 삼성물산 컨소시엄 ‘뭉칫돈’ 투자
현대건설-홀텍, 영국 SMR 첫 호기 경쟁입찰 숏리스트 올라
“SMR 전망 지나치게 낙관적…관건은 첫 호기 성공, 경제성”

지난해 말 소형모듈원전(SMR) 대표 격인 뉴스케일의 첫 호기 프로젝트가 무산되자 곧장 시장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이 쏟아져 나왔다. 서방세계 유일한 인증 노형이라는 점을 앞세워 승승장구하던 뉴스케일의 발목을 잡은 것은 경제성 문제였다.

한동안 SMR 시장 자체가 가라앉을 것이란 우려가 나왔지만, SMR 첫 호기 건설을 향한 물밑 움직임은 여전히 활발한 모습이다. 한국 기업도 이에 뒤질세라 첫 호기 사업에 참여할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뭉칫돈을 들고 해외로 나가 현지 수요처, 개발사 등과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첫 호기 가동에 성공하고 난 뒤 시장 성장세를 지켜봐야 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경제성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개발사별로 목전에 둔 첫 호기 건설을 위한 각종 인허가를 앞두고 있어서다. 첫 호기에 성공하면 한국 기업이 가져갈 파이도 덩달아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6월 13일(현지시간)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JW Marriott 호텔에서 오세철 삼성물산 사장(왼쪽 세 번째), Cosmin Ghita 루마니아원자력공사 사장(왼쪽 네 번째), Robert Temple 뉴스케일파워 고문(왼쪽 다섯 번째)이 루마니아 SMR 공동 추진 MOU에 서명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삼성물산]
지난해 6월 13일(현지시간)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JW Marriott 호텔에서 오세철 삼성물산 사장(왼쪽 세 번째), Cosmin Ghita 루마니아원자력공사 사장(왼쪽 네 번째), Robert Temple 뉴스케일파워 고문(왼쪽 다섯 번째)이 루마니아 SMR 공동 추진 MOU에 서명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삼성물산]

◆휘청대던 뉴스케일, 韓 자금으로 기사회생…루마니아 사업 ‘꿈틀’= 지난해 11월 뉴스케일은 미국 아이다호 국립연구소 부지에 SMR 6기를 짓기로 한 프로젝트가 취소된 뒤 크게 휘청였다. 미 에너지부(DOE)로부터 최대 14억달러(약 1조8600억원)의 지원을 약속받았던 ‘플래그십 프로젝트’가 무너진 것이다.

그랬던 뉴스케일이 최근 루마니아에서 재도약을 꾀하고 있다. DOE가 빠져나간 공백은 한국 자금으로 메꾼다. 앞서 뉴스케일은 루마니아 원자력공사(SNN)와 함께 루마니아 SMR 개발·운영사인 로파워(RoPower S.A.)를 설립했는데, 업계에 따르면 한국 측이 지분투자를 통해 가세한다. 로파워와 한국 측이 새롭게 합작법인을 세우는 방식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뉴스케일의 루마니아 사업에 참여하는 한국 기업은 삼성물산과 한국성장금융투자운용의 정책형 뉴딜펀드, 해외인프라도시개발지원공사(KIND) 등 3사다. 이들이 DS프라이빗에쿼티의 사모펀드에 출자한 뒤 해당 펀드가 루마니아 사업에 직접 투자하는 순서로 진행된다. 이와 관련 KIND는 이사회를 통해 지난해 10월 ‘루마니아 소형모듈형 원자력발전소(SMR) 건설·운영 사업에 대한 지분증권 투자의 건’을 의결한 바 있다.

루마니아 사업은 도이세슈티 지역에 위치한 석탄화력발전소를 462MW 규모의 SMR로 교체하는 사업으로, 오는 2029년쯤 상업운전이 목표다. 삼성물산 컨소시엄은 전체 사업에 대한 상세설계(FEED; Front-End Engineering and Design)와 설계·조달·시공(EPC) 수주를 목표로 한다. FEED 참여 조건으로 1000억원 정도의 한국 자금이 투자됐는데, EPC 단계에 진입하면 투자 규모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 뉴스케일은 14일(현지시간) 열린 컨퍼런스 콜에서 루마니아 SMR 사업이 2단계 FEED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FEED는 삼성물산과 미국 엔지니어링 회사인 플루어(Fluor)가 맡을 예정이다. 통상 1년~1년 반 걸리는 FEED 일정을 고려할 때 EPC 발주 시점은 2026년 이후로 전망된다.

지난 5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 위치한 주영한국대사관에서 (왼쪽부터) 줄리아 킹 홀텍 영국 수석고문, 릭 스프링맨 홀텍 사장, 윤영준 현대건설 사장, 캐시 트레버스 모트 맥도널드 그룹총괄사장, 리오 퀸 발포어 비티 회장이 영국 원자력청 SMR 기술 경쟁 공동 참여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현대건설]
지난 5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 위치한 주영한국대사관에서 (왼쪽부터) 줄리아 킹 홀텍 영국 수석고문, 릭 스프링맨 홀텍 사장, 윤영준 현대건설 사장, 캐시 트레버스 모트 맥도널드 그룹총괄사장, 리오 퀸 발포어 비티 회장이 영국 원자력청 SMR 기술 경쟁 공동 참여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현대건설]

◆“英, 한국 SMR 첫 호기 맡겨달라”…활발한 물밑 합종연횡= 현대건설도 원자력 분야의 글로벌기업과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미국과 유럽의 SMR 사업에 진출할 교두보를 마련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현대건설은 2021년 11월 미국 SMR 개발사 홀텍(Holtec International)과 독점 계약을 맺고, SMR 개발과 사업추진 등 원전 밸류체인 전반에 걸쳐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고 있다. SMR 2차계통에 대한 상세설계(FEED)와 시공은 현대건설이 맡는다.

현대건설과 홀텍은 영국 SMR 사업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두 기업은 ‘팀 홀텍’을 꾸려 영국 원자력청(GBN)이 주관하는 SMR 프로젝트 경쟁 입찰전에 뛰어든 상태다. 현재 6개 SMR 개발사로 좁혀진 숏리스트엔 팀 홀텍도 포함돼 있다. 현대건설에 따르면 선정된 최종 SMR 개발사에 대한 투자결정이 2029년 내로 완료되면, 2030년쯤 영국 최초의 SMR 건설에 본격 착수할 예정이다.

아울러 현대건설은 2022년 영국 엔지니어링 기업 발포어 비티(BalfourBeatty)와 함께 영국 정부의 미래원자력활성화기금(FNEF, Future Nuclear Enabling Fund)에 선정돼 영국 원전 활성화를 위한 신규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또 홀텍과 함께 동유럽 SMR 등 글로벌 원전 프로젝트 발굴에 집중하고 있다.

시공능력평가 상위 10위에 들어간 건설사 2~3곳은 현재 국가연구개발사업으로 진행 중인 혁신형 SMR의 사업화에 참여를 희망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혁신형 SMR은 지난해 출범한 혁신형 SMR 기술개발 사업단에서 2028년까지 3992억원을 투입해 표준설계를 마치고, 원안위로부터 인허가를 받기로 돼 있다.

이처럼 한국 기업과 자금, 해외 개발사, 수요처 등이 한데 얽혀 SMR 사업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는 데 대해 원전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제부터 SMR 기술에 대한 진정한 옥석 가리가 시작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SMR 기술개발 및 주요 참여사 현황 자료. [사진=에너지전환포럼]
SMR 기술개발 및 주요 참여사 현황 자료. [사진=에너지전환포럼]

◆‘600조원 시장’ 전망의 허와 실…관건은 첫 호기, 그리고 경제성= 그동안 SMR 시장에 대해선 500조원, 600조원을 넘어설 것이란 낙관적인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이런 전망에 대해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대체로 “뉴스케일이나 GE-히타치 등 주요 개발사의 SMR 노형이 첫 호기 가동에 성공하고, 시장이 폭발적으로 커질 때를 전제로 한 수치로 보는 편이 맞다”고 말했다.

실제로 SMR 시장은 적어도 첫 호기 상용화에 성공해야만 성장세에 대한 전망이 가능할 정도로 불확실성이 크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폴라리스 마켓 리서치’에 따르면 2032년 SMR 시장 규모는 145억8241만달러(약 18조7836억원)로 예측됐다. 이는 SMR 첫 호기 프로젝트 위주로 추정한 수치다. SMR 시장을 600조원으로 추산한 장밋빛 전망과 비교하면 고작 3%에 불과하다.

원전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뉴스케일의 미국 내 첫 호기 프로젝트 취소 여파로 SMR 기술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만으로 대규모 투자를 받거나 시장의 주목을 받기는 어려워 보인다”며 “시장이 SMR에 대해 냉혹하게 인식하는 동안 차분히 기술개발과 인허가에 집중하는 개발사만 시장에 안착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 점에서 우리 민간 기업이 국내외에서 타진하는 SMR 첫 호기 프로젝트가 성공해야만 향후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 그림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경제성 문제를 극복하는 게 또 다른 관건으로 꼽힌다. 결국 뉴스케일의 미국 첫 호기 프로젝트가 무너진 것도 경제성 문제가 근본적인 원인이어서다. 일례로 뉴스케일 의 균등화발전비용(LCOE)이 기존 MWh당 58달러에서 지난해 초 89달러로 약 53% 상향 조정된 바 있다.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른 보조금(30달러)과 부지 매입비용이 제외된 점을 고려하면 실제 LCOE는 이보다 훨씬 높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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