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이어진 대기업 EV 충전시장 진출
미래 먹거리·고유 사업과의 시너지 기대
투자받고 경쟁 vs 매각...갈림길 선 中企
"中企도 역량 키워야...공정한 규칙 마련도"

SK시그넷의 자동충전시스템.
SK시그넷의 자동충전시스템.

지난해부터 시작됐던 대기업의 전기차 충전시장 진출이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SK, GS, 현대차, 한화 등 전력, 에너지, 완성차를 대표하는 기업들이 상당수 진출하다 보니 이제는 큰 이슈 거리도 안 되는 상황이다. 시장 진출을 밝히며 내세운 명분은 대부분 '미래 먹거리'다. 아직은 수익모델 정립이 어려운 시장이지만 시장 선점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인 것이다. 다만 시장 잠재력이 아직 터지지 않다 보니 대기업의 진출에 기존에 시장을 키워왔던 중소기업들은 고민이 많다. 연못에 뛰어든 큰 물고기에 작은 물고기가 어떻게 생존할 수 있을지 이목이 쏠리고 있다.

◆SK 필두로 현대차·GS·롯데·LS·한화까지 진출

국내 주요 대기업들이 전기차 충전사업을 미래 먹거리로 선정하며 경쟁적으로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누가 먼저 시작했느냐에 대한 이견은 있지만 첫 포인트를 찍는다면 SK의 시그넷EV 인수를 꼽을 수 있다.

지난해 4월 SK 그룹의 지주사인 SK(주)는 전기차 초고속충전기 및 솔루션 제공업체인 시그넷EV(현 SK시그넷)를 290억원(지분 55.5%)에 인수하며 대기업 진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이후로 SK에너지, SK브로드밴드, SK렌터카 등도 전기차 충전 운영 사업자에 등록하며 충전시업에 진출했으며 SK E&S는 최근 미국 전기차 충전업체 에버차지(EverCharge)를 인수하기도 했다.

같은 해 7월 GS그룹의 에너지 계열사인 GS에너지는 국내 2위 전기차 충전서비스업체인 지엔텔과 합작법인 '지커넥트'를 설립했다. GS에너지는 합작법인 지커넥트를 통해 전기차 충전에 필요한 전력 생산과 판매에 이르는 밸류체인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10월에는 롯데정보통신이 충전기 제조업 2위 중앙제어의 지분 71.14%(약 690억원)를 인수하며 충전시장에 진출했다. 롯데는 일찍이 모빌리티 사업을 미래 먹거리로 낙점, 스마트 인프라, 자율주행차 등과 함께 전기차 충전사업을 핵심사업으로 두고 추진한다 계획이다.

현대차의 이피트 충전소.
현대차의 이피트 충전소.

현대차그룹은 초고속충전 브랜드 이피트(E-pit)를 앞세워 시장을 선도한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10월 국내 최대 민간 충전업체 중 한 곳인 한국전기차충전서비스의 경영권을 확보했으며 올해 4월에는 롯데그룹, KB자산운용과 '전기차 초고속충전 인프라 특수목적법인(SPC) 설립해 초고속 충전망을 전국적으로 확보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올해는 LS그룹이 LS E-Link(LS이링크)를 설립했으며 한화그룹의 한화솔루션이 전기차 충전 브랜드 한화모티브를 출시하고 본격적인 전기차 충전사업에 나섰다. LS는 E1이 운영 중인 전국 LPG 충전소에 급속충전기를 설치하고 한화솔루션은 전기차 충전 인프라 시공에서부터 컨설팅, 투자, 운영, 유지보수에 이르는 종합솔루션을 고객들에게 제공할 예정이다. 이외에도 휴맥스, 원익, 대유플러스 등 중견·중소기업들도 시장에 진출했다.

◆잠재력에 대기업들 몰려들어...유럽도 대기업으로 재편

대기업이 이처럼 전기차 충전사업에 경쟁적으로 나서는 이유는 전기차 충전시장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 때문이다. 전기차 충전사업은 전기차 보급량과 비례하는데 지난해부터 전기차 판매량이 급격하게 늘면서 충전시장 규모 역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해외 분석보고서에서도 전기차 충전시장의 전망은 밝다. 프리시던스 리서치에 따르면 전 세계 전기차 충전 인프라스트럭처 시장규모는 2020년 149억달러(약 18조원)에서 2027년 1154억달러(약 142조원)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대기업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될 것이라는 전망은 이미 예견돼왔다. 아서디리틀(Arthur D Little)의 '공공 전기자동차 충전의 진화' 보고서에 의하면 유럽은 초기(모종) 단계를 지나 기존 사업자가 시장 지위 확보를 위해 대규모 투자를 시행하거나 새로운 참여자(업체)가 인수합병 등으로 충전시장에 뛰어드는 강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여기에는 이브이박스(EVBox), 차지포인트 등 순수 충전기 사업자를 비롯해 SHELL, BP, OMV 등 에너지 기업, 폭스바겐, BMW 등 완성차 업체도 포함된다. 유럽은 우리나라보다 먼저 대기업이 충전시장에 진출하는 흐름을 겪고 있는 것이다. 보고서 분석에 적용하면 우리나라는 모종→강화→성장→수확 4단계 중 모종 단계 후반으로 시장 경쟁이 심화되고 유럽처럼 대기업 진출이 활발해지는 단계로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대기업 진출은 '블루오션'인 전기차 시장 선점을 위한 전략으로 풀이되며 이들을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될 것"이라며 "이를 통해 충전 인프라 보급 확대 및 서비스의 고도화, 충전사업 해외 진출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현대차의 V2G, SKGS의 주유소 급속 충전 등 대기업 주요 사업과 전기차 충전사업 간의 시너지가 시장 활성화 및 충전 기술 발전, 고객 편의 제공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 '버티거나 나가거나'...고객 피해 우려도

대영채비의 급속충전기 라인업.
대영채비의 급속충전기 라인업.

대기업 진출이 시장의 규모를 키우고 활성화시킬 것이라는 긍정적인 반응도 있지만 중소기업들을 사멸시킬 것이라는 부정적인 의견도 나온다. 충전사업이 아직 온전한 수익모델이 나오는 시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본이 많은 대기업은 수익모델이 완성될 때까지 버틸 수 있지만 중소기업은 더욱 치열해진 경쟁상태를 버티기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살아남기 위한 중소기업들의 전략도 주목된다.

대기업이 시장에 진출하는 모습은 인수와 설립 등 두 가지다. 그중에서도 대기업들은 시장 장악력을 그대로 가져가기 위해 업계 상위 업체를 인수하는 방법을 주로 사용했다. 소위 '잘나가는 업체'가 대기업 자본까지 등에 업어 더욱 막강한 업체로 거듭났다.

남은 업체들도 시장에서 살아 남기 위한 '생존 전략'을 수립했다. 소위 '충전기 제조 빅3' 중 한 곳인 대영채비는 스틱, 휴맥스로부터 600억원(지분 20%)을 투자받으며 자생력을 키웠다. 대영채비는 국내 충전기 제조와 충전 운영도 함께 하고 있으며 미국 법인과 현지 CKD(반조립) 생산 공장 설립해 미국 시장 진출도 시작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모던텍은 제이앤프라이빗에쿼티(PE)로부터 137억원을 투자받았으며 에버온도 SK네트웍스로부터 100억원을 투자받았다. 이외에도 클린일렉스, 차지인, 타디스테크놀로지스, 플러그링크 등 대부분의 중소 전기차 충전 관련 업체가 투자받아 경쟁에 대비하고 있다.

매각을 염두에 둔 업체도 있다. 업체의 가치를 키우고 엑시트(Exit)하는 것도 시장에서 흔한 모습이다. 다만 정부 보조금을 지원받아 설치해 운영 중인 충전기를 자사 자본인 것처럼 금액을 책정해 매각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존재한다.

업계 관계자는 "집주인이 바꿨을 때 세입자가 이전에 합의했던 사항이 무효화 될 수 있듯 매각 시 인수사의 경영방침에 따라 운영을 맡겼던 아파트, 빌딩 등의 고객도 피해를 볼 수 있다"며 "엑시트가 예상되는 업체에 대한 언급은 어렵지만 수익성 여부와 관계없이 자본을 투자받아 보급만 줄기차게 하는 업체가 대부분 그런 업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도 역량 키워야...공정한 규칙 마련도 필요

일각에서는 중소기업이 경쟁에서 불리하다는 '볼멘소리'를 하기 전에 경쟁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시장이 성숙단계에 들어가면 충전기 품질이나 AS 역량 등이 안정적인 업체로 시장이 재편될 것"이라며 "대기업 vs 중소기업이란 경쟁 키워드에 집중하기보단 중소기업도 살아남을 수 있는 역량을 보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실제 최근 환경부가 추진하는 2022년 전기차 완속충전시설 보조사업 수행기관 선정업체 과정을 보면 충전기 제조업계 상위 업체를 인수했던 대기업이 탈락하기도 했다. 유지보수 역량은 우수하지만 운영 서비스에 대한 레퍼런스가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충전기 보급에 이어 관리 이슈가 커지고 있어 정부도 이런 측면에서 유리한 대기업을 선호하는 분위기가 있다"며 "정부가 공정한 경쟁이 될 수 있도록 규칙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전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