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EA, 2016~2021년 상류부문 투자 1/3 감소
골드만·모건 “세 자릿수 유가 보게 될 것” 경고
자원개발 융자 2012년 2000억→2020년 349억 급감
해외 자원개발 강화로 비상시 수급력 강화해야

한국석유공사의 미국 이글포드 육상광구 시추 설비.
한국석유공사의 미국 이글포드 육상광구 시추 설비.

[전기신문 윤병효 기자] 전 세계가 에너지전환을 통해 탄소중립으로 향해 가고 있지만 아직 실상은 석유시대에 살고 있다. 세계 주요 기관들은 올해 석유 수요가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2019년을 넘어 역대 최대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에 비해 세계 공급력은 수요를 충분히 뒷받침해 줄지 의문이다. 2016년부터 상류부문(개발·생산) 투자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보통 투자 결정부터 생산까지 10년의 기간이 소요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최근 에너지 가격 상승세는 시작일 뿐 내년부터 더 큰 상승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섞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는 에너지 및 광물의 93%를 해외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수급 위기에 대한 피해를 고스란히 맞을 수밖에 없다. 특히 방파제 역할을 하는 국내 기업의 국내외 자원확보 비중인 자주개발률도 2016년 이후로 계속 감소해 매우 낮은 수준이다.

문재인 정부는 자원외교를 외면했지만 차기 정부는 해외 자원개발을 강화하는 등 쓰나미급 에너지 위기에 대한 대비책을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카자흐 LPG 폭동 사태…불안정한 시장 단면

외신에 따르면 새해 벽두부터 카자흐스탄의 전국 곳곳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수천 명의 시위대는 지방정부 건물과 차량 등을 불태우며 정부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이에 카심 조마르트 토카예프 대통령은 시위대에 조준사격을 명령하는 등 강경 대응으로 맞서고 있어 시위는 쉬 끝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번 사태의 근본적 이유는 부의 불평등이지만 시위를 촉발한 것은 LPG값 상승이다. 지난해까지 50텡게(138원) 수준이던 가격은 최근 120텡게(331원) 수준으로 2배 이상 올랐다. 그동안 정부가 보조금 및 가격상한제로 가격을 통제해 왔는데 최근 국제가격이 계속 오르자 낮은 가격이 지속 불가능하다며 상한제를 해제한 것이 상승의 이유이다.

카자흐스탄은 석유매장량 12위, 가스매장량 15위의 자원부국이지만 이런 나라도 버티지 못할 만큼 세계 에너지 가격은 지난 1년 동안 폭등 수준으로 올랐다.

유럽 브렌트유 가격은 배럴당 지난해 1월 55.32달러에서 올해 1월 80.7달러로 46% 올랐으며 유럽 천연가스 가격(UK NBP)은 MMBtu당 지난해 1월 7달러대에서 올해 1월에는 20달러대 후반으로 200% 이상 올랐다. 특히 유럽 천연가스 가격은 지난해 12월 중순에는 역사상 최고인 59달러까지 폭등하기도 했다. 카자흐스탄 시위를 일으킨 국제 LPG(사우디, 부탄) 가격도 t당 지난해 1월 530달러에서 11월 830달러까지 올랐다가 올해 1월에는 710달러로 하락했다.

유연탄 가격(호주 뉴캐슬 FOB)은 t당 지난해 1월 55.19달러에서 12월 102.31달러로 85% 상승했고 니켈 가격(LME 현물)은 t당 지난해 1월 1만7848달러에서 올해 1월 2만703달러로 16% 올랐다. 배터리 원료인 탄산리튬 가격(중국 기준)은 kg당 지난해 1월 58.38위안에서 올해 1월 269.17위안으로 360%나 올랐다.

우리나라 석유 및 가스 자주개발 실적. 자료:해외자원개발협회
우리나라 석유 및 가스 자주개발 실적. 자료:해외자원개발협회
◆상류 투자는 급감했는데…올해 석유수요 역대 최고 전망

에너지‧광물 가격의 상승은 2016년부터 발생한 원자재 가격 하락 속에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치면서 상류부문 투자 및 생산이 급감한 가운데 지난해 하반기부터 수요가 되살아 나면서 수급이 타이트해져 발생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문제는 현재의 자원 가격 상승은 시작일 뿐 앞으로 더 큰 상승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21년까지 석유가스 상류부문 투자 규모를 보면 2011~2015년 동안 연평균 6500억달러가 투자됐으나 2016~2021년에는 연평균 4200억달러가 투자돼 기존보다 1/3이 감소했다. 보통 투자부터 생산까지 10년가량이 소요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에너지 수급은 더욱 타이트해 질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미국 투자기관인 골드만삭스와 JP모건은 늘어나는 에너지 수요와 투자의 미스매치로 향후 세 자릿 수 국제유가를 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압둘 아지즈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석유부 장관도 석유 수급 불균형에 대해 지속적으로 경고하고 있다.

S&P플래츠는 2020년 유가가 급락하면서 투자 규모가 이전보다 약 24% 감소했으며 2021년에는 유가가 회복했지만 투자 규모는 약 8% 증가에 그쳤다고 밝혔다.

이처럼 상류부문 투자 급감으로 공급력이 떨어진 가운데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는 올해부터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미국에너지정보청(EIA)은 올해 글로벌 석유 수요량을 1억46만배럴로 예측해 이전의 역대 최대였던 2019년보다 20만배럴 많을 것으로 봤고 석유수출국기구(OPEC)도 올해 수요량으로 1억79만배럴로 예측해 2019년보다 60만배럴 많을 것으로 봤다. JP모건 역시 올해 9980만배럴로 예측해 2019년보다 20만배럴 많을 것으로 봤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올해 수요가 2019년과 거의 같은 9953만배럴로 예측했다.

◆해외 자원개발 융자 2012년 2000억→2020년 349억

우리나라는 에너지 광물 자원의 93%를 수입하고 있다. 세계 에너지 시장이 약간만 출렁대도 국내 시장에는 쓰나미급으로 닥쳐 온다.

우리나라는 태생적으로 자원이 없기 때문에 에너지 파동을 조금이라도 덜 받으려면 국내 기업이 해외 자원을 확보해 위기 시 이를 들여오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에서의 자원외교 실패가 이후 박근혜 정부에 이어 문재인 정부까지 트라우마로 미치면서 2016년 이후 해외 자원개발 투자가 급감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정부가 해외 자원개발을 장려하기 위해 기업에 지원해주는 융자 규모는 2012년 2000억원에서 2015년 1438억원으로 줄었고 2016년에는 아예 0원이 됐다. 이후 2017년 1000억원이 다시 책정됐지만 2018년 367억원, 2019년 369억원, 2020년 349억원으로 크게 감소했다.

해외자원개발협회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우리나라의 하루당 원유 수입량은 267만8000배럴, 천연가스는 13만1500t이다. 이 가운데 국내 기업이 국내외에서 확보한 자주개발 물량은 원유 20만2800배럴, 천연가스 2만7200t으로 자주개발률은 각각 7.6%, 20.7%에 불과하다.

또한 6대 전략광종의 자원개발률도 2020년 기준 유연탄 34.3%, 철 34.3%, 우라늄 1.4%, 동 12.2%, 아연 21.5%, 니켈 47.2%로 평균 28%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 가운데 자원공기업이 어렵게 확보한 마다가스카르 니켈광산은 정부 방침으로 매각이 진행 중이다.

◆국회·정부, 자원정책 기준 경제성 아닌 안보로 전환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와 같은 자원빈국이 자원 수급망을 안정적으로 갖추려면 무엇보다 해외 자원개발 역량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신현돈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는 지난해 11월 30일 자원안보기본법 제정 국회토론회에서 “우리나라 연간 에너지자원 수입액이 120조원인데 여기의 1%도 해외 자원개발에 투자하지 않을뿐더러 7~8년간 방치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단기적으로는 국내 비축 및 공급처 확보를, 장기적으로는 해외 자원개발을 통한 확보와 공급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행히 차기 정부에서는 자원 수급 정책이 대폭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국회와 정부가 자원개발 정책에 대한 판단 기준을 경제성이 아닌 안보개념으로 전환해 공기업뿐 아니라 민간기업에도 의무를 부여하는 등 자원 수급망을 대폭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황운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 예정인 자원안보 기본법은 여러 법령에 분산돼 있는 자원안보 관련 정책을 종합하고 이와 함께 국가 차원에서 자원안보를 정밀하게 진단하고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는 데 목적이 있다.

정부는 이를 토대로 자원개발 공기업의 기능을 회복하고 융자 확대 등 지원 강화를 통해 자원개발 생태계를 복원하는 한편 중장기적 관점에서 전문인력까지 양성하는 등 자원안보력을 대폭 강화하는 정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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