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 없이는 ICT·AI·빅데이터도 4차 산업혁명의 화두 같은 ‘초연결’도 없다
전력은 4차 산업혁명의 주춧돌이자 문명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필수 요소다

4차 산업혁명은 정보통신기술(ICT)이 각종 제품·서비스와 융합하며 사회 전반에 혁신적 변화가 일어나는 국면을 뜻한다. 2016년 독일 경제학자 클라우스 슈바프(Schwab)가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서 처음 언급한 뒤 21세기와 미래 사회를 규정할 핵심 개념으로 인용되기 시작했다. 너무 막 쓰이다 보니 “4차 산업혁명이 아닌 사기꾼의 ‘사짜’ 산업혁명”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4차 산업혁명은 우리 삶을 바꿔놓고 있다. 특히 혁명의 한 축인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는 대중에도 친숙한 개념이 됐다. 유튜브 첫 화면에 뜨는 인기 영상은 AI가 사용자의 과거 검색 이력 등을 분석해 좋아할 만한 영상을 추천해주는 것이다. 2016년 바둑 기사 이세돌을 꺾은 알파고는 수만 장에 달하는 기본 빅데이터 없이 존재할 수 없었다.

이 와중에 너무 당연해서 잊는 존재가 있다. 바로 전력이다. 전력 없이는 ICT도, AI도, 빅데이터도, 4차 산업혁명의 화두 같은 ‘초연결(超連結)’도 없다. 전력은 4차 산업혁명의 주춧돌이자 문명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필수 요소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엔 전력 소비 방식도 과거와 달라진다. 가장 큰 차이점은 전력 수요와 공급의 파편화다. 미래는 지금처럼 대규모 발전소가 거점별 전력 공급을 책임지지 않는다. 대신 태양광·풍력·지열 등 신재생 에너지를 활용한 마이크로그리드(Microgrid) 시스템이 ‘동네 발전소’역할을 한다.

마이크로그리드는 소규모 발전·공급이 가능한 독립형 전력망이다. 중앙 집중형 발전 시스템의 문제는 정확한 전력수급이 어렵다는 것이다. 너무 많으면 처치가 곤란하고, 너무 모자라면 셧다운(Shutdown)에 빠질 수 있다. 송전 제약문제도 한계에 다다랐다. 송·변전 시설에 대한 비용 상승과 민원 증가로 추가적인 송전시설 건설이 어려워진 것이다.

마이크로그리드는 반대다. 생산량이 적기 때문에 수요 예측이 쉽고, 능동적인 관리가 가능하다. 변동비도 제로(0)에 가까워 가격 경쟁력까지 높다.

마이크로그리드 확산은 소비 패러다임의 변화를 뜻한다. 발전 설비 분산화는 대형 발전소의 단방향 발전·공급 방식이 아닌 양방향 발전을 추구한다. 소비자는 태양광, 연료전지, G2V 등의 발전 시설을 통해 전력 구매·판매자 역할을 같이 수행할 수 있다. 즉, 프로슈머(Prosumer·제품 생산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는 소비자)가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전력 수요는 2010년 이래 꾸준히 상승세다. 전력거래소 정보통계시스템(EPSIS)에 따르면 2010년 49만 5028GWh(기가와트시)를 기록한 국내 총발전량은 2019년 58만 5301GWh로 약 10만GWh가 늘어났다. 20년 전과 비교하면 더 극적이다. 2000년 국내 총발전량은 29만 443GWh로, 2019년의 1/2 수준이다. 1인당 소비 전력량도 5067kWh (킬로와트시)에서 1만39kWh로 같은 기간 두 배 가까이 상승했다.

흐름만 보면 계속 수요가 늘어나는 게 합리적 결론 같다. 전문가들 생각은 반반이다. 먼저 시간이 갈수록 수요가 줄어든다는 주장도 있다. 정교한 수요 예측, 소량 발전 시스템의 보편화로 잉여 전력 등이 감소하고, 수요도 감축된다는 내용이다.

잉여 전력 감소는 전력 효율 향상과 동의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는 전력 ‘생산량’보다 ‘효율성’이 더 중시될 것이다. 여기서 효율성은 인풋(Input)·아웃풋(Output)의 입출력 개념이 아닌 각 기관·조직·단체가 얼마나 전력을 밀도 있게, 손실 없이 쓰는지를 뜻한다. 전력 분야에도 일종의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같은 개념이 생기는 셈이다.

4차 산업혁명이 전력 수요를 부채질한다는 주장의 핵심은 이렇다.

스마트 공장, 스마트 홈 등 사물인터넷(IoT) 분야의 성장이 다른 산업의 소비 감소를 상쇄해 전체적인 전력 수요는 증가하게 된다는 것. 실제로 정부는 지난해 발표한 ‘제9차 전력수급계획’에서 스마트 홈 분야의 전력 수요 증가를 예상했다.

그런데 수요 증감만큼 중요한 게 있다. 의존도다. 산업혁명 이래 전력은 모든 시스템을 떠받치는 핵심 자원이 됐고, 기술이 발전할수록 중요성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특히 교통·환경·주거·치안·복지 등 모든 생활 기반 시설이 ICT로 움직이는 스마트 시티(Smart City)는 의존성을 더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스마트 시티에서의 모든 생활은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한다. AI도 데이터를 통해 판단하고 움직인다. 데이터의 수집, 보관, 처리, 유통은 데이터 센터를 통해 이뤄진다. 스마트 시티의 데이터 센터는 일반 센터와 달리 GPU를 기반으로 해 높은 용량의 전력이 필요하다.

글로벌 스마트 시티 선도 기업인 화웨이는 “2030년까지 전 세계 소비 전력의 3~13%는 데이터 센터에서 나올 것”이라 분석하기도 했다.

데이터 센터는 사람으로 따지면 ‘심장’이다. 심장이 멈추면 사망하듯, 데이터 센터가 멈추면 스마트 시티도 올스톱된다. 24시간 365일 운영되어야 한다. 이런 센터가 도시마다 수십, 수백 개씩 들어선다고 가정 해보자. 용량도 용량이지만, 안정적인 전력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해진다. 전력 의존도가 커질 수밖에 없다.

변화의 흐름 속에 전기공사업계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 첫번째는 송·배전망 등 인프라 수요 증가에 대비하는 것이다. 마이크로그리드 확대로 P2P(Peer to Peer, 이웃 간 거래) 전력 거래가 활발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2018년 전기사업법 개정으로 ‘소규모 전력 중개시장’ 제도가 도입되면서 이웃끼리 전력을 사고파는 게 가능해졌다. P2P 전력 거래의 장점은 사용자 간 자유로운 전력 이동으로 자원 활용을 최적화하고, 누진세 등의 걱정이 없다는 점이다. 거래는 블록체인을 통해 진행된다. 현재 한국전력공사는 전력 도매 거래에 쓸 자체 블록체인을 구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클라우스 슈바프 (독일 경제학자)
클라우스 슈바프 (독일 경제학자)
해외는 P2P 전력 거래가 어느 정도 자리 잡았다. 영국의 신재생 에너지 스타트업 오픈 유틸리티(Open Utility)는 사용자 간 잉여 전력 판매를 중개하는 플랫폼 ‘피클로(Piclo)’를 운영하고 있다. 30분 간격으로 전력 수요자와 공급자를 연결해주며 각자 제시한 판·구매 조건이 맞으면 거래가 성사되는 방식이다. 현재 굿 에너지(Good Energy)라는 재생 에너지 업체와 손잡고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두 번째는 인력 양성이다. 4차 산업혁명의 또 다른 특징은 ‘탄소 중립’ (탄소 배출량과 흡수량이 0이 되는 것)이다. 화석 에너지 시대가 가고 신재생 에너지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환경을 중시하는 스마트 시티와 소규모 발전의 대중화는 화석 에너지의 종말을 앞당기고 있다. 현행법(전기공사업법)상 신재생 에너지 설비는 전기 공사 자격증 보유자만 진행할 수 있다. 수요 증가가 예상되는 만큼 관련 인력 양성을 위한 적극적 지원이 필요하다.

마지막은 전문성 강화다. 에너지 저장 장치(ESS), 전기 자동차 등 새로운 산업의 등장은 전기공사업계에 기회가 될 것이다. 그러나 준비 없이 뛰어들었다가는 오히려 낭패를 볼 수 있다.

21세기 에너지 산업은 기존과 전혀 다르게 흘러갈 가능성이 크다.

익숙함과 결별하고 여러 산업 분야의 전문가와 교류하면서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하고, 전문성을 키우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슈바프는 4차 산업혁명의 필수 조건 두 가지로 ‘속도’와 ‘칸막이식 사고 지양’을 꼽았다. “빨리 움직이는 물고기가 느린 물고기를 잡아먹듯 속도가 중요”하고 “칸막이식 사고를 배척해야 시스템 전체를 한 번에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슈바프가 이 조언을 한 게 5년 전이다. 뒤처지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서둘러야 한다.

글_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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