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계량기만 하던 업체들이 시장을 이끌어오다 이 사업을 서브로 하는 후발주자들이 우후죽순 생기면서 이 시장은 누구랄 것 없이 일단 사업을 따고 보자는 식의 영업이 행해지고 있다.” 한 계량업계 관계자는 지금의 전력계량기 시장을 이 같이 설명했다.

안되면 언제든 발을 뺄 요량으로 이른바 후려치기를 해서 전력량계 가격을 말도 안 되는 수준으로 낮춰놓고 교란을 일으키는 기업들이 있다는 것이다.

또 어떻게든 이익을 남기려고 중국 제품을 싼 가격에 가져오면서 계량기 리콜이라는 엄중한 사태까지 벌어졌고, 게다가 계량기 입찰에서 업체들이 자회사를 만들어 참여하거나 타 업체에 납품을 주는 식으로 사업을 독식하는 꼼수까지도 등장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한전 수주 업체 중 한 곳이 납품을 못해 지체상금을 물고 있어 한전이 지난달 총가로 입찰을 냈는데, 다시 그 업체의 자회사로 알려진 곳이 수주했다”면서 “게다가 적격심사라 오히려 더 좋은 가격으로 계약하게 됐다”며 비양심적인 업계 실태를 꼬집기도 했다.

이처럼 저가 경쟁이 치열한 상황이라 전력량계 업계에서 개발을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업계 내부의 목소리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중국에 좋은 일만 하고 있다”며 “다 만들어진 계량기 뚜껑만 조립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기술 발전이 있을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새로운 제품 개발은 차치하고서라도 업계들이 먹고사니즘에만 빠져있으니 이렇다 할 개발자도 없다. 현재 40개가 넘는 계량기 시장에 자체 기술력을 지닌 곳은 손에 꼽을 정도다. 나머지는 한두 명의 개발자가 만든 설계도를 돈을 주고 샀을 뿐이다.

이런 업체들은 당장 생존이 가장 시급하니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항변할 수도 있다.

그러나 먹고사니즘에 빠져 생태계 자체를 망치고 몰락하게 하는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다. 계량기 업체들은 어려운 경제를 탓하며 정부의 지원 요구에만 목소리를 높일 것이 아니라 업계를 구성하는 한 구성원으로서 산업 발전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산업생태계는 나몰라라 하고, 제 목소리만 내서는 곤란하다.

더불어 현재 민수시장은 소수업체가 선점하고 있고, 나머지 수십개 업체는 관수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다. 사태가 여기까지 온 데는 한전도 절반의 책임이 있다는 뜻이다. 입찰 공고가 뜨지 않는데 중소업체들이 고숙련 기술자를 높은 인건비를 주고 계속 붙잡아두기도 어렵다.

한전은 수수방관하는 태도가 아니라 꾸준한 발주가 가능한 방법 모색과 함께 말도 안 되는 저가 가격 해소를 위한 방법은 없는지 고민해야 한다. 업체들의 투기성 민원과 관계없이 납품 능력이 없는 업체에는 강한 패널티를 부여해 사업 참여를 제한하는 것도 한전이 전력량계 업계를 위해 해야할 역할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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