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경제칼럼니스트 한국경제언론인포럼 회장
김상철 경제칼럼니스트 한국경제언론인포럼 회장

세계가 일제히 돈을 풀고 있다. 미국 연준은 기준금리를 다시 제로로 내렸다. 미국이나 우리나 중앙은행들은 한계도 없이 채권을 사들이고 있다. 각국 정부가 쏟아내는 재정지출 규모도 엄청나다. 미국의 경기 부양 예산은 2조2천억 달러에 달해 금융위기 당시 8천3백억 달러의 세배다. 우리만 해도 자금 지원 규모가 100조 원이다. 외환위기 때 공적자금 규모가 64조 원이었다. 모두가 재정에서 나오는 돈은 아니지만, 자금 규모는 일찍이 들어본 적이 없는 수준이다.

그런데 반응이 시원치 않다. 금융시장은 조치가 발표될 때마다 반짝할 뿐, 얼마 가지도 못해 다시 가라앉는다. 기업들의 불안은 여전하고 소비는 늘지 않는다. 이 정도면 뭔가 엄청난 반등이 있어야 할 듯한데 도대체 왜 효과가 없는 걸까. 충격은 언제까지 가는 것일까.

사실 금리 인하의 영향은 제한적이다. 금리 인하가 경기 활성화로 이어지는 것은 기업이 투자를 쉽게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돈을 빌려서 어디 쓸 것인가. 기업은 지금 설비를 늘릴 이유도, 고용을 늘릴 이유도 없다. 빌린 돈으로 뭘 해야 한다면 빚을 갚는 게 전부일 것이다. 그게 아니면 현금을 쌓아놓거나 말이다. 주식시장만이 아니라 국채, 회사채, 금과 은, 원유부터 비트코인까지 모든 자산이 폭락하고 있다. 자산의 가격 하락이 너무 빠르게 진행되면 위험지표를 관리해야 하는 금융회사들은 무슨 자산이든 가진 걸 팔아서 현금을 확보해야 한다. 자산이 매물로 시장에 쏟아져 나오면 가격은 더욱 하락한다. 악순환이 이어지는 것이다. 투자는 막혔고 대출도 해주기 어렵다. 중앙은행이 아무리 돈을 풀어도 돈이 잘 돌지 않는 이유다. 금리가 내렸다고 해서 문 닫힌 상점에 가서 쇼핑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코로나 19는 전례 없이 빠른 속도로 공급과 수요에 모두 충격을 줬다. 코로나로 인해 세계 시장에 중간재를 공급하는 중국 경제가 멈췄다. 중국의 1∼2월 산업생산 증가율은 관련 통계가 있는 1990년 이래 가장 낮은 –13.5%를 기록했다. 1∼2월 소매 판매와 고정자산 투자 증가율 역시 각각 -20.5%, -24.5%로 사상 최저였다. 중간재 공급이 끊기면서 주요국의 생산 활동이 급감하는 공급 충격이 발생했다. 여기에 수요 자체도 파괴됐다. 감염을 우려해 소비 활동도 멈추면서 총수요도 급격히 줄었다. 국가 단위로 격리와 국경봉쇄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요 절벽에 당면한 기업들의 대응책은 해고와 설비감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는 3백만 명이 넘는 실업자가 단 일주일 사이에 쏟아졌다. 코로나 19 확산의 문제는 정상적 경제 활동이 멈춰 버렸다는 점이다. 정부의 재정 확대와 중앙은행의 금리 인하가 바이러스 확산을 막을 수는 없다. 결국, 경기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형성되기 위해선 코로나 19 확산이 진정되고 있다는 점이 확인돼야 한다.

지금으로서는 시장을 진정시킬 유일한 힘은 코로나19 환자가 줄어드는 것 말고는 없다. 감염자가 늘어나고 있는 한, 경제 활동은 위축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정점을 확인하기 위해 가장 먼저 봐야 할 숫자는 역시 미국 내 전염병 확산 정도다. 미국은 세계 정치와 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나라다. 미국에서 코로나 19 환자가 줄어드는 날이 와야 비로소 한숨 돌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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