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성(문화평론가)
윤희성(문화평론가)

30여년쯤 전의 일이다. 국내 대기업은 물론 동네에 있던 양말공장까지 중국에 진출하던 때였다.중국열풍이 불면서 너도나도 사업아이템을 들고 중국을 들락날락 하던 때, 중국에 진출하려는 사업자들에게 물어보면 대뜸 하는 소리가 “중국사람들에게 양말 한짝만 팔아도 13억장”이란 말이 쉽게 되돌아 오던 때다. 이런 단순한 생각으로 공장부터 중국으로 들어가고 많은 사업체가 들어간 지 30여년이 지났다.

그런데 오래지 않아서 그런 단순한 계산이 녹록지 않다는 현실을 경험하고 일찍부터 빠져 나온 사업체도 있었고, 최근에는 주요 대기업들까지 철수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중국을 기회의 땅으로 생각하고 진지하게 사업을 진행중인 사업체들도 꽤 있는 현재다. 그러나 그가 누가 되든, 중국진출 초기처럼, 단순히 중국의 인구수와 저렴한 인건비 등등의 이유로 달겨드는 사업체는 더 이상 많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일반적인 사업진출시 검토하는 타당성과 수익성, 그리고 제반 법규 등을 꼼꼼히 따지며 장기적인 사업의 성장성과 미래를 계산하고 진출할 것이다. 더 이상 신기루같은 허황된 꿈을 가지고 중국에 달겨드는 사람들은 없고 차분히 냉정하게 여느 사업과 마찬가지로 사업진출을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와같은 일들의 반복이 비슷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있다. 바로 30여년 전에 불었던 열풍이 동남아지역에서 불고 있는 것이다.

종종 사업 때문에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등등을 찾아 보면, 그야말로 어디를 가나 우리나라 중소기업인들로 바글바글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 식으로 월말결산 쯤 되는 날이면, 한 곳에 모여 있는 우리나라 주요은행 밀집지역에서 하루종일 우리나라 중소 회사 사장들끼리 모여서 시끌법적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그 주변에는 자연스레 우리 음식점들이 생기고 있고, 우리나라 말을 가르치는 학원부터 시작해서 우리나라 물건을 파는 곳을 어렵지 않게 찾게 된다.

이렇게 모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대부분 “동남아 인구만 4억명이 넘고 인건비가 싸서 사업환경이 너무 좋다”라는 말을 듣게 된다. 마치 30년전의 어느 모습과 쉽게 데쟈뷔되는 것이다. 때마침 정부의 신남방정책까지 더해져서 당분간 국내 기업들의 동남아진출은 더욱더 가속화 될 전망이다. 더군다나 갈수록 힘들어지는 국내 경영환경 탓에 돌파구로 동남아를 선택하는 기업도 늘고 있어서 당분간 멈추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지난 30년간 중국을 통해서 얻은 경험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한국기업들의 탈출구 또는 비상구로 동남아를 선택한 경우에 여전히 오래지 않아서 해당 기업들이 겪을 어려움 역시 예상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동남아 지역은 중국과 다른 문화와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돼 있고, 이미 70여년 전부터 터를 잡고 있는 일본기업이나 화교의 자본과 부딪혀야 하는 장애물까지 추가돼 있는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는 웹툰이나 K-POP같은 문화콘텐츠를 파는 사업자들에게 물어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일들이기도 하다. 같은 콘텐츠라고 해도, 중국과는 선호하는 분야가 확연히 틀리고 반응하는 일반대중의 호응도 역시 예상과는 다른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즉, 문화적 다양성과 함께 대중의 선호도 역시 상당한 편차가 있으며, 우리나 중국 등과 다른 기후와 지형에 따른 특성도 많아서 고려해야 할 변수가 많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동남아가 우리에게는 기회의 땅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동남아시장이 우리기업에게 좀 더 오래도록 함께 할 수 있는 지역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제조공장 또는 단순 하청공장처럼 생각해서 중국에 달겨들던 일들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이유이다. 이미 이런 쓰라린 경험도 충분히 했고, 30여년 전과는 다르게 우리의 세계적인 문화콘텐츠도 다양해진 지금, 우리는 좀 더 길게 보고 차분히 동남아인들의 밑바닥부터 다지고 마음도 사면서 한 걸음 한 걸음 가도 되기 때문이다.

동남아 지역 역시 여느 사업과 마찬가지로 치열한 분석과 설계가 필요하며, 오히려 더 많은 변수와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지역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정확한 계획과 실행, 그리고 지속성을 위한 문화적 탐구노력도 필요하다. 이러한 철저한 준비와 지역을 이해하려는 자세가 있다면, 동남아는 확실히 기회의 땅인 것만은 분명하다. 지금도 동남아진출을 구상하는 사업자들이 생각해 주길 바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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