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당신이 진정한 예술이나 문학을 원한다면 그리스 사람이 쓴 책을 읽으면 된다. 참다운 예술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노예제도가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노예가 밭을 갈고 식사를 준비하고 배를 젓는 동안, 시민은 지중해의 태양 아래서 시작(詩作)에 전념하고 수학(數學)과 씨름했다. 예술이란 그런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처녀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의 한 대목이다.

쉽게 말해 예술은 돈 있는 사람이 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잠시 공감했었던 필자가 대학원 시절 스승님에게 하루키 소설의 한 구절을 읊조리니 스승님은 "글쎄" 하시면서 "그리스의 다른 도시는 몰라도 아테네 사람들 대부분은 목수, 대장장이와 같은 생업에 종사했는데…"라고 말씀했다. 젊은 날의 하루키도 역사에 대한 정확한 지식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학시설 클래식 동호회에서 만난 아저씨 몇 분은, 집에 있는 오디오시스템, 음반 값을 합치면 전세금보다 많았다. 그러면서 학생인 나에게는 “음악을 들어야지! 오디오에 빠지면 안 된다”고 충고했다. 아저씨들은 중고차 매매상사에 팔면 100만원도 받기 힘든 중고차를 몰면서 수십만 원짜리 바그너 오페라 전집을 과감하게 질렀다. 그뿐이 아니었다. 베토벤 교향곡 5번, 1악장 첫 소절만 들으면 클라이버가 빈 필을 지휘한 것인지 카라얀 지휘의 베를린 필인지, 아르농쿠르의 정격연주인지 다 알았다. 음대생들보다 아는 것이 더 많아 보였다. 음대생들은 악보를 볼 줄 알고 악기를 잘 다루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은 카센터, 식당 하던 그 아저씨들이 더 강했다.

부산 오페라하우스 관련 반대론자들이 주장하는 논리 중의 하나가 ‘그들만의 놀이터’라는 것이다. 여기서 그들이란 ‘예술적 안목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돈 있는 사람들’을 뜻하는 것 같다.

이런 편견이 생긴 데에는 오페라 관람가격이 일반적으로 영화보다 비싸고 일부 좌석은 수십만원을 호가하기 때문이다.

그랜드오페라단이 오는 13일 부산문화회관 중강당에서 공연하는 창작 오페라 ‘봄봄’에 대해 파격적인 가격할인을 시도했다. A석 5천원, B석 2천원이다. 대극장이 아니고 중극장이니 B석이라고 할지라도 관람에는 크게 지장이 없을 것 이다. 대신 하루 두 번 공연한다.

돈이 없어 오페라를 못 본다는 말은 이번 공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또 오페라하우스가 생긴다면 자체 제작 공연을 저렴한 가격에 시민들에게 공급할 수 있다. 구자범과 같은 티켓 파워가 있는 천재 지휘자가 맡아준다면 사람들이 우려하는 재정 문제도 상당부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아마데우스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모차르트의 마술피리는 서민들이 자주 찾는 장터에 위치한 극장에서 초연됐고 ‘피가로의 결혼’에서 사용된 이탈리아어가 아닌 모차르트의 모국어인 독일어 오페라였다. 서민부터 귀족까지 함께 즐기는 대중예술이었던 것이다.

오페라 봄봄 B석은 2천원, R석은 5만원이다. 가격 차이가 25배다. 대극장도 아닌 중극장에서 불합리하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지만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학생이나 가난한 오페라 애호가들의 공연비를 지원해준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이 노블레스 오블리주(고귀한 자의 도덕적 의무)다.

또 김유정 소설 ‘봄봄’이 원작인데다 한국어로 공연한다. 여러모로 징슈필(노래의연극, Singspiel) 마술피리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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