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양호 교수의 월요객석) 나만의 퀘렌시아를 찾아서
작성 : 2018년 07월 10일(화) 14:23
게시 : 2018년 07월 13일(금)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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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조금 일찍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직업이 교수이고 시기가 방학이라 하루하루가 휴가인 셈이지만 분위기 전환을 위한 여행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그래서 6월말 제주 세미나 참석이란 공식 일정이 끝나기 무섭게 일본 홋카이도로 가족여행을 떠났다. 가까운 이웃 나라지만 아직까지 일본 여행을 계획하지 못한 것이 오히려 신기하다. 하루가 열리는 순간을 오롯이 자연과 함께 즐길 수 있게 해 준 호텔 노천탕, 호수 안 콜로이드 성분으로 파란 빛이 그림처럼 펼쳐지는 비에이의 아오이 이케, 아직도 산중턱에서 뿌연 연기를 내뿜고 있는 살아있는 화산 쇼와신잔, 그리고 거대한 화산활동의 역사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거대한 도야호수의 장관 등은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휴가철이 오면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떠난다. 우린 왜 여름철에 집중적으로 휴가여행을 떠나는 것일까? 날씨가 더워 피서 간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하다. 피서를 위해서라면 해수욕장 백사장보다는 집에서 선풍기 틀어놓고 책 읽는 것이 더 낫다. 힘들어도 여행을 떠나는 진짜 이유는 일상과는 다른 낯선 공간에 자신을 던짐으로써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를 갖기 위해서이다. 산업사회의 영향으로 경제효율을 높이기 위해 여름철에 집중적으로 휴가를 활용하지만 머지않아 자연스럽게 휴가기간이 연중으로 분산될 것으로 보인다.
스페인의 투우장 한쪽에는 소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자신만의 공간이 있다고 한다. 투우사와 싸우다가 지친 소가 숨을 고르며 기운을 차리기 위해서 찾는 장소이다. 그곳에 있으면 편안해지고 더 이상 두렵지 않다고 한다. 소만 아는 그 공간을 스페인어로 퀘렌시아(Querencia)라고 부른다. 피난처 또는 안식처라는 뜻이다. 투우 못지않게 세상을 전투적으로 살아가는 우리도 힘들고 지칠 때 찾을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흔히 인생을 마라톤 경기에 비유하곤 한다. 마라톤 경기이기는 하지만 진짜 마라톤 경기처럼 출발점에서 골인 지점까지 한결같이 달리기만 하는 그런 코스가 아님은 자명하다. 때로는 백 미터 구간을 달리는 스프린터처럼 전력 질주해야 하는 구간이 있다. 이 구간을 지나면 당연히 나만의 퀘렌시아를 찾아 회복하는 기간을 가지고 다음 경기에 대비해야 한다. 토끼와 거북이의 달리기 경주 우화의 결론도 이젠 제대로 잠잔 토끼가 이긴다는 것으로 내용이 바뀌어야 할지 모른다. 미래에는 평생직장이라는 개념도 희박해지고 고용형태가 단기화 되고 다양해지면서 이런 경향은 가속화될 것이다.
국가적으로 보아도 일과 휴식 간의 적절한 조화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올 하반기부터 주 52시간 근무가 의무화됐다. 법을 어길 경우 사용자에 대한 형사 처벌제도도 도입됐다. 세계 최고수준의 노동시간을 자랑하던 우리에게도 저녁이 있는 삶이 찾아 올 것인가? 아직은 기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공존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제도의 원만한 정착을 위해서는 몇 가지 근본적 문제를 함께 생각해 보아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는 소위 ‘워라밸(work & life balance)’이 효과적으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개인들에게 다양한 형태의 퀘렌시아를 제공하려는 사회적 노력이 동시에 전개돼야 한다. 여가시간을 활용해 여행이나 취미 생활을 할 수 있는 다양한 공간과 프로그램들을 많이 만들자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화순 고인돌 유적지와 화순적벽을 연계해 다양한 형태의 여행과 교육프로그램을 만들 수도 있겠다. 우리의 전통문화나 국악기를 체험하는 프로그램을 전국 각지에 보급하면 어떨까? 많은 지자체에서 이런 노력을 하고 있지만 더 다양화되고 내실 있게 보완해 나가면 좋겠다. 학생들에게 다양한 체험 활동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시행되고 있는 ‘자유학기제’의 정착 여부도 이런 실질적 컨텐츠를 얼마나 가까이에서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본다.
다양한 가치관이 공존하고 창의적 사고가 존중되는 문화를 만들어 가야 한다. 운동장 하나에 4~5층짜리 사각형 건물과 담장으로 이루어진 똑같은 형태의 공간에서 주입식 교육을 받은 학생들에게 어떻게 창의성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아파트 공간에서 학교와 같은 공공건물까지 스머프 마을처럼 좀 다양하고 재미있게 만들어 보자. 획일적 규제는 과감하게 풀어 사람마다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해 보자. 개인적으로 독서나 여행을 통해 낯선 세계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갖자.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해서는 일할 시간을 줄이는 소극적 방법과 함께 시간을 선용해 창의적 인간이 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적극적 유인이 동시에 주어져야 한다.
정양호 고려대 교수(전 조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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