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한서 MBC Producer
손한서 MBC Producer

“요즘 같은 멀티미디어 시대에 라디오를 들어주시는 청취자 여러분 고맙습니다.”라고 시작해서 “제 마지막 멘트는 유치하게 들릴 수도 있을 겁니다. 나이 먹은 DJ의 애교로 받아주시길 바랍니다. 라디오 만세!” 라고 멋진 수상소감을 밝힌 사람은 다름 아닌 라디오의 전설 DJ 배철수다. 몇 년 후면 30주년이 되는 ‘배철수의 음악캠프’와 DJ 배철수는, 그때 또 한 번 전설로 기록 될 거다. 수많은 훌륭한 프로그램들이 이런저런 세월 풍파를 이기지 못하고 사라지는걸 보면, ‘배철수의 음악캠프’의 힘은 정말 대단하다.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철수는 오늘’이란 코너에서는, 20년이 넘게 호흡을 맞춰온 DJ와 작가가 인생과 세상에 대해 말하고 음악을 들려준다. 현실에 대한 날선 비판도 삶에 대한 위로도 해주기에 매번 나를 돌아보게 한다. 목적지에 도착해도 차에서 내리지 못하고 듣게 된다.

나의 ‘음악캠프’ 청취는 방송이 시작한 1990년부터이고, 중학교 시절부터였다. 서태지의 등장 이전이기도 했고, 가요가 풍부하지 않았기에 팝음악 전문 아니 그땐 락음악 전문 프로그램인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세련된 음악을 접할 수 있었다. DJ 배철수가 굵고 낮은 목소리로 ‘광고 듣겠습니다.’라고 얘기할 땐 젊음의 락스피릿이 막 솟아나곤 했다.

광고도 마치 락음악 같이 내 몸을 타고 흘렀다. 메탈리카와 건즈앤로지스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고, 시애틀 그런지 시대를 함께했으며, 커트코베인의 죽음을 함께 애도하기도 했다. U2와 함께 세계의 평화를 노래하기도 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 ‘배철수의 음악캠프’는 청소년기의 나에게 전 세계의 소식을 접할 수 있는 손쉬운 통로였고, 돈이 없던 시절 테이프를 사지 못하더라도 좋아하는 노래를 들을 수 있는 음악 카페였다. 물론 그 곡이 선곡되기까진 오랜 기다림이 필요했고 행여나 바로 그 곡이 나오는 순간을 놓칠까봐 더 열심히 들을 수밖에 없었다. 노래 한곡 녹음하려 공테이프 하나 넣어놓고 하염없이 기다리면서 라디오 피디를 꿈꿨다. 그 땐 피디들이 모든 음악을 방송국에서 찾아 들을 수 있을 테니 얼마나 행복할까라고 생각했다.

내한공연도 거의 없던 시절, ‘음악캠프’엔 항상 유명한 해외스타들이 초대 손님으로 나왔다.

메탈리카, 메가데스, 본조비, 헬로윈 등 수많은 락스타들과 브리트니 스피어스,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비욘세 같은 디바의 목소리와 라이브를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사실 1990년대를 소재로 한 드라마나 영화는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추억 코드에서 빼놓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빌보드 차트를 외우거나 ‘광고 듣겠습니다.’를 따라하는 주인공 친구라도 존재해야 한다.

내가 라디오 피디로 입사해서 제일 설렌 순간 역시 ‘배철수의 음악캠프’ 생방송을 구경 갔을 때이다. 배철수 선배가 갑자기 스튜디오 안으로 오라고 했고, 바로 그 목소리로 우리 MBC 라디오에 신입피디가 들어왔다며 내 이름을 불러주었다. 이런 일이 생긴 건 꿈만 같았다. 그리고 지금의 바람은 언젠가 이 프로그램의 연출을 맡고 싶다는 거다.

올해 27주년이 되는 ‘배철수의 음악캠프’가 곧 30주년을 맞을 테고, 대한민국 라디오의 전설은 또 다시 쓰여질 거다.

그 날이 오면, 나도 함께 라디오 만세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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