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 소장
이상훈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 소장

한국 경제의 주력 업종인 조선과 해운이 세계 경기침체, 경쟁격화, 점유율 감소 등으로 벼랑 끝에 내몰리고 있다. 정도 차이는 있지만 수요 감소와 중국산 철강 공급으로 철강 산업에도 먹구름이 드리운 지 오래이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자동차, 정유와 석유화학 등 다른 주력 업종의 전망도 밝지 않다. 조선과 해운이 불황의 늪에 빠지자 기업의 대응이나 정부의 대책이 미흡했다는 식의 뒷북치기가 요란하지만 상황을 반전시키기가 쉽지 않다.

이번 총선에서 다수의 예측과 전망을 뛰어넘어 절묘한 여소야대 정국이 탄생한 근저에는 정부 여당의 경제 운영에 대한 평가도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야당 역시 한국 경제의 체질을 개선하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육성할 희망적 해법을 내놓고 있지는 못하다.

현재에만 머물면 새로운 미래를 열기가 힘들다. 이미 한국 경제가 심각한 불황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는 위기 의식을 기반으로 새로운 길찾기에 나서야 한다. 새로운 길찾기는 시대의 흐름을 크고 정확히 진단하고 한국이 가진 역량과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경로를 설계하는 것으로 단순화할 수 있다. 누구도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지만 다행히 세계가 어떻게 변화될 지에 대한 개략적인 상에 대해서는 세계 석학과 집단 지성이 한발 앞서 소개하고 있다. 미래학자 제레미 리프킨은 세계는 화석연료가 주도했던 산업혁명을 거쳐 21세기부터 인터넷 기술과 재생에너지가 서로 융합하여 세계를 변화시킬 3차 산업혁명에 돌입하고 있다고 진단하였다. 2016년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의 핵심 주제는 ‘제4차 산업혁명의 이해’였다. 4차 산업혁명은 전기기술과 정보기술을 이용한 자동화된 생산체계를 기반으로 한 디지털과 바이오산업, 물리학 등의 경계를 융합하는 기술 혁명이다. 인공지능, 3D프린팅, 자율주행 자동차, 사물인터넷, 바이오 테크놀로지 등이 4차 산업혁명의 주요 기술들이다. 각각의 개념 정의와 시대 구분, 강조점이 차이가 있지만 우리는 제레미 리프킨이 말하는 3차 산업혁명과 다보스포럼이 말하는 4차 산업혁명이 공존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다. 어떤 미래 전망을 보더라도 최소한 재생에너지와 이를 기반으로 한 ICT 융합 기술이 세계 경제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할 것은 확실하다. 시장분석기관 블룸버그는 2040년까지 발전분야 세계 누적 투자액이 12조 2000억 달러로 추산되는데 이 중 3분의 2가 재생에너지에 투자될 것으로 전망하였다.

평범한 시민들도 알만한 이런 얘기를 경제 전문가와 정부 여당이 모를 리 없다. 특히 재생에너지와 ICT 융합의 미래를 주도하기 위해 한국 정부는 ‘에너지 신산업’이란 용어를 만들어 신에너지 및 재생에너지와 함께 에너지저장장치(ESS), 에너지관리시스템(EMS), 전기차(V2G), 스마트그리드 등 신기술 개발과 산업 육성을 강조하고 있다. 제주도 탄소중립섬(Carbon Free Island)은 재생에너지와 ICT 융합의 미래에 대한 세계적 모델 사업이다. 아마도 제레미 리프킨은 자신이 주창한 제3차 산업혁명을 구현하는 교과서적인 모델로 제주도 탄소중립섬 프로젝트를 꼽을 지도 모른다. 박대통령이 파리총회에서 제주도 탄소중립섬을 언급한 이후 이 사업은 제주특별자치도의 사업에서 중앙정부의 사업으로 확대되는 듯 하다. 산업부, 환경부, 국토부, 국무조정실 등에서 앞다투어 제주도 탄소중립섬 사업을 지원하려고(?) 궁리 중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정부 전략과 비전에서 관행처럼 삽입되는 거품과 화려한 수사를 제거하고 나면 에너지 신산업과 제주도 탄소중립섬의 미래가 잘 보이지 않는다. LG화학, 삼성SDI가 배터리 사업을 스스로 잘하고 있는 것 말고는 에너지 신산업이라는 틀에서 구체적인 미래 시장도 주도하는 기업도 잘 보이지 않는다. 애초에 재생에너지 보급과 산업 육성을 소홀히 한 채 재생에너지 시스템의 파생 분야인 에너지 신산업만 집중적으로 육성하기는 어렵다. 에너지 신산업은 재생에너지 성장의 모체인 재생에너지 산업이 공기업 한전에게 에너지자립섬, 전기차 인프라 구축 등을 떠맡겼지만 한전이 사업자 자격을 가진 것도 아니고 국내 자동차 기업들은 전기차 분야에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제주도 탄소중립섬 비전의 핵심인 해상 풍력 사업은 수년 째 진전이 없고 제주도도 여건을 개선하려는 의지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

난제는 방치한 채 거품 가득한 비전만 남발하면서 임기를 때우는 식으로는 경제의 체질을 바꿀 수도 새로운 성장동력을 키워낼 수도 없다. 전통적 주력 업종이 새로운 물결에 맞게 진화하고 변화하도록 자극하고 격려해야 한다. 재생에너지와 에너지 신산업이라는 새로운 빅리그에는 아직 기회가 있다. 범정부적 협력과 소통 확대를 통해 재생에너지 보급의 난제를 극복하면서 정부는 재생에너지 산업과 에너지 신산업을 이끌어 갈 기업을 발굴하고 과감하게 지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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