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우 교수의 월요객석) 산업재해와 엄벌 그리고 정의?
작성 : 2021년 05월 04일(화) 15:53
게시 : 2021년 05월 07일(금) 09:36
가+가-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우리 사회에서 그 어느 때보다 정의라는 말이 자주 회자되고 있다. 그만큼 사회 곳곳에서 정의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이자 정의가 제대로 실현되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정의’를 빙자하여 정의롭지 않은 행위들이 자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일은 산업재해 영역에서도 버젓이 발생하고 있다.

대형사고가 날 때마다 원인 여하를 불문하고 이에 관계된 사람을 정의라는 이름하에 엄벌하는 것이 당연한 듯이 강조되곤 한다. 엄벌이라는 결과를 위해서는 절차는 다소 생략하거나 무시해도 되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산업현장에서의 대형사고 앞에서는 소위 보수, 진보를 가리지 않고 엄벌이 정의로 쉽게 둔갑한다.

안전사고의 결과만 보고 상황과 과정을 보지 못하는 사후확신편향도 자주 목격된다. ‘누가’에만 관심이 있고 ‘왜’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 안전사고에 대해 ‘실제’ 책임이 있는지는 묻지 않는다. 단지 그 자리에 있었거나 그 조직에 몸담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는다. 본질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는 도외시한 채 희생양을 찾아내는 데 골몰한다. 때로는 보복감정을 정의라는 말로 포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기도 한다. 모두 정의에 반하는 접근이다.

안전사고를 일으킨 자에 대해 엄벌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일까. 엄벌 주장이 구조적인 문제를 덮어버리는 미봉책으로 악용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혹여 처벌하는 것만이 능사인 것처럼 생각하면서 실제로는 구조적인 문제를 애써 무시하거나 덮으려는 ‘구조맹(構造盲)’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치권과 행정기관의 정치적 술수에 휘둘리는 것은 아닐까.

내가 외치는 정의가 혹여 그들에게 이용당하기만 하고 헌신짝처럼 버려지는 것은 아닐까를 항상 경계하고 의심해야 한다. 사실 대형 안전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엄벌화 주장은 범죄자에 대한 신자유주의 관점이 반영되어 있다. 신자유주의 사조에서 위반자는 이해득실을 계산하여 자유로운 판단에 근거하여 해악을 일으키고 그것에 전면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자율적 주체로 취급된다. 그 결과 법위반에 이른 개별적 원인을 심층적으로 분석하여 그것을 개선한다고 하는 접근보다는 징벌적·응보적인 처벌이 강조된다. 근본적인 문제는 건드리지 않으면서 성난 여론을 쉽게 달랠 수 있는 접근이 엄벌에 처하겠다는 공언이다. 그러다 보니 문제해결을 위한 실질적인 접근은 시간이 걸리고 힘들다는 이유로 채택되지 않고 ‘간편한’ 엄벌주의가 선호되는 경향이 있다. 엄벌주의가 진정한 정의와는 부합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어떤 특정인의 불안전행동이 관여하여 발생한 재해 또는 중대사고에 직면하였을 때, 정의로운 대응을 하기 위해서는 ‘치환(대체)테스트’를 거치는 것이 필요하다. 당사자를 동일한 활동분야에서 동등한 자격과 경험을 가진 다른 사람으로 치환하고 사건의 전개양상 등을 고려할 때 그 치환된 개인이 다르게 행동하였을 가능성이 없는 경우조차 당사자를 비난하는 것은 시스템적 결함을 모호하게 하고 희생자를 만드는 것 외에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다. 이러한 경우에도 개인을 처벌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한 대응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상황적 요인이 작용했다고 볼 수 없는 개인 잘못에 대해서는 엄벌에 처해야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개인 잘못에는 잘못된 시스템이 배경으로 영향을 미친 경우도 적지 않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희생양을 찾아 책임을 지우는 데만 집중한다면 시스템 설계에는 관심을 두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 그럴 경우 역량을 갖춘 선량한 사람들을 실수하게 만드는 시스템의 문제점은 해결할 수 없게 된다.

독일의 형법학자로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란츠 폰 리스트(Franz von Liszt)가 “최고의 형사정책은 사회정책이다”라고 주장한 것도, 처벌 위주의 대증요법보다 사회정책에 해당하는 재해예방정책과 법제라는 근본적 해결방안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실질적인 정의에 부합한다는 점을 역설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정의는 정치영역에서만 실현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산업재해라는 영역에서도 응당 실현되어야 할 보편적 가치이다. 산업재해에서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그것의 시스템적 원인을 찾아내고자 하는 태도와 찾아낼 수 있는 눈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툭하면 정의라는 말을 끄집어내는 것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다. 정작 중요한 것은 말의 성찬이 아니라 정의를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는가이다. 산업재해 영역에서의 정의의 실현 역시 의욕만이 아니라 실력이 함께 요구되는 이유이다.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정진우 기사 더보기
월요객석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1. 1
    (김성수 교수의 월요객석) 전문성 있는 독립된 에너지 규제기관이 필요하다

    폭염으로 인하여 전력수급 위기가 거론될 정도로 연일 전력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월요객석
  2. 2
    (이유진 연구원의 월요객석) 지구의 날, 기후정상회의에 주목하자

    파리협정에 복귀한 미국이 기후정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1일, 무역대표부(USTR)는 를 통해 탄소국경…

    #월요객석
  3. 3
    (월요객석) 2030 온실가스 감축 목표 “감각하기”

    미국 캘리포니아주 데스밸리에서 최고 기온이 섭씨 54도까지 치솟는 등 불볕더위와 가뭄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월요객석
  4. 4
    (조영탁 교수의 월요객석) 탄소중립의 ‘브뤼메르 18일’

    ‘세계사에서 중요한 사건과 인물들은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또 한번은 희극으로.’ 프랑스혁명을 분석한 …

    #월요객석
  5. 5
    (안남성 전 총장의 월요객석) 소형 모듈형 원전(SMR)에 대한 논란을 보면서

    최근 정부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일자리 창출을 위해 그린 뉴딜이라는 비젼을 제시…

    #월요객석
  6. 6
    (윤태환 대표의 월요객석) 빌 게이츠가 미처 말하지 못한 것들

    최근 빌 게이츠는 자신의 책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에서 “탄소중립을 위해 현재 태양광, 풍력, 베터리 등 …

    #월요객석
  7. 7
    (정진우 교수의 월요객석) 산업재해와 엄벌 그리고 정의?

    우리 사회에서 그 어느 때보다 정의라는 말이 자주 회자되고 있다. 그만큼 사회 곳곳에서 정의를 갈망하는 사람…

    #월요객석
  8. 8
    (손정락 에너지산업MD의 월요객석) 탄소중립 기술혁신은 스케일업(Scale-up)으로 부터…

    탄소중립 R&D 전략을 골몰하는 중 고민이 생겼다. 국가 에너지 기술 개발 사업은 올해 1조원 수준으로 꾸준…

    #월요객석
  9. 9
    (김소희 사무총장의 월요객석) EP100과 RE100 함께 추진돼야

    2019년 필자가 속한 기관과 신재생에너지학회가 공동으로 더 클라이밋 그룹(The Climate Group)…

    #월요객석
  10. 10
    (김소희 사무총장의 월요객석) 재택 근무와 온실가스 감축

    미래학자 엘빈 토플러는 ‘제3의 물결’(1982년)에서 일찍이 재택근무 개념을 “지식 근로자들이 전자 오두막…

    #월요객석

기사 목록

전기신문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