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주 연구위원의 금요아침)잠자는 여의도의 법안
작성 : 2021년 04월 07일(수) 13:22
게시 : 2021년 04월 15일(목)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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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안(法案)의 내용이 이렇게 좋은데 대체 왜 통과가 되지 않는 걸까?” 국회의원들이 일은 안하고 싸움만 한다고 손가락질하면 편하겠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

법안이 발의되고 법률로 통과되기까지는 거쳐야하는 절차가 많다. 일단 법안이 발의되면 소관 상임위원회에 회부되어 소위원회에서 심의를 거쳐야 하고, 전체회의도 통과해야 한다. 그 다음에는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체계·자구 심사를 하고 마지막으로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한다. 각 단계마다 넘어야 하는 허들이 결코 만만찮다.

“생색내는 발의는 열심히, 통과는 나 몰라라.” 법안은 처음 발의했을 때 가장 빛난다. 그러니 관심이 식기 전에 최대한 요란하게 눈길을 끌어야 한다. 국회 소통관에서는 국회의원들이 그 법안과 관련된 이해관계자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자주 한다. 누가 어떤 법안을 발의했는데 왜 냈고, 무슨 내용이라는 홍보성 기사도 종종 볼 수 있다. 발의 자체가 주목받다 보니 매 회기 첫날마다 상징적으로 ‘1호 법안’을 발의하기 위해 보좌진들이 의안과 문앞에 줄을 서서 밤을 새는 일이 되풀이된다. 뿐만 아니다. 시민단체들은 발의한 법안의 개수로 의원들의 성실성을 평가하기도 한다. 그렇다 보니 1주일에 법안 한 개씩 발의한다고 홍보하는 의원까지 있었다. 지난 회기에 임기만료로 폐기된 법안을 재활용하기도 하고, 다른 의원이 낸 법안을 몇 글자 살짝 고쳐서 다시 발의하기도 한다. 그렇게 심사해야 할 법안은 쌓여간다. 하지만 법안은 통과시키는 것이 훨씬 더 힘들고 중요하다. 국회는 거의 매달 열리지만 처리해야 하는 법안도 수백 개씩 줄 서있다. 어떤 법이 더 시급하고, 중요하다고 딱 잘라 경중(輕重)을 가리기 어려우니 여기서부터는 진짜 ‘정치’의 영역이다. 무엇을 얼마만큼 양보하고 대신 어느 부분을 받아낼 것인지 골치 아픈 셈을 지루하게 해야 한다. ‘가성비’가 썩 좋지 않다. 그럴 시간에 새로운 법안을 또 발의하고 광고하는 것이 더 슬기롭다.

“누가 봐도 괜찮은 법안인데, 왜 통과가 안될까?” 누가 주도했다고 생색을 내기도 힘든 법안이라면 누군들 굳이 나서서 열심히 총대를 멜 이유가 없다. ‘국정과제’니 ‘당론 발의’니 여기저기서 신속한 처리를 독촉하더라도 생각보다는 진척 속도가 더디다. 오히려 중점처리 법안이라고 조바심을 보일수록 상대편에서 발목을 잡고 싶은 유혹도 더 커진다. 그래서 진짜 통과시켜야 할 법안이면 군데군데 빈틈을 남기기도 한다. 상대편에 슬쩍 흘려서 그쪽도 조금만 고쳐 발의할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다. 소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이 같은 내용으로 발의하면 의사일정에 올라갈 가능성도 높아지고, 그 상임위 소속 의원들끼리 공동발의로 이름을 올렸을 테니 아무래도 통과가 수월하다.

“비쟁점법안부터 처리하자.” 상임위원회도 법안 처리 실적에 민감하다. 심사해야 할 법안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판에 굳이 여전히 논란이 많은 ‘쟁점법안’을 놓고 입씨름하면서 보낼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법안을 검토하는 과정은 상당 부분 회의장 밖에서 이루어진다. 찬반 의견을 전달하기 위해 이해관계자가 각 의원실에 들락날락하고 정부 역시 수용·불수용 입장을 들고 상황을 타진한다. 견해의 차이가 클수록 이른바 ‘숙려기간’을 훌쩍 넘겨 논의가 계속된다. 발의되고 한참이 지났는데도 별다른 소식이 없다면 어디에선가 아직 치열하게 논쟁 중인지도 모른다. 많은 경우에는 이렇게 시간을 들여 어느 정도 조율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소위원회 의사일정에 ‘非쟁점법안’으로 올라갈 수 있게 된다.

“취지에는 공감한다. 일단 실태조사에 착수하자.” 법안심사 과정에서 격론이 오가다 보면 “전수조사가 필요하다”는 결론으로 마무리될 때가 많다. 법안의 문제의식에도 일리가 있긴 한데 혹시라도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으니 현실부터 충분히 살펴보자는 것이다. 좋은 얘기긴 한데 찝찝한 기분이 남는 것은 왜일까? 결국 “오늘은 통과시키지 말자”는 뜻이기 때문이다. 연구용역 발주하고 조사하면서 차일피일 미루다 보면 상임위원도 새로운 얼굴로 바뀌니 기껏 어렵게 진전시켜놓은 논의마저 다시 초기화되기 일쑤다. 게다가 그 법안만 붙잡고 있을 것도 아니지 않은가? 국정감사에, 예산에, 온갖 현안에, 정치 일정에 휘말리다가 지방선거든 총선이든 대선이든 시작되면 법안심사는 물건너간다.

보궐선거는 끝났고, 대통령 선거까지 1년 여가 남았다. 정치는 계속 어수선하겠지만, 국회는 법을 만드는 일에도 소홀하지 않길 바란다.
이영주(노동문제연구소 解放 연구위원) 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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