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비판을 받고 있지만 경제학의 시장구조 문제와 관련해 하버드 학파의 유명한 ‘S-C-P 이론’이란 것이 있다. 기업의 ‘성과(Performance)’는 기업의 ‘행태(Conduct)’에 좌우되고 기업의 행태는 다시 시장의 ‘구조(Structure)’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구조(S)→행태(C)→성과(P)’의 인과관계를 강조한 이론이다. 지나치게 단선적 논리구조라는 점에서 학술 논쟁을 유발했지만 기업의 성과에 문제가 있으면 기업의 행태를 바꾸고 그것이 안되면 시장구조를 바꾸어야 한다는 점이 그 이론의 정책상 시사점이다. 최근 도입된 원가연계형 전기요금제의 상황을 보면서 하버드학파의 이론을 떠올리게 된다.

우리나라의 전기요금은 국제가격 변동에 따른 연료비용이나 온실가스 감축의 환경비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정도로 정부 통제를 강하게 받아 왔다. 과거 20세기 정부주도의 개발연대기에는 경제성장을 위해 불가피했고 긍정적인 성과도 있었다. 하지만 21세기 4차산업혁명과 에너지혁명이 거론되는 상황에서 전기요금의 정부 통제구조하에서 효율적인 에너지 소비와 혁신적인 에너지기술 나아가 탄소중립을 도모하는 것 자체가 시대 상황에 맞지 않고 성과도 기대하기 어렵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 도입한 ‘원가연계형 전기요금제’는 긍정적이고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문제점 역시 부인하기 어렵다. 첫째, ‘제도의 신뢰성 문제’다. 전기요금에 대한 정부 통제를 완화하기 위해 도입했음에도 지금까지의 운영과정은 과거와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요금동결을 고수하다 대선 이후에 요금을 인상하겠다는 여권이나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요금동결을 공약한 야권의 사례는 새로운 제도의 도입에도 전기요금에 정치적 개입이 여전히 작용함을 의미한다. 제도가 신뢰를 상실하면 시장참여자들의 행태 변화를 유발하기 어렵다.

둘째, ‘시장신호의 문제’다. 단기간에 급변하는 연료비에 비해 이를 요금에 반영하는 주기가 지나치게 길고 5원/kWh의 연간 변동폭도 매우 작아 공급원가를 반영하는 전기요금이 되기에는 역부족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시장신호로서의 한계다. 수요자는 현재와 향후 가격변화에 반응하지 일년이나 수개월전의 가격에는 제대로 반응하지 않거나 반응상 시차가 발생한다. 또한 공급원가를 대부분 요금에 반영하고 투자보수를 보장받게 되면 이 역시 사업자의 혁신을 유발하는 시장신호가 되기는 어렵다. 그런 측면에서 현재의 원가연계형 전기요금제는 비용변동을 수요와 공급 측면에 전달하는 시장신호의 기능보다는 사업자의 손실발생을 사후적으로 해결하는 재무안전장치에 더 가깝다.

셋째, ‘시장구조의 문제’다. 원가연계형 요금제도의 도입에도 이처럼 신뢰성을 의심받고 시장신호로서 한계를 보이는 이유는 바로 판매독점이라는 전력시장의 구조때문이다. 전력판매시장이 사실상 독점이기 때문에 정부는 독점사업자의 요금을 통제할 수밖에 없고 이런 구조하에서는 집권정부의 성향과 무관하게 정치 논리가 항상 개입하게 된다. 최근 경험하고 있듯이 원가연계형 요금제를 도입한다고 이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을 것 같다.

사업자가 아무리 스스로의 ‘행태’ 변화에 노력하더라도 정부통제하의 전력시장이란 ‘구조’하에 있는 한 시장원가를 반영하는 유연한 전기요금이라는 ‘성과’가 나타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필자가 원가연계형 전기요금제를 보면서 하버드학파의 이론을 떠올리게 된 이유다. 하버드학파의 ‘구조-행태-성과 이론’이 전기요금의 결정방식에 대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성과’가 제대로 나타나지 않으면 ‘행태’를 바꾸고 그것이 안되면 시장의 ‘구조’를 바꾸어 한다는 논점은 원가연계형 전기요금제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탄소중립 그리고 그 핵심이 전력산업이고 전기요금이라는 점을 온 국민들이 아는 상황에서 만시지탄(晩時之歎)의 느낌은 있지만 이제 정부와 소비자 그리고 사업자가 머리를 맞대고 전력시장의 ‘구조’를 논의하고 개선할 시점이 된 것이 아닐까?

조영탁(한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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