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국영석유기업 2022년부터 원유 수출 중단
천연가스, 리튬, 니켈 등 탄소중립 자원 무기화
세계 5위 소비력 활용 국내에 거래시장 만들어야

지난해 12월 당선된 가브리엘 보리치 폰트(Gabriel Boric Font)칠레 대통령은 좌파 성향으로 리튬산업의 국유화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지난해 12월 당선된 가브리엘 보리치 폰트(Gabriel Boric Font)칠레 대통령은 좌파 성향으로 리튬산업의 국유화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전기신문 윤병효 기자] 최근 자원 가격이 급상승하자 자원이나 기업을 국유화하거나 거래를 통제하는 자원민족주의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이전의 자원민족주의는 석유라는 단일 자원이 타깃이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해법이 쉬웠지만 최근에는 천연가스, 니켈, 희토류 등 탄소중립 필수자원의 공급망(SCM; Supply Chain Management)을 타깃으로 하고 있어 해법이 쉽지 않다는 것이 특징으로 꼽히고 있다.

우리나라가 여러 자원을 모두 안정적으로 확보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세계 최대 수준의 소비 규모를 활용해 국내에 거래 시장을 만들어 대응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주장이 제기돼 관심을 끌고 있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지난 17일 기준 유럽 브렌트유(Brent) 선물가격은 배럴당 86.48달러로 2018년 10월 초 이후 3년 3개월만에 최고가를 기록했다. 당시 가격이 이란 경제 제재로 인한 일시적인 상승임을 감안하면 사실상 현재 유가는 2014년 10월 중순 이후 7년 3개월 만에 최고라고 볼 수 있다.

석유업계는 아직 항공유 수요가 회복하지 않은 점을 고려해 유가의 추가 상승을 예상하고 있다. 골드만삭스와 JP모건은 “수요와 투자의 미스매치로 세 자리 수 유가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유가가 계속 오르자 석유시장에 자원민족주의가 등장했다. 최근 멕시코의 국영석유회사 페멕스(PEMEX)는 자국의 연료 자급률을 높인다는 명목으로 올해 원유 수출량을 기존의 절반 수준인 하루 43만5000배럴로 줄이고 2022년부터는 아예 수출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멕시코는 우리나라의 원유 수입 5위국으로, 실제 수출 제한에 나설 경우 국내 수급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멕시코가 수출 제한에 나선다면 산유국 카르텔인 OPEC+의 시장 장악력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와 러시아 주도로 23개국이 뭉쳐 만든 OPEC+는 세계 원유 공급시장의 35~40%를 차지하고 있으며 매월 회의를 통해 산유량을 조절하면서 국제유가를 높게 형성하고 있다.

지난 1년간 동북아 LNG 현물가격 추이. 자료:CME, Platts
지난 1년간 동북아 LNG 현물가격 추이. 자료:CME, Platts
탄소중립의 브릿지 연료로 주목받으며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천연가스는 러시아의 자원무기화로 활용되고 있다.

유럽연합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둘러싸고 갈등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유럽 천연가스 수요의 35%가량을 공급하는 러시아가 공급량을 제한하며 유럽을 압박하고 있다. 이로 인해 유럽이 세계 LNG 물량을 대거 사들이면서 동북아 가격까지 크게 올랐다. 유럽이 화석연료 중 탄소배출이 가장 적은 천연가스 사용을 늘린 것이 러시아로부터 약점이 된 것이다. CME거래소에 따르면 최근 동북아 LNG 현물가격(3월물)은 MMBtu당 25.255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7~8달러보다 3배 이상 높게 형성되고 있다.

전기차와 배터리 수요가 급증하자 여기에 들어가는 필수광물은 자원민족주의의 좋은 먹잇감이 됐다.

리튬이온 배터리의 리튬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생산하는 칠레는 좌파 성향의 새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리튬산업의 국유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12월 19일 당선된 가브리엘 보릭(Gabriel Boric) 대통령은 공약으로 국영 리튬회사를 설립해 일자리를 늘리고 국내에서 제품까지 생산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세계 최대 리튬생산업체인 칠레의 SQM을 국유화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되고 있다. 현재 SQM은 연간 12만t의 탄산리튬을 생산해 우리나라를 비롯한 배터리 생산국에 판매하고 있다. 지난해 1~11월 우리나라의 탄산리튬 수입량은 3만7493t으로 이 가운데 칠레 비중은 86.3%(3만2350t)로 압도적이다.

중국 거래 기준 탄산리튬 가격은 2019년 평균 kg당 60위안대에서 현재는 310위안으로 5배가량 상승했다. 칠레 대통령은 이 가격에서 만족하지 않고 아예 리튬 수요업체를 칠레로 유치해 부가가치를 극대화하겠다는 전략이다.

이 같은 전략의 성공 사례도 있다.

배터리의 또 다른 핵심 광물인 니켈 세계 생산량의 30%를 차지하고 있는 인도네시아는 지난 2020년부터 니켈의 원광 수출을 금지하고 자국의 제련소를 통해 값비싼 가공품만 수출하고 있다. 이와 함께 니켈을 저렴하게 쓰고 싶으면 직접 현지에 공장을 세우라는 전략도 쓰고 있다.

이는 실제로 효과를 보여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이 현지에 연 10GWh 규모의 배터리 셀 생산공장 건설을 위해 총 11억달러 투자를 결정하고 공사를 진행 중이다. 니켈 가격은 LME 현물 기준 최근 t당 2만2130달러를 기록해 2011년 8월 초순 이후 10년 6개월 만에 최고 수준이다.

중국 정부는 전기차,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등 첨단산업에 사용되는 희토류 자원을 무기화하려 하고 있다. 중국은 희토류 세계 생산량의 70%를 점유하고 있는데 지난해 초 희토류 수출을 국가가 통제하는 규제를 신설했으며 지난해 말에는 자국 희토류 생산기업을 모두 통합한 국영기업인 중국희토그룹을 출범시켰다.

중국은 2010년 일본과의 댜오위댜오섬(센카쿠열도) 분쟁에서 희토류 수출 제한 카드를 꺼내 승리한 바 있다. 이 카드는 미국이나 우리나라에도 얼마든지 사용 가능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자원민족주의는 자원 가격이 급격하게 오를 때 자원 생산국에서 이를 국유화하거나 거래를 통제하는 방식으로 일어난다. 1970년대 자원민족주의는 정치적 배경으로 발생했다. 아랍국과 이스라엘의 중동전쟁 이후 아랍 산유국들이 서방을 압박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원유 수출가격을 급격히 올린 것이다. 2000년대에 다시 등장한 자원민족주의는 중국의 엄청난 경제성장으로 자원 가격이 급격히 오르자 베네수엘라 등 남미 좌파성향 나라에서 서방 기업이 보유한 석유 자산을 국유화 조치했다.

최근 나타나고 있는 자원민족주의는 이전의 정치, 이념적 성향과 달리 오로지 실용주의적 바탕 아래 탄소중립을 위한 첨단산업에 필수적인 여러 광물의 공급망을 타깃으로 하고 있다. 이 때문에 기존의 해외 자원개발, 비축 강화 해법보다는 기업적, 사업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자원산업 컨설팅업체인 쉐일앤쉐이크의 오승훈 대표는 “최근 자원민족주의는 반도체, 배터리 등 첨단산업 필수적인 다양한 광물의 공급망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기존과 다른 SCM형으로 볼 수 있다”며 “우리나라가 여러 광물을 모두 안정적으로 확보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보다 효과적이고 실질적인 해법이 필요하다. 미국이 거래시장을 통해 자국 소비의 7배에 달하는 천연가스를 확보하고 있듯 우리도 세계 5위의 자원 소비력을 활용해 거래시장을 만들면 자원민족주의 문제에 근본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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