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사이도 포켓몬을 잡으러 다니는 사람들이 종종 보인다. 제 주위에 핸드폰을 꺼내들고 이리저리 배회하는 아버지들도 있다. 괜찮은 녀석을 잡아가면 저녁에 집에 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한때 증강현실(AR)의 대명사였던 ‘포켓몬 고(Go)’다. 초창기에는 강릉까지 포켓몬 잡으러 가는 관광상품도 있었다. 터널 입구에 운전 중에 포켓몬을 하면 안된다는 경찰청 플래카드를 보면서 참 대단하단 생각도 했다. 포켓몬 중에 가장 유명하며 그만큼 인기도 많은 포켓몬은 피카츄다. 번개모양의 꼬리를 가지고 있고 온 몸으로 백만볼트 전기를 뿜어낸다.

전기를 만들어내는 피카츄. 피카츄를 보면 에너지프로슈머가 연상된다. 전기의 대표적인 특징은 공급과 수요의 동시성이다. 만들어져서 사용하지만 사용하기 때문에 동시에 만들어지는 것이 전기다. 그래서 수요예측을 해야 하고 예비율을 확보해야 하며 수요관리를 한다. 2014년부터 수요반응(Demand Response)을 발전과 동일하게 여겨주면서 전력시장에서 거래가 가능해졌다. 전기사용량을 줄일 수 있는 공장과 대형 건물의 참여용량이 4GW를 훌쩍 넘긴지 오래다. 2년 전부터는 일반 국민들도 개별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에너지쉼표라는 이름의 국민DR이 시작되었다. 개인이나 소규모 사무실·점포·상가가 줄인 전기소비량이 발전량과 동일하게 전력시장에 팔리는 것이다.

에너지쉼표는 2020년(19년12월~20년11월) 45회 감축요청이 있었고, 2021년(20년12월~21년11월) 54회 감축요청이 있었다. 21년 12월에만 13번의 감축요청이 있었다. 새해 첫 주에도 벌써 2번이 추가되었다. 미세먼지 저감과 전력수급에 도움이 되는 시간에 알림이 오면 전국의 가정과 소규모 사무실·점포·상가가 참여한다. 가정집이 150W를 참여하면 약 2000만 가구의 10%인 200만 가구에서만 줄이는 것이 300MW다. 소규모 사무실·점포·상가에서 1kW를 참여하면 약 700만 사무실·점포·상가의 10%인 70만개소에서만 줄이는 것이 700MW다. 합치면 1GW다.

어떤 타이밍에 전기소비를 줄이는 것은 전기를 발전한 것과 동일한 효과가 있다. 에너지프로슈머가 전기사용을 줄이는 것은 소비를 줄여 요금을 아끼기 이전에 전기를 생산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나 한사람이 전등 몇 개를 끈 것이 내게서 전기가 생산된 것과 같다. 전기밥솥의 보온기능을 꺼놓은 것이 전기를 만들어 낸 것이다. 사무실에서 정수기를 잠시 사용하지 않고 커피숍에서 커피머신을 잠시 가동하지 않는 것이 전기를 만들어 낸 것이다.

수백만명의 에너지프로슈머가 우후죽순으로 서로 다른 시점에 줄이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플랫폼은 동일시점에 수백만명이 생산한 전기를 모아준다. 그 때 우리는 다함께 백만볼트를 내뿜는 피카츄가 된다. 친환경의 주인공이요 VPP(Virtual Power Plant) 당사자가 된다. 발전소로 인정해 주었다면 발전소처럼 대우해줘야 한다. 그래서 발전소가 전기를 생산하는 단가수준의 돈을 준다. kWh당 약 1,300원이다. 명실상부 나 한사람의 행동과 습관이 나를 발전사업자로 만들어준다.

‘나 하나 쯤이야’라는 공익광고가 있었다. 나 하나 쓰레기 버린다고 나하나 새치기한다고 별일 생기겠어? 그러나 그런 나 같은 사람이 모이면서 큰 사회적 문제를 만든다. 이를 거꾸로 생각해본다. 나 하나 몇 W 줄인다고, 나하나 등하나 끈다고, 나하나 에어컨 온도 1℃ 올리고 내린다고 지구가 깨끗해질까? 그러나 그런 나 같은 사람이 모여 사회적 가치를 발휘한다면 어떤가? 이제는 소비자 중심으로 에너지 패러다임이 바뀔 때다. 최근 ESG(Environmental, Social and Governance)가 큰 이슈다. 친환경·사회적 가치의 중요성은 기업의 성패를 좌우할 정도다. 전기소비자의, 전기소비자에 의한, 전기소비자를 위한 ESG를 만들어가야 한다.

전기 소비자는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다. 소비자이며 생산자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공급자나 계통관리자는 소비자에 주목해야 한다. 수요관리가 고도화되어야 한다. 에너지쉼표는 단순히 에너지가 쉬는 시간을 넘어 거꾸로 발전하는 시간이다. 그들이 한데 모이면 백만볼트 피카츄가 되는 것이다. 지금 글을 쓰는데 미세먼지, 초미세먼지 예보가 매우 나쁨이란다. 오늘은 어떤 전기를 줄여서 친환경과 사회적 가치를 발휘하는 피카츄가 되어볼까 하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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