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존수명 활용 ESS로 재사용…재활용 통해 유가금속 채취
환경부, 시흥·홍성·정읍·대구 수거센터 구축…2023년 본격 운영
캠핑용부터 건설용까지 다양한 ESS 규제샌드박스 실증 이뤄져
유럽연합 집행위 배터리광물 사용 규제 강화…재활용시장 주목

미국의 폐배터리 재활용 전문업체인 라이사이클(Li-cycle) 직원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미국의 폐배터리 재활용 전문업체인 라이사이클(Li-cycle) 직원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전기신문 윤병효 기자] 배터리는 탄소중립 시대에서 핵심 솔루션이다. 탄소배출이 가장 많은 모빌리티 분야에서 무탄소 동력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ESS(에너지저장장치)로 활용하면 신재생에너지의 간헐성도 보완하고 단전지역에 소규모 전력 공급도 할 수 있다.

이처럼 배터리는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치명적 단점이 있다. 현재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리튬이온 배터리에는 리튬, 니켈, 코발트, 망간, 알루미늄과 같은 값비싼 광물이 들어가는데 가격만 비싼 게 아니라 생산지역이 한정돼 있어 우리나라처럼 수입국에 절대적으로 불리하고 채굴과정에서 아동 착취와 같은 윤리적 문제까지 발생하고 있다.

이 같은 문제점의 해결 방안으로 사용후 배터리가 주목받고 있다. 신품 이후의 잔존 수명으로 ESS용으로 재사용(Reuse) 할 수 있고 재활용(Recycling)을 통해 리튬, 니켈, 코발트와 같은 유가금속도 채취할 수 있다. 특히 고성능의 배터리를 대중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탄소중립에서 핵심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환경부, 시흥·홍성·정읍·대구 거점수거센터 구축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21년 11월 기준 우리나라 전기차(EV) 보급 대수는 22만2968대로 총 자동차 보급 대수 2486만1477대 중 0.9%를 차지했다.

우리나라 전기차 판매량은 2017년부터 연간 1만대를 돌파하며 본격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현재 국내 자동차 평균 수명이 15.6년임을 감안하면 전기차 수명은 대략 7~10년으로 예상된다. 이를 감안하면 2024년 즈음부터 전기차의 사용후 배터리가 본격적으로 쏟아져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전기차의 사용후 배터리는 2021년 전후로 소유가 구분된다. 2020년까지 정부와 지자체 보조금을 받은 전기차의 사용후 배터리는 지자체 소유이다. 이 사용후 배터리를 쓰려면 지자체의 허가가 필요한데 배터리는 위험하다는 지자체의 보수적 인식 때문에 좀처럼 허가를 내주지 않아 사용후 배터리 시장이 좀처럼 태동을 하지 못했다.

이러한 문제점이 지적되자 2020년 12월 관련 법이 개정돼 2021년부터는 보조금을 받은 전기차라도 차 소유주가 사용후 배터리 소유주로 인정됐다.

환경부는 전기차의 사용후 배터리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배터리의 안전한 회수 및 보관을 위해 전국 4개 지역에 거점수거센터를 구축하고 있다.

171억원을 투입해 수도권은 경기 시흥, 충청권은 충남 홍성, 호남권은 전북 정읍, 영남권은 대구 달서에 센터를 건설 중이다. 센터에서는 사용후 배터리를 회수해 남은 용량과 수명 등 잔존가치를 측정한 후 민간에 매각하는 등 재활용 체계의 유통기반 역할을 수행한다. 센터가 다 지어지면 올해까지 시범운영을 하고 2023년부터 본격 운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현재 법제도상 사용후 배터리의 재사용은 금지돼 있다. 워낙 새로운 제품이다 보니 정부에서 아직 관련 인증과 사용 기준이 마련되지 않은 것이다.

국가기술표준원에서 다양한 사용후 배터리에 대한 규제샌드박스 실증을 토대로 인증과 기준을 마련할 계획으로 이르면 올해 마련될 것으로 알려졌다.

◆1호 재사용 규제샌드박스 굿바이카, CES2022 출전

사용후 배터리는 성능 기준이 높은 전기차 배터리용으로의 가치가 떨어진 것일 뿐 충분히 재사용이 가능하다. 미국 국립재생에너지연구소와 독일 재생에너지협회는 초기 용량의 70~80% 수준인 사용후 배터리를 다른 곳에 활용하면 최대 10년을 더 사용할 수 있다고 추정했다.

시장조사업체 프로스트앤설리번에 따르면 전 세계 사용후 배터리 시장규모는 2018년 6100만달러에서 2025년 78억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사용후 배터리 시장은 크게 둘로 나눠진다. 배터리의 잔존수명을 이용해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재사용 분야와 더 이상 사용 가치가 없으면 가루형태로 분쇄한 뒤 리튬, 니켈, 코발트, 망간 등 유가금속을 추출하는 재활용 분야이다.

재사용 분야는 산업통상자원부의 관련 규제샌드박스를 보면 활용 분야를 유추해 볼 수 있다.

가장 먼저 사용후 배터리 재사용에 대한 규제샌드박스 허가를 얻은 폐차 전문업체 굿바이카는 재사용을 통해 캠핑용 등으로 사용할 수 있는소형 ESS를 제작해 판매하고 있다. 특히 이 업체는 제품의 디자인 및 성능을 인정 받아 이달 초 열린 세계 최대 가전박람회인 미국 CES2022에 출품해 해외시장에 도전하고 있다.

SK온과 SK에코플랜트는 재사용으로 제작한 ESS를 건설현장의 수배전반과 연결해 임시전력용 발전시스템으로 사용할 계획이다. 에너지기술연구원과 현대자동차는 재사용 ESS와 자가소비용 태양광 발전설비를 연계해 부산 에코델타 스마트시티 가구단지에 전력을 공급할 계획이다.

SK E&S는 재사용 ESS와 태양광 발전설비와 전기차 충전기를 연계해 전기차 충전시스템으로 제주테크노파크 디지털융합센터에서 운영할 게획이다. 퀀텀솔루션은 재사용 배터리팩을 장착한 개인형 이동장치 및 전기스쿠터를 제작 및 운영할 계획이다.

대륜엔지니어링은 재사용 배터리팩을 장착한 농업용 전동고소작업차를 제작 및 운영할 계획이고 대은은 재사용 배터리팩 및 IoT 통신원격 단말장치를 활용해 독립형 태양광 가로등을 제작 및 운영할 계획이다. SK텔레콤, 현대차, 화학융합시험연구원, 에스피브이는 재사용 ESS가 설치된 자동차를 활용해 이동형 전력 공급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폭스바겐은  지난해 1월 독일 잘츠기터에 배터리 재활용 공장을 준공해 가동 중에 있으며 앞으로 배터리팩에 사용되는 재료의 95% 회수를 목표로 하고 있다.
폭스바겐은 지난해 1월 독일 잘츠기터에 배터리 재활용 공장을 준공해 가동 중에 있으며 앞으로 배터리팩에 사용되는 재료의 95% 회수를 목표로 하고 있다.
◆유럽연합, 2024년 탄소발자국 및 2027년 성분 규제

사용후 배터리 재활용 분야는 특히 유럽에서 주목받고 있다. 유럽은 탄소중립을 가장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지역으로 그만큼 배터리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처럼 배터리 광물자원이 부족하다. 유럽연합은 향후 배터리 광물의 재활용을 의무화해 광물 수급을 안정화하고 현지 업체의 경쟁력도 높이는 전략을 펴고 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2020년 12월 발표한 친환경 배터리 규제안에는 투명하고 윤리적인 원자재 수급, 배터리의 탄소발자국, 재활용 등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규제안에 따르면 2024년 7월부터 충전 가능한 전기차 배터리 및 모든 산업용 배터리는 탄소발자국을 공개해야만 시장에서 판매될 수 있고 2026년부터는 탄소발자국 의무 상한선을 정할 방침이다. 또한 2027년부터 배터리에 들어가는 원자재들의 성분 비율을 공개해야 하며 2030년 1월부터는 코발트의 12%, 리튬의 4%, 니켈의 4%를 재활용 원료로 사용해야 한다. 이 비율은 2035년부터 크게 상향 조정될 예정이다.

시장조사업체 마켓앤마켓츠(Markets and Markets)에 따르면 세계 리튬이온 배터리의 재활용 시장은 2025년 121억6900만달러(약 14조6575억원)에서 연평균 8.2%씩 성장해 2030년에는 180억8600만달러(21조7845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LG에너지솔루션과 GM의 합작사 얼티엄셀즈는 북미 최대 배터리 재활용업체인 라이사이클(Li-cycle)과 폐배터리 재활용 계약을 체결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이를 통해 셀 제조 과정에서 생산한 다양한 배터리 원재료 부산물 중 95% 가량을 재활용할 수 있게 됐다.

SK온은 ‘배터리에서 배터리를 캔다’는 목표 아래 그간 정유공장 운영을 통해 축적한 기술을 바탕으로 폐배터리에서 수산화리튬 추출·회수 기술을 자체 개발해 54건의 특허를 취득했다. SK온의 모회사 SK이노베이션은 ‘BMR(Battery Metal Recycle) 추진담당’을 신설했다.올해 BMR 시험공장을 설립하고 오는 2025년부터 본격 가동할 계획이다.

삼성SDI는 폐배터리 재활용 활성화를 위해 2020년 천안·울산사업장 공장에서 발생하는 스크랩 순환 체계를 구축했다. 삼성SDI는 2019년 사용후 배터리 재사용 전문기업 피엠그로우에 지분을 투자하고 배터리 재활용업체 성일하이텍 등 국내 업체와 협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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