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신문 윤재현 기자] 법은 그 내용뿐만 아니라 제정과정에서도 민주적이어야 한다.

절차적 민주주의다. 몇몇 법학자들은 내용보다 절차가 더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제대로 된 민주적 절차를 거치면 그 내용도 민주적일 뿐만 아니라 그것이 독재국가와 민주국가의 근본적인 차이점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법률, 시행령, 시행규칙 등이 제정되고 개정되는 현실에서 국민이 모든 법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아니며 그것이 가능하지도 않다. 그러나 법을 알고자 하는 국민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국가는 적극 협조해야 한다.

빛바랜 이론이지만 19세기 영국 법철학자 오스틴은 “법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주권자의 명령”이라고 간단명료하게 정의했다.

공화정인 대한민국에서 주권자는 국민이다.

최근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 주권자인 대다수 국민 몰래 ‘원자력안전 정보공개 및 소통에관한 법률’(이하 소통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하위법령)을 제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여 비난받고 있다.

소통법의 목적은 원자력안전과 관련된 정보의 공개 및 소통에 관한 사항을 규정해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고, 원자력안전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증진하는 것이다.

주요 내용은 ▲원자력안전정보의 공개범위 확대 ▲정보공개의 주체가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 원자력사업자로 확대 ▲원전 주변 지역에 원자력정보공유센터 설치 ▲주요 정책 수립할 때 원안위가 직접 공청회 개최 ▲원자력안전협의회 설치의 법적 근거 마련 등이다.

국민의 알권리와 신뢰는 제정과정에서 법의 내용을 국민에게 투명하고 적극적으로 공개하는 것이 먼저다. 그런데 원안위는 시행령 제정과정에서 과도하게 보안을 유지하고 공개를 꺼렸다.

지난해 12월 초 부산 해운대에서 열린 워크숍에서는 원안위에서 언론의 취재를 막았고 하윕법령안을 당일 배부했는데 배부 당일 회수하려고 했으나 참석자들의 반발로 회수하지 못했다.

이날 워크숍에 참석했던 한 주민은 “시행령을 당일 주고 검토하라는 것이 상식적이냐”고 항의했다.

원안위에서 시행령 및 시행규칙 제정에 얼마나 보안을 유지했는지 환경단체 및 원전이 위치한 기장군 지역 국회의원도 내용을 모르고 있었다. 지역의 선출직 정치인조차 모른다는 것은 대의민주주의에 어긋나는 일이다. 원안위는 시험을 통과한 공무원으로 이루어진 조직으로 선거로 뽑힌 대의기관도 아니다.

하위법령의 일부 내용에 반발하고 그 결과 시끄러워지고 여론의 관심을 받으면 통과가 지연되거나 원안위의 의도와 달리 내용이 수정되는 것을 우려, 얼렁뚱땅 통과시키려고 한다는 말이 나돈다. 지역에서는 “정보공개청구 하는 것보다 더 많은 내용을 공개하는 것도 아닌데 정보공개를 확대하는 것은 말장난이다.” “원자력안전재단 직원들 자리 늘리기다”라는 등 온갖 소문이 나돌고 있다.

기장군의 태도도 이해할 수 없다. 제정과정 중이기 때문에 입장을 밝힐 수 없다고 했다. 기장군은 법령의 개정절차가 제정과정에서 의견을 제시하는 것보다 더 쉽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저명한 법철학자 중 한 명은 민감한 사안일수록 공청회에서 충분한 논의를 거쳐야 하는데 소통법에 소통의 자세가 없다고 평가했다.

법은 제정과정에서 조용한 통과보다 시끄럽고 여론의 비판을 받더라도 주권자인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담아야 한다. 국가 안보와 같은 특별한 사유 없이 보안을 유지하는 것은 독재국가에서나 하는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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