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지난 해 12월 13일 여수 이일산업에서 폭발사고로 하청노동자 세 분이 유명을 달리하였다. 정부는 이번에도 낡은 녹음테이프 틀어놓듯 엄벌을 부르짖고 있지만 이 사고의 근본적 원인을 찾아 들어가면 그 가운데에 정부가 발의한 ‘전부개정 산업안전보건법’(소위 ‘김용균법’)이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금번 사고와 같은 보수공사성 도급작업에 대한 멀쩡한 규제를 삭제하는 등 도급규제를 난마처럼 꼬이게 한 것이 전부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이기 때문이다.

현 정부는 ‘위험의 외주화’라는 프레임에 갇혀 이념적 구호만 되뇌었을 뿐 하청노동자의 실질적인 보호를 향해서는 단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뒷걸음질을 쳤다. 이론적으로 경험적으로 가장 위험한 사업장 내 유지보수공사에 대한 도급인의 안전조치의무를 무장해제시켰을 뿐만 아니라, 하청(도급)작업관계에 대한 안전보건관리체제를 형해화시키기도 했다. 도급작업에 대한 안전조치의무와 불법파견의 관계에 대한 무지로 종전에 의무화돼 있던 하청업체와 하청노동자에 대한 안전조치도 임의화시켜 버렸다.

노동계, 일부 시민단체, 언론 및 얼치기 전문가는 도급규제가 이처럼 대폭 약화된 것도 모른 채 김용균법 통과에 핏대를 올리고 그 통과를 자축하기도 했다. 실제는 도급규제를 무력화시켜 놓고 말로만 도급규제를 강화했다고 떠벌린 정부의 기만에 놀아난 줄도 모르면서. 산재예방 역사에 두고두고 남을 개악이자 난맥상이다.

문제투성이인 산업안전보건법상의 도급규제를 정상화시키지 않고는 하청노동자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중대재해법으로 아무리 처벌을 강화한들 산업안전보건의 기본법인 산업안전보건법의 도급규제가 엉성하고 구멍이 많이 뚫려 있는 상태에서는 별무소용이 될 수밖에 없다. 전부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을 다시 전부개정이라도 해야 하는 이유이다.

더욱 큰 문제는 고용부가 이 문제를 쉬쉬하며 숨기고 있다는 점이다. 문제해결을 위해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당장 개정에 나서도 모자랄 판에 말이다. 고용부는 잘못이 탄로 날까 봐 아무런 법적 근거 없는 자의적 지침으로 구렁이 담 넘어가듯 얼버무리고 있다. 김용균법 제정에 앞장선 자들도 이에 눈감고 있다. 모르는 것인가, 아니면 알고서도 모른 체하는 것인가. 전자라면 무능이고 후자라면 위선이다. 하청노동자를 두 번 죽이는 눈속임과 사명의식 부족에 실망감을 넘어 화가 치민다.

정부는 산업안전보건법을 바로 잡을 생각은 하지 않고 이 공백을 중대재해법으로 어물쩍 메우려고 하는 편승을 했다. 그것도 진정성 없이 거칠고 엉성하게. 매사에 면밀한 조사연구와 논의 없이 생색내기에 급급하다 보니 양 법 간에 충돌과 착종이 발생하면서 도급규제가 뒤틀릴 대로 뒤틀리고 말았다. 논리와 실효성은 사라지고 원청이 크고 여유가 있으니 다 하라는 식이다. 그것도 하청과 동일한 의무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도급작업 중에는 전문적인 업무도 많고 원청보다 하청이 더 큰 경우도 적지 않은 현실은 외면하고 있다.

중대재해법은 원청이 장소를 지배(소유)한다는 이유로 원청에게만 안전조치 의무와 책임을 부과하고 ‘작업’을 지배·관리하는 하청한테는 아무런 의무와 책임을 부과하지 않아도 된다는 접근을 하고 있다. 이념 이전에 무지의 소치이다. 이런 엉성한 접근이 하청의 안전관리에 대한 무관심과 이에 따른 약화를 조장할 것은 불을 보듯 훤하다. 작업의 당사자인 하청의 안전관리에 대한 자율의지 없이 하청노동자 보호가 제대로 이루어지길 기대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이자 순진한 발상이다.

김용균법도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래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설상가상으로 중대재해법은 의무주체 문제를 더욱 복잡하고 꼬이게 만들었다. 전문가조차도 의무주체에 해당하는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책임’이 도대체 누구를 가리키는지 알 수가 없다. 해설서도 이에 대한 설명이 없다. 이런 불명확성은 안전조치의 이행으로 이어질 수가 없다. 수범자에게 겁을 주는 효과는 있을 수 있어도 실효성은 거두기 어렵다.

두 달 후면 새로운 정부가 탄생한다. 바라건대, 새 정부는 더 이상 안전문제를 생색내기와 이념주의의 제물로 삼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현장의 산재예방에 도움은 못 줄지언정 적어도 훼방꾼이라는 소리를 듣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요란한 슬로건이 아니라 진정성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실사구시 접근에 산재감소의 답이 있음을 가슴에 되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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