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또 전기요금 동결을 검토한다고 밝혔다. 이유는 치솟는 물가 관리. 전기요금을 꽁꽁 묶어두면 물가가 잡힐까. 소비자물가 상승률만 관리하면 국민 생활과 국가 경제는 파란 불일까.

11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0월에 비해 0.4%, 지난해에 비해 3.7% 상승했다. 식품 가격은 전월대비 0.7%, 전년동월대비 5.4% 올랐다. 기재부 관계자는 소비자물가지수 가중치를 고려할 때 전기료 인상이 연간 물가상승률에 미치는 영향은 0.0075%포인트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9월 연료비연동제를 처음 가동해 전기요금을 3원/kWh 인상하면서 덧붙인 말이다. 가을엔 전기요금이 물가 상승률에 별 영향을 주지 않는다더니 겨울이 오니 말이 160도 틀어졌다.

대한민국에서 전력은 필수재로서 공공성을 강하게 띠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전기를 두고 상품이다, 공공재다 논란이 존재하지만 이는 이론적 영역에서의 다툼일 뿐 실제 대한민국은 낮은 가격으로의 전력공급을 정부의 중요한 역할로 받아들여 온 것이 사실이다. 이를 문제 삼으려는 것이 아니다. 전기요금을 엉뚱한 수단으로 계속 쓰다간 우리의 미래가 일그러질 수 있다. 그 책임의 문제다.

최근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소비자들은 낮은 전기요금을 선호한다. 정부가 한전에 보조금을 지급하더라도 전기요금은 가급적 낮게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에 응답자의 56.3%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해서 한전이 경영의 부실을 감수하며 전기요금을 무작정 낮추는 것을 바라는 건 아니다. 응답한 국민의 46.6%는 한전이 적자가 나지 않을 정도로는 전기요금을 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고, 19.5%만이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응답자의 58.8%는 연료비 상승에 따른 5% 미만의 전기요금 인상은 수용할 수 있다고 답했다.

국민들은 합리적 근거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전기요금이 현실화되는 것에 대해서는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단, 소비자가 합리적 전기요금의 인상을 받아들일 수 있으려면 투명한 정보 공유와 일관성 있는 설명은 필수다. 요금과 서비스가 연동된 전기요금제를 설계하고 이에 대한 소비자의 선택권을 확산하는 것이 필요하다.

응답한 국민의 53.4%는 핸드폰 요금처럼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전기요금 제도의 도입을 선호했다. 전기소비 패턴에 따른 전기요금제 선택을 통해 전력피크 수준을 낮출 수 있고 발전설비 건설을 그만큼 줄일 수 있다. 이는 숨은 발전소 찾기나 진배없다.

응답한 국민의 81.5%는 전기를 사용하면서 실시간으로 집안에서 사용량을 확인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소비자가 수시로 전기사용량을 볼 수 있어야 전기요금 선택제가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각 가정마다 스마트미터기를 설치하는 것도 방법이 되겠지만 한 가구 당 하나씩은 갖고 있는 스마트폰과의 연동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더욱 현실적일 수 있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세심한 조치는 필수다.

한 번 설계된 전기요금제도를 바꾸려면 상당한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한다. 기후위기가 일상의 일부가 되고 탄소중립에 대한 필요성이 확산되는 현 시점은 그래서 혁신의 적기다. 대한민국 전력여건에 가장 적합한 전기요금 제도를 설계하고 이를 소비자 여건과 전기소비 패턴에 따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전기요금 제도는 전력시스템, 전력시장의 운영과 톱니바퀴처럼 연계될 때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전기요금 제도의 바른 혁신은 합리적 전기소비의 필요성을 체감하고 전기소비를 효율화해 심각한 출혈 없는 바람직한 미래와의 연결고리를 만들어준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전기소비 패턴 분석이다. 이번 전기요금제 설계는 가시적 결과물을 빨리 내놓는데 집착하지 말고, 대한민국의 미래와 국민의 현실에 무게중심을 두고 정교하고 묵직하게 접근해야 한다. 일방적이고 기습적으로 해서도 안 된다. 설계의 중심축은 전문가가 되겠지만 그 과정은 각계각층의 소비자들이 들여다보고 생각을 보탤 수 있는 플랫폼을 갖추고 출발해야 한다.

전기요금 동결 소식이 이 겨울 따뜻함보다 서늘함으로 느껴지는 이유를 정부는 헤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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