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중간선거를 앞둔 조 바이든 대통령은 딜레마에 빠졌다. 기록적인 물가상승 때문이다. 인플레이션이 31년 만에 최고로 치솟자 자신에 대한 지지율은 곤두박질쳤다. 문제는 물가상승의 주범인 에너지 가격을 내릴 수 있는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것이다. 주유소의 휘발유 가격은 심리적 마지노선인 갤런당 3달러를 훌쩍 넘어 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고. 핵심 지지층이 모여 있는 캘리포니아에서는 사상 최고수준인 4.7달러에 달해 시민들의 불만이 고조되었다. 휘발유 가격이 3달러에 달하면 어김없이 사우디아라비아등 산유국의 증산을 압박해 국제유가를 끌어내린 전임 트럼프 대통령에 비해 무기력해 보이기까지 했다. 바이든 대통령도 OPEC+ 국가들에게 생산량 증대를 요청했지만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비서실장, 국무장관, 에너지장관 등 최측근들을 불러 모아 대책을 논의했지만 마땅한 방법이 나오지 않았다. 미국산 원유의 수출 통제와 같은 극단적 방안도 논의했지만, 쿠웨이트의 생산량보다 많은 하루 3백만 배럴의 미국 수출물량이 빠지면 국제유가는 오히려 큰 폭으로 상승하고 시장은 큰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전략비축유(SPR) 방출이 유일한 선택이었지만, 더 많은 석유를 시장에 공급해 휘발유 가격을 낮추는 것이 화석연료 소비를 줄이자는 자신의 에너지전환 정책과 배치된다는 비판을 우려했다. 신재생 에너지의 가격 경쟁력을 높여 화석연료를 퇴출시키기 위해서는 석유가격이 높게 유지되어야 하는데, 국가 비축유까지 풀어 휘발유 가격을 낮추면 오히려 에너지 전환 속도를 늦추게 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바이든 대통령은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UN 기후변화협약 당사국회의(COP)에서 메탄가스 감축 협정을 주도하는 등 탈탄소 드라이브를 주도했다. 그러나 ‘정치인’ 바이든은 당장의 휘발유 가격과 인플레이션이 더 중요했다. 자칫 물가상승을 잡지 못해 화석연료를 주창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하게 되면 에너지 전환 자체가 물 건너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고심 끝에 COP회의가 끝난 후에야 전략비축유 방출 결정을 발표했다. 바이든 자신도 탄소중립으로 가는 길이 쉽지 않다고 실토했다.

금년 초부터 시작된 에너지 가격의 고공행진은 지구촌 탄소중립 실현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거대 화석연료 소비국인 중국과 인도는 전력부족과 에너지난을 핑계로 다시 석탄생산을 늘리고 있고 더 많은 석유와 천연가스를 비축하려 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의 전략비축유 방출 공조요구에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이유이다. 최근 석탄이나 천연가스에서 추출하는 요소수 부족사태가 보여주듯 우리사회는 아직도 화석연료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 거의 대부분이 화석연료에 기반한 것들이다. 내년 봄 경작을 위해 비료를 한창 생산하고 있어야 할 이 즈음 천연가스 가격의 급등으로 요소의 원재료인 암모니아 생산이 큰 차질을 빗고 있다. 다가오는 봄에는 전 지구촌이 비료부족으로 몸살을 앓을 것이다. 경작을 포기하는 농가가 늘어나고 농산물 가격은 급등하여 인플레이션을 가속화 시킬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지금부터이다. 석유와 가스에 대한 투자가 급격히 줄어들어 2025년경부터는 국제유가가 상승 사이클을 탈 확률이 높다. 2014년 유가 급락 후 글로벌 석유업체들은 신규 탐사·생산(E&P)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를 대폭 줄였는데, 코로나19로 인한 수요파괴와 전 세계적 탄소감축 정책으로 투자를 더 줄였다. 문제는 이러한 투자 감소의 결과가 몇 년 후부터 나타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유전 개발에 보통 10년 가까이 걸리는데 지금껏 생산이 증가해온 것은 그 이전 투자의 결과이다. 2015년부터 투자가 급감했으니 2025년경부터는 세계 원유생산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지난 10여년 세계 원유 생산증가의 대부분을 담당했던 미국의 셰일오일도 바이든 행정부의 환경규제와 투자자들의 이익배당 요구 등으로 생산 증가폭이 둔화될 것으로 보인다.

OPEC+가 현재의 유가급등과 공급부족이 글로벌 석유기업들의 투자급감이 문제라며 증산을 거부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세계 3대 원유 생산국인 러시아의 잉여생산능력도 바닥을 보이고 있어 중동 산유국들의 입김이 점점 더 세질 것으로 보인다. 실제 전 세계 잉여생산능력의 75%를 사우디와 UAE 두 나라가 차지하고 있다. 미국산 원유와 유럽 브렌트의 상대가격이 탄소저감 비용으로 올라감에 따라 중동산 원유의 가격경쟁력이 개선되어 시장을 장악할 것으로 보인다. 중동지역의 지정학 리스크가 불거지면 유가가 급등할 것이다. 우리가 도입하는 천연가스도 국제유가에 연동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에너지 안보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만에 하나 탄소중립을 쫓는 과정에서 에너지 수급이 잘못되어 경제가 멈추고 국민들의 불편이 가중되면 브레이크가 걸릴 수밖에 없다. 우리가 2050 탄소중립이라는 목표를 반드시 달성하기 위해서는 향후 30년 동안의 에너지 수급에 빈틈이 없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급변하는 국제 에너지시장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정밀한 예측이 필수적이다.

이종헌 S&P Global Platts 수석특파원

중앙대 박사 (국제경제)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개발전문위원회 위원

<오일의 공포> <에너지 빅뱅>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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