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5000만배럴 방출, 한·일·중·영·인도 방출 동참
정부 “동맹 중요성 감안, 방출 규모·시기 협의 결정”
미국 휘발유값 고공행진…대통령·민주당 지지율 비상
골드만삭스 “가격안정효과 일시적, 장기적으로 더 오를 수도”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기름값을 낮추기 위해 전략비축유 방출을 결정했다. 사진:백악관 트위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기름값을 낮추기 위해 전략비축유 방출을 결정했다. 사진:백악관 트위터

[전기신문 윤병효 기자]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기름값을 잡기 위해 특단의 대책을 내놨다. 전쟁 등으로 석유 수급이 여의치 않을 때를 위해 저장해 놓은 전략비축유(SPR)를 방출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미국의 요청으로 한국, 일본, 인도, 중국, 영국도 비축유 방출에 동참하기로 했다.

이로 인해 세계 기름값은 일시적으로 낮아질 수 있으나 산유국 카르텔인 OPEC+가 원유 생산을 더 줄이는 등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그 OPEC+를 스트롱맨으로 불리는 사우디의 빈 살만 왕세자와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이끌고 있어 바이든 대통령이 상대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현지시간 23일 발표를 통해 기름값을 낮추기 위해 전략비축유(SPR; Strategic Petroleum Reserve) 방출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규모는 총 5000만배럴이며 몇 달에 걸쳐 방출이 이뤄질 예정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을 비롯해 세계 경제가 코로나 펜데믹에서 벗어나 성장하면서 석유 공급이 수요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며 “필요한 경우 추가 조치도 취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적절한 공급을 유지하기 위해 전 세계와 협력해 모든 권한을 사용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이번 방출에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 중국, 인도, 영국도 동참한다.

우리 정부는 24일 발표를 통해 “미국이 제안한 비축유 공동방출에 동참하기로 결정했으며 방출물량 및 시기 등 구체적 사항은 향후 미국 등 우방국과 협의를 통해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비축유 방출 배경에 대해 “최근 급격하게 상승한 국제유가에 대한 국제 공조 필요성, 한미 동맹의 중요성 및 주요 국가들의 참여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는 한국석유공사가 약 9700만배럴의 비축유를 보유하고 있어 외부 수급 없이도 100일을 자급할 수 있으며 민간기업 재고량 1억배럴까지 합치면 총 200일을 버틸 수 있다.

이번 전략비축유 방출은 매우 이례적이다. 원래 전략비축유는 전쟁 등으로 인해 원유 수급이 원활치 않을 때만 사용한다. 지금까지 총 3번의 방출 모두 수급 위기 상황에서만 이뤄졌다. 1990년 8월~1991년 11월 걸프전, 2005년 9~10월 허리케인 카트리나, 2011년 7~8월 리비아사태 때 국제에너지기구(IEA)의 공조 아래 국제 공동 방출이 이뤄졌다.

하지만 이번 방출은 별다른 수급 위기가 없는데도 오로지 기름값이 높다는 이유에서 미국의 일방적 요청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처럼 바이든 대통령이 다소 무리한 카드를 꺼내든 이유는 크게 2가지이다. 자국 내 급락한 지지율을 반등시키기 위한 것이 우선 목적이고 산유량 담합으로 국제유가를 쥐락펴락하고 있는 산유국 카르텔 OPEC+에 타격을 입히기 위한 것도 있다.

미국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22일 기준 미국 평균 휘발유가격은 갤런당 3.395달러이다. 유류세가 없는 미국에서 휘발유 3달러는 ‘역린’과 같은데 지난 7월부터 3달러 이상 수준이 계속되고 있다. 2019년 9월 트럼프 전 대통령이 트위터에 “전략비축유를 풀겠다”며 OPEC에 엄포를 놓았을 때 가격은 불과 2.4달러였다.

높은 기름값 등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 지지율은 계속 하락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와 ABC뉴스가 지난 7~10일 미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표본오차 ±3.5%p)를 보면,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긍정 평가는 41%로 올해 1월 취임 후 가장 낮았고 부정 평가는 53%에 달했다. 이달 초 진행된 민주당 텃밭인 버지니아주 주지사 선거에서는 12년만에 공화당이 승리했다.

올해 초부터 현재까지 미국 휘발유 가격 추이. 자료:미국에너지정보청(EIA)
올해 초부터 현재까지 미국 휘발유 가격 추이. 자료:미국에너지정보청(EIA)
바이든 대통령은 기름값을 낮추기 위해 OPEC+에 원유 생산량을 늘리라고 수 차례 압박을 가했다. 하지만 OPEC+는 아랑곳 없이 계획한 대로만 움직이고 있다.

사우디와 러시아를 주축으로 23개 산유국으로 구성된 산유국 카르텔인 OPEC+는 2018년, 2019년에 공급과잉으로 국제유가가 너무 낮게 형성되자 2020년 5월부터 원유 생산량을 감축하기로 담합했다. 감축량은 기준생산량(4210만배럴/d) 대비 초기 970만배럴/d에서 올해 7월에는 575.9만배럴/d로 줄었으며 이후부터 매월 40만배럴씩 감축량을 줄여가고 있다. 오는 12월 2일 OPEC+의 정례회의가 열릴 예정인데 바이든 대통령은 감축량을 더 줄여 원유 생산을 늘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 지도자 중 대표적 스트롱맨으로 꼽히는 사우디의 빈살만 왕세자와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OPEC+을 이끄는 한 바이든의 요구는 씨알도 먹히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바이든의 다음 카드로 이란과의 핵협정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중동에서 사우디 다음으로 최대 산유국인 이란은 미국의 경제제재로 원유 수출이 금지돼 있는데 수출이 재개되면 곧바로 50만~100만배럴/d 수출이 가능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석유업계 및 전문가들은 바이든 대통령의 비축유 방출 카드가 기름값을 낮추는데 큰 효력을 발휘하진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나중에는 가격을 더 높일 수 있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에너지 전문매체 플래츠(Platts)는 비축유가 방출되면 공급초과가 발생하기 때문에 OPEC+가 감축량을 동결하거나 나아가 감축량을 확대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조 맥모니글(Joe MacMonigle) 국제에너지포럼(IEF) 회장은 “OPEC+가 차기 회의에서 현 증산계획을 유지할 것으로 보지만 비축유가 방출된다면 시장을 재평가할 가능성이 있다”며 “석유산업 투자감소가 에너지 가격 상승을 유발해 기후변화 대응을 방해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골드막삭스는 이달 초 보고서에서 “비축유가 방출되더라도 일시적인 가격 안정세만 제공할 뿐, 셰일 생산업체들의 생산을 줄여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며 “구조적인 원유의 공급 부족으로 유가는 장기적으로는 훨씬 크게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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