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시간이 지난 지하철 객실은 혼잡하지 않아 승객 대부분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일간지를 읽고 있던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일그러진 표정으로 옆 좌석 어르신에게 신문을 보여준다. 그리고는 낮은 목소리로 “지하철 적자를 늙은이에게 떠넘기며 또 눈치를 주네, 이 나라를 이렇게 잘 사는 나라로 만든 게 누구 덕분인데…” 혀를 차며 다시 신문을 읽어 내려간다.

그렇다. 이들 어르신 세대는 6.25 한국전쟁의 폐허 속에서 후 세대에게는 더 이상의 전쟁과 가난을 물려줘서는 안 된다는 신념 하에 허리띠 졸라매며 죽도록 일만 한 세대들이다. 60년대에는 ‘잘 살아보자’ 라는 정부의 계몽정책 아래 ‘올해는 일하는 해’, ‘전진의 해’, ‘싸우면서 일하는 해’, ‘건설의 해’등 해마다 바뀌는 선동적 구호 아래, 미래세대를 위해 희생한 세대들이다.

어디 그것뿐이겠는가? 70년대 산업화 시대에는 저가 제품을 통한 수출 경쟁력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정부는 노동인권을 등한시 했으며 사업주들은 이 틈새를 악용 노동자의 인권을 사정없이 유린하였다. 저임금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 소녀공들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방직공장, 고무신공장, 가발공장, 봉제공장, 전자부품공장에서 밤을 새워 일을 했다. 또한 소년공들은 유해 화학 약품 냄새가 진동하는 선반공장, 연탄공장, 철강공장, 피혁공장, 염색공장에서 고용주와 작업반장의 혹독한 감시 속에 노동력을 착취당했다.

현재 65세 이상의 어르신들은 산업화 과정에서 부강한 조국 건설을 위해 많든 적든 노동력을 무상제공한 세대들이다. 국민 1인당 소득, 100달러 미만의 불모지에서 현재 3만 달러를 넘긴 공적에는 분명 산업화 세대가 견인차였으며 경제대국의 마중물 역할을 했다.

그럼에도 이들은 지금 행복하지 않다. 정부에서는 고령화, 초고령화 시대라며 어르신 세대를 재정부담 요인으로 꼽고 있어 젊은 세대의 눈치를 보는 계층으로 전락해 있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시장은 ‘지하철 무임승차 손실 보전’을 정부에 공식 요청하는 과정에서 제도적으로 합당한 어르신들의 무임승차를 손실의 주요 요인으로 발표하며 또 한 번 눈치를 주었으며 이로 인하여 어르신들은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지하철 무임승차 제도는 1984년부터 만 65세 이상 노인들에게 혜택을 주었으며 도입 무렵 이에 따른 손실 비용은 지하철 운영주체인 관련공사와 지방정부가 감당하는 것으로 했다. 그러나 당시 성장위주의 경제 정책으로 국민들의 복지는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에서 예산을 편성할 때마다 뒤편으로 밀려나 어르신들의 무임승차에 따른 손실은 해당 지방정부에서 고스란히 떠안는 결과를 초래 했다.

그렇지만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복지제도는 그동안 사회복지는 물론 문화, 교육, 노동, 의료, 교통복지 등 다양한 사회보장 제도로 진화되었다. 예컨대 아동들에게 매월 주는 아동수당과 돌봄 제도, 청소년의 경우 무상교육과 무상급식 등 특성화된 복지혜택이 있다. 이와 관련하여 서울시의 건전재정을 위협하는 근원은 지하철 무임승차뿐 만아니라 세대별 주어진 각종 복지 제도가 주요 원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편향된 인식을 갖고 교통복지의 일종인 지하철 무임승차를 부각시키며 재정부담 요인으로 발표한 것은 서울시의 신중하지 못한 처사라 할 수 있다.

지난 9월 서울시에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10년간 민간보조금이나 민간위탁금 명목으로 시민사회, 시민단체에 지원한 예산이 약 1조원에 달한다 했다. 그런데 이들 단체에게는 재정적자의 원인이 된다는 발표는 하지 않았다. 따라서 묻고 싶다, 서울시의 재정건전성에 위협이 되는 복지가 관연 어떤 복지인지, 왜 유독 당연한 교통복지를 들추어내며 어르신들에게 눈치 승차를 주는 이유를 알고 싶은 것이다.

분명한 것은 어르신들의 지하철 무임승차는 교통복지로써 보편적 복지의 일환이다. 그러므로 지하철운영에 따른 적자와 연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회복지, 교육복지 등 일반적 복지와 같이 동일한 차원에서 예산을 지원해 주면 되는 것이다. 어르신 무임승차제도가 눈칫밥 해소를 위해 도입한 무상급식제도의 뼈아픈 전철(前轍)을 밟지 않도록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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