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신문 나지운 기자] 신문사는 독자의 신뢰를 먹고 산다. 독자는 언론사가 사실을 가감없이 밝혀 문제점을 고쳐주고 사회 발전에 기여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자가 이해관계자들과 타협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사실을 말해야 한다. 옳고 그름의 판단이 분명하지 않아 논란의 여지가 남아있다면 보도 수위를 조절할 수는 있지만, 사실은 있는 그대로 밝혀야 한다.

그런 점에서 최근 벌어진 한 전문공사업계의 담합 사실은 당시 기자에게 많은 고민을 안겨줬다. 밝혀진 사실은 있는 그대로 쓰되, 비판의 수위를 정하는 게 어려웠다는 뜻이다. 담합은 해당 업계의 공정 경쟁 의식을 깎아내리고 업계의 이미지마저 실추시킬 수 있는, 결코 해서는 안 될 행위다. 하지만 담합에 가담한 업체들 중에는 해당 업계를 대표하는 협회 임원들의 업체도 있었다. 심지어 협회장의 회사도 있었다.

협회의 임원들이 얽힌 사건이라고 해서 보도를 포기한다면 독자들이 보내는 신뢰에 반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불필요한 오해도 피하고 싶었다. 안그래도 당시 기자는 해당 협회의 정관 개정과 관련된 사안을 취재하고 있었고, 이에 대해 해당 협회는 불편한 기색을 내비친 상태였다. 전기신문이면 전기공사업계 소식만 알아보지 왜 남의 협회 소식을 궁금해냐는 소리까지 들었다. 해당 협회의 홍보 담당자가 주변인들에게 기자가 취재중인 사실에 대해 불만을 제기했다는 소식도 들었다. 전기공사업 경영자분들이 전기공사만 하시는 것도 아니지 않나. 기자가 취재를 하고 다니는게 왜 문제란 말인가.

하지만 기자도 사람인지라 이런 상황에서는 부담이 된다. 보도 자체를 포기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물에 물 탄 듯 기사를 쓸 수도 없다. 그건 안 쓰느니만 못하다. 무엇보다 독자의 신뢰를 잃게 된다. 신뢰는 종잇장과 같다. 한 번 구겨지면 다시 핀다고 한들 구겨진 자국은 남는다. 한 번 잃은 신뢰는 다시 회복하는 게 굉장히 어렵다.

결국 기사는 보도됐다. 마침 국정감사 시즌이었는데,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국회의원이 국정감사에서 언급까지 했다. 가벼운 사안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국회의원이 나에게 일 안하고 뭐하냐고 따지는 같기도 했다. 기자는 사실을 밝혀야 하지만 때론 밝히기 어려운 사실도 있다. 그래도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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