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신문 윤재현 기자] 답할 수 없는 것을 묻거나 권한 밖의 일인데 개선을 요구한다면 당사자는 얼마나 답답할까?

이런 일이 공적인 분야에서 발생한다면 그 사회는 책임을 회피하는 분위기로 의욕은 저하되고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지난 9월 열린 제147회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 한수원이 제출한 고리1호기 최종 해체계획서 적절성 심사가 무기한 연기됐다. 사유는 사용후핵연료 반출 방법 및 일정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한수원 입장에서는 아무리 용을 써도 뾰족한 방법이 없다. 해체계획은 사업자인 한수원이 수립하지만,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은 정부의 업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수원이 정부를 향해 사용후핵연료 때문에 고리1호기 해체가 지연되니 신속히 문제를 해결하라고 다그칠 수 있는 위치도 아니다.

사용후핵연료 재검토위원회는 수년 동안 혈세만 낭비한 채 경주 월성원전에 대해서만 임시저장시설 증설을 추진키로 하고 고리원전에 대해서는 아무런 지침도 없이 해산했다. 부산시 기장군은 지난해 5월 우여곡절 끝에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 건립을 위한 지역실행기구’ 위원 예비후보를 선발하고 위원회에 MOU 체결을 요구하는 공문을 여러 번 보냈으나 김소영 위원장은 취임 이후 기장군을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다. 의지가 의심스럽다는 말이 지역에서 나오는 이유다.

지난해 말부터 올 초까지 4차례 실시된 ‘고리1호기 최종해체계획서 초안’ 공청회는 ‘사용후핵연료 공청회로 오해할 만큼 사용후핵연료 문제가 논란의 대상이었지만 정부 관계자가 와서 주민들을 대상으로 답변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지역의 관계자는 공청회 불참 사유로 “사용후핵연료 관리방안에 대해 답변할 수 있는 정부 관계자가 참석하지 않았는데 공청회를 왜 가느냐”고 기자에게 반문했다.

공무원들이 산하단체나 공기업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대등한 관계로 보기 힘들다.

경계가 모호하거나 중복 분야에 정보공개 청구를 하면 대부분 산하기관에서 회신을 준다.

정보공개 외에도 공무원들이 할 일을 산하 기관에 떠넘기는 경우도 빈번하다, 공무원들이 대힌민국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고리1호기 해체' 지연은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부의 모습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라고 평가할 수 있다.

국내에서 신고리 5·6호기 이후 신규 원전 건설을 포기한 정부는 해체산업이 500조에 이를 것이라며 지역의 중소기업들에 장밋빛 전망을 심어줬다. 그래서 지역에 협회도 생기고 조합도 서울에서 부산으로 이전했다. 지역의 불만에 대해 정부는 책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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