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는 지구상에서 가장 가볍고 에너지 밀도가 가장 높다. 연소 반응이든 전기화학 반응이든 가장 작은 양으로 가장 많은 열에너지 혹은 전기에너지를 만들 수 있다. 탄소가 포함되어 있지 않으니 깨끗한 물질이기도 하다. 과학자든, 공학자든 누구나 마지막으로 다루어 보고 싶은 꿈의 물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소를 이용하고자 하는 인류의 노력은 부침을 겪어 왔다.

1970년대 세계 석유파동으로 대체에너지 수단으로 수소에 대한 관심이 커졌던 당시에는 전 세계가 수소엔진 자동차 개발에 열을 올렸다. 그러나 그 후 유가가 안정을 되찾자 수소에 대한 관심은 이내 시들해 졌다.

수소에 대한 세계적 관심이 다시 고개를 든 것은 아마도 2000년대 미국의 부시행정부 때였을 것이다. 전임 클린턴 행정부의 재생에너지 중심의 친환경 정책을 정치적 이유에 의해 수소로 전환시키면서 수소연료전지 Freedom Car, 석탄가스화 수소터빈 기반의 Future Gen 사업을 착수시켰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 수소 사업은 화석연료 개질 수소를 사용한다는 태생적 한계를 이유로 오바마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다시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그러던 수소가 대한민국이 중심이 되어 수소경제라는 이름으로 다시 부활했다. 정부는 2019년 1월 수소차와 연료전지를 양대 축으로 하는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을 발표했다. 올해 2월에는 세계 최초로 국가차원의 수소법도 제정되었다. 그러던 중 우리나라 수소경제는 탄소중립을 계기로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수소는 화석연료를 무탄소 연료로 전환시켜야 하는 탄소중립 핵심 수단이기 때문이다. 화석연료와는 달리 수소를 만드는데 에너지가 소모된다는 치명적인 약점 때문에 수소를 에너지원으로 적극적으로 사용하기를 주저했던 EU, 미국 등도 최근 들어 수소의 적극적인 이용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탄소중립은 수소경제에 두 가지 중요한 화두를 던지고 있다. 첫째, 수소 고유의 무탄소 특성을 살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린수소(적어도 블루수소)여야 한다. 둘째, 연료전지, 수소차를 넘어 제철산업에 이르기까지 무탄소 연료로서의 수소 활용 폭을 넓히면서도 이에 필요한 수소는 안정적으로 공급하여야 한다. 이 둘을 합치면, 제조 과정에서 탄소가 배출되지 않는 그린수소를 수요에 맞게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이 탄소중립 상황에서의 수소경제의 가장 큰 숙제이다.

탄소중립 상황에서의 수소의 핵심역할은 변동성이 높은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에 따른 잉여전력 장주기 저장수단이 될 것이다. 에너지 저장 장치들의 기술 추이로 봐서는 단주기 저장 수단으로는 배터리, 장주기 저장 수단으로는 수소가 될 가능성이 높다. 재생에너지 잉여전력 저장 수단을 넘어 한 단계 더 욕심을 내면 수소를 기존의 LNG 발전을 대체할 수 있는 적극적 무탄소 발전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을까? 이 경우 가장 큰 이슈가 우리나라에서 대규모 발전용으로 충분한 수소를 공급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것이며, 결국 상당량의 수소를 해외로 부터의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수소경제의 의미에 대한 원론적인 대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적극적 무탄소 발전수단으로 수입 수소를 활용하겠다는 것은 지금까지 석유, 천연가스와 같은 천연자원이 아닌 가공된 에너지를 수입한다는 의미이다. 그만큼 경제적으로 더 비싼 에너지를 수입하는 것이다. 물론, 수소환원제철이 유일한 생존 수단인 제철산업의 경우는 수입 수소 외에는 대안이 없다.

수소를 어떤 용도로 어디까지 사용할 것인가에 대해서 앞으로 더 많이 논의했으면 좋겠다. 비싸고 귀한 자원일수록 진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수소경제와 탄소중립을 타고 휘몰아친 수소에 대한 기대감으로 충만한 작금의 국내 수소산업 붐을 어떻게 볼 것인가? 결국에는 다양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시장에서 그 균형과 우선순위가 자리 잡혀 갈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은 현재의 수소산업 붐에 흥분할 때가 아니라 다가올 수소사회를 위해 진중하게 판을 짤 때인 듯하다. 탄소중립을 위한 수소사회는 2030년 이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손정락 산업통상자원 R&D 전략기획단 에너지산업MD

저작권자 © 전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