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서 LNG 비축분 줄고 바람 약해져 전력생산 ↓…극단적 에너지전환 부작용 사례
전력전문가들 “한국 재생E 보급 정책 지나치게 급진적…안정적 전력공급 고려해야”

영국에서 풍력발전량이 줄면서 전기요금이 급상승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무조건적인 재생에너지 확대를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계없음.)
영국에서 풍력발전량이 줄면서 전기요금이 급상승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무조건적인 재생에너지 확대를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계없음.)

[전기신문 윤대원 기자] 풍력발전 비중이 높은 영국에서 최근 낮은 풍량으로 인해 전기공급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이달 들어 전기요금이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 국내 전력 전문가들은 공급 안정 측면에서의 고려없는 극단적인 에너지 정책으로 인해 한국에서도 전력 위기를 겪을 수 있다는 경고를 내놓고 있다.

15일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영국의 전력시장 N2EX에서 14일 거래된 전기요금은 MWh당 424.61파운드에 달했다. 이 가격은 이는 작년 9월 평균 가격보다 10배 높을 뿐 아니라 올해 초 가격과 비교해도 약 4배에 달하는 수치다.

업계에 따르면 영국 전력시장에서 풍력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25%에 달한다. 이 같은 상황에 최근 지속적으로 바람이 줄어들면서 풍력발전 효율이 하락, 영국 전력시장의 어려움이 커지는 모양새다.

영국 전기회사인 엘렉슨(Elexon)이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14일 풍력발전량은 2019년 대비 절반에도 못 미쳤던 것으로 나타났다. 14일 하루 뿐 아니라 9월 내내 2019년, 2020년보다 풍력발전 실적이 부진했다.

예년 대비 부족한 LNG 등 화석연료 비축분으로 인해 가격이 급격히 상승했다. 여기에 영국 변전소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 프랑스에서 전력을 공급하는 케이블이 차단되며 악재가 겹쳤다.

국내 전력 전문가들은 영국의 사례에서 보듯 극단적인 에너지전환 정책이 양날의 검이 돼 돌아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국 역시 에너지전환 정책을 펼치며 2034년까지 30기의 석탄화력 폐지, 신재생에너지 설비 확충 등 친환경 발전원으로 갈아타기 위한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이 같은 계획은 최근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2017년 24.3%에서 2018년 대비 최소 35% 이상으로 상향하는 내용의 탄소중립기본법이 통과되면서 더욱 강화될 예정이다.

지난해 12월 발표한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는 2030년까지 태양광 34GW, 풍력 24GW를 보급, 재생에너지 비중을 20%로 확충할 계획이었지만 전환 부문에서 2000만tCO₂e의 온실가스를 추가로 감축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서 재생에너지 비중이 2배 가까이 늘어나야 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일부 전문가들은 현재 계획이 너무 무책임하게 수립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나치게 급진적으로 설계되면서 재생에너지 설비 비중이 대폭 늘어났을 경우의 부작용 등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NDC 상향 계획 등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전력 전문가들이 지나치게 배제됐기 때문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력수급에 미치는 영향은 계산하지 않고 일방적인 목표만 제시되는 결과가 나온 배경이다.

손양훈 인천대학교 교수는 최근 본지와 전화 인터뷰를 통해 “태양광·풍력 등은 인간이 제어할 수 없는 자연 현상인 만큼 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을 지나치게 높이면 영국과 같이 대응하기 어려운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에너지전환이 필요하고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야 한다는 데는 누구나 동의하지만 이 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전력 공급 안정이라는 가치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어서 아쉽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또 “그나마 영국의 경우 전력시장이 형성돼 있어서 전기가 꼭 필요한 곳은 높은 가격을 주고라도 계속해서 이용하고, 일반 가정 등에서는 잠깐 전기를 끄면 되기 때문에 정전 사태로까지 번지지는 않았지만 한국은 전기요금이 고정되고 시장이 없는 상황”이라며 “한국에서 이 같은 사태가 발생하면 선택권 없이 바로 순환정전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대책없이 기존 발전원을 죽이고 재생에너지만 늘리기 보다는 단계적으로 재생에너지를 늘려가며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비용 효율을 높이는 법을 찾아야하지 않겠나”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전력 전문가는 “지난 2019년 스웨덴에서 탈석탄·탈원전 등으로 대규모 정전 사태가 발생했을 때 정부가 권고한 게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청소기를 돌리지 말라는 것”이라며 “한국에서 탈석탄 정책을 하며 국민들에게 청소기·세탁기 돌리지 마라, 에어컨 켜지 마라 등의 메시지를 전달한다면 공감대를 얻을 수 있겠나. 지금 정부가 세운 계획들이 이처럼 대안이 없는 일들”이라고 꼬집었다.

LNG 발전이 정부가 수립하고 있는 한국형 녹색산업분류체계(K-택소노미)에서 제외된다는 소식이 돌면서 전력업계의 우려도 커지는 상황이다. 석탄에 이어 LNG까지 전력산업에서 퇴출하겠다는 의도가 저변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LNG가 녹색산업에서 제외될 경우 작년 발표한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역시 완전히 틀어지는 상황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034년까지 30기의 석탄화력을 폐지하면서 24기를 LNG 복합화력발전소로 대체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발전 5사가 녹색채권을 발행하지 못해 건설이 아예 무산될 가능성이 커진다.

이와 관련 업계는 원전과 석탄, LNG까지 모두 퇴출시키고 재생에너지만 남겼을 때 안정적인 전력수급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제어가 전혀 불가능한 재생에너지만 남겼을 때 국민들에게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겠나”라며 “해외에서 LNG를 녹색산업에서 제외하는 분위기지만 한국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 전력 산업 여건은 살피지도 않고 무작정 강요만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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