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희소한 자원을 먼저, 많이 보유한 나라가 강대국이 되거나 강대국의 위치에 올라서면 희소한 자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영국은 풍부한 석탄과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빠르게 산업혁명을 이루고 전성기를 맞이했으며 미국은 20세기 가장 중요한 자원 중 하나인 석유를 세계 최초로 대량 생산했고 자국 내 생산량이 줄어들자 중동 등 주요 산유국에 대한 장악력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에너지원인 석유의 주 용도는 수송(도로 43.6%, 항공 및 해상 12.4%)과 석유화학(18.9%)이다. 석유는 경제 활동과 산업 생산의 연료와 원료로 그리고 병기 운용을 위한 전략 물자로서 매우 중요한 자원이다. 또한 상온에서 액체 상태라 다른 에너지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통과 관리가 쉬워 에너지 부문에서 확고한 위상을 보여왔다. 그런데 전기차의 성능 및 경제성 개선과 기후 위기의 심화로 오랜 기간 마땅한 대체 수단 없이 공고해 보였던 석유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아직은 전기차 보급률이 미미하고 승용차 중심이라 전체 도로 운송을 대체하고 있는 것은 아니며 해상운송과 항공은 갈 길이 멀지만, 전기를 중심으로 예상보다 이른 시간 안에 수송 부문에서 석유의 대체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그동안 석유 고갈을 염두에 두고 언제 석유 생산이 정점을 기록할 것인지를 연구해온 석유피크(oil peak) 논의는, 이제는 생산이 아니라 수요가 언제 정점에 도달할 것인지로 옮겨진 상황이다. 특히, 최근에는 환경 분야 기관뿐만 아니라 Shell이나 BP와 같은 석유 메이저 기업들도 석유 수요가 2030년대에 정점에 도달할 것이라는 전망을 발표하고 있다.

물론 석유 수요가 정점에 도달한다고 해도 바로 소비량이 급감하는 것이 아니며 앞으로도 상당 기간 우리는 석유를 많이 소비할 것이다. 하지만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석유 시대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석유 시대가 끝나고 나면 자원 빈국인 우리나라의 에너지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것일까? 강대국들이 찾고 있는 다른 희소한 자원은 무엇일까?

기후 위기는 생존의 문제이다. 선진국의 반열에 오른 우리나라도 적극적으로 위기 해소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기후 위기를 둘러싼 선발국(화석연료를 마음껏 사용하여 먼저 선진국의 위치에 오른 국가들)의 움직임을 보면 여전히 희소한 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바로 “친환경 에너지”라는 희소자원이다.

엄밀하게는 미세먼지와 기상이변으로 고통받고 있는 인류에게 “깨끗한 대기”가 희소한 자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깨끗한 대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친환경 에너지가 필요하고 친환경 에너지원은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행히도 석유나 천연가스와는 다르게, 친환경 에너지원은 실물 재화보다는 기술 확보가 중요한 문제이며 우리보다 100년 이상 먼저 사업을 시작한 다국적 기업들이 존재하는 상황도 아니다.

미국, 영국, 독일 등 선발국들의 기후 및 에너지 정책을 살펴보면 기후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선의로 만들어진 정책이라고 보기 어렵다. 도의적인 차원에서 전 세계적인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이라기보다, 그들이 한발 앞서 확보한 기후경쟁력을 더욱 강화하고 그동안 에너지 분야에서 가지고 있던 권력을 기후와 친환경 에너지 분야로 확장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보인다.

탄소중립과 에너지시스템 혁신을 위한 정부의 비전에 동의한다. 당당한 선진국의 일원으로 국제무대에서 리더십을 발휘할 필요도 있다. 하지만 감축 목표라는 “수치 도출”에 매몰되어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지, 우리나라 산업의 기후경쟁력 확보는 충분히 검토되었는지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 한다.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직후 내린 산업 공급망 점검 행정명령(EO 14017)의 중간 보고서 제목을 소개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탄력적인 공급망 구축, 미국 제조업 진흥과 폭넓은 성장 촉진(Building Resilient Supply Chains, Revitalizing American Manufacturing, and Fostering Broad-based Growth)”(백악관, 2021년 6월)

프로필

▲한국자원경제학회 총무위원장 ▲에너지시민연대 정책위원 ▲Sussex대학 과학기술정책연구소(SPRU) 방문연구원 ▲한양대학교 자원환경공학과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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