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신문 강수진 기자] “정전 시간 동안 내 수족관의 물고기 5마리가 죽었으니 물어내시오.”

기자와 만난 한 원격검침인프라(AMI; Advanced Metering Infrastructure)업계 관계자는 사업을 추진하면서 소비자로부터 겪은 이와 같은 흔한(?) 고충들을 여러 개 털어놨다. 이 사업자는 결국 고객에게 보상처리를 해줬다.

기계식 계량기를 스마트계량기로 교체하려면 어쩔 수 없이 정전이 불가피한데, 보통 5분~10분 가량의 정전 시간 동안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발생하면서 여러 사람을 곤란하게 만든다.

또 정전에 이미 정전 협의를 완료했음에도 당일 거부하는 일도 더러 있다.

정전 시비를 줄이기 위해 개별 호수에 방문해 정전 여부를 전달하는데, 연락이 안 되는 경우도 많아 계량기 교체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라고 한탄한다.

현재 정부 그린뉴딜 정책으로 ‘가정용 스마트전력 플랫폼 사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사업 첫 단계는 개별세대와 한전이 직접 계약하지 않고 인력검침 중인 아파트의 계량기를 스마트계량기로 교체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사업 역시 올해 10월 완료 예정인 40만호 기준으로 설치율 10%에도 못 미치며 AMI 보급에 난항을 겪고 있다.

정부는 ‘계시별 요금제’를 위한 AMI 구축을 통해 값싸고 편리한 에너지 사용이 가능하다고 홍보하지만, 국내에서 여름 피크 때를 제외하고 전기요금에 관심을 가지는 소비자가 얼마나 될까.

지금도 이미 쓰고 싶을 때 전기를 편하게 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만큼 소비자들이 AMI 보급에 특별한 의미를 두고 있지 않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도 단순히 ‘저렴하고 편리하다’는 프레임으로 계시별요금제와 AMI 사업에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업계 한 전문가는 “싸고 편할수록 소비자는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할 뿐이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소비자는 전기요금이 1000원, 2000원 줄어드는 것에는 크게 관심을 갖지 않고, 다만 요금이 늘어나는 상황만 신경을 쓴다”고 정부 정책의 콘셉트가 잘못됐음을 짚었다.

해외에서는 소비자의 에너지 사용을 국내와 반대로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계시별요금제 자체는 소비자의 삶을 불편하게 만든다. 해외에서는 시간대별, 계절별 요금을 신경 쓰지 않으면 요금 폭탄을 떠안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해 소비자가 에너지를 알뜰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또 기저 발전을 줄이고 신재생에너지를 확대함에 따라 에너지 사용에 불편을 겪을 수 있음을 알리며 사회적 합의를 통한 AMI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와 같은 출발 선상에서 혹은 더 늦게 교체작업을 시작한 많은 나라가 AMI 보급을 완료했거나 완료에 가까워지고 있는 이유다.

우리나라의 낮은 AMI 보급률과 교체사업의 어려움이 아이러니하게도 ‘저렴하고 편리하게 전기를 쓰고 있는 상황’ 때문에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지하고, 정부의 패러다임도 그에 맞게 변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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