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14일, EU는 그동안 세계의 이목을 모았던 기후대응법안(Fit for 55 Package)을 발표했다. 우리에게는 법안들 가운데에서도 특히 탄소국경조정제도(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 CBAM)가 어떻게 결정될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우리나라의 수출산업에 미칠 영향 때문이었다.

필자가 해당 법안을 접했을 때 처음 느낀 점은 상당히‘조심스럽다’는 것이었다. 먼저, 제도를 2023년부터 시행하지만 2025년까지는 과도기를 두고 금전적인 지출의무는 유예했다. 유예기간 동안에는 탄소 관련 정보의 보고만을 의무화했다. 시행방식도 세금의 형태가 아닌 배출권거래제의 형태를 채택했다. 관세나 소비세와 같은 조세를 통한 제제는 EU 회원국 모두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반면, 배출권 시장의 형태는 유럽의회와 EU 이사회의 일반적인 입법절차만으로 제도를 시행할 수 있다. 이러한 내용들은 절차적 장애를 최소화하고 도입 초기에 나타날 수 있는 미비점에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한다는 점에서 제도의 실행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판단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적용 산업을 철강, 알루미늄, 비료, 시멘트, 전기로 한정했다. 이는 가장 탄소집약도가 높은 산업들이지만 EU의 배출권거래제도에 의해 탄소배출이 나타날 위험이 큰 것으로 선정한 63개 부문에 비하면 적용 대상을 매우 한정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물론 향후 그 대상산업을 확대할 것으로 예상되나 2025년까지 유예기간을 주고 있는 점과 다른 항목에서 나타난 점진적 운영원칙 등을 볼 때 대상 산업이 확대되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배출량 산정방식도 6월에 공개됐던 초안에서는 간접배출을 포함할 것으로 보였으나, 7월에 발표된 법안에서는 직접배출로만 한정했다. 게다가 해당 분야의 제품을 중간재를 사용하는 하류제품도 배출량을 계산하지 않는다. 이 또한 추후로 배출량 산정에서 간접배출 등이 포함될 여지가 있지만, 처음 제도를 논의할 때보다 역외 수출국들의 부담을 최소한 제도 시작단계에서는 줄여줬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적용 산업 중 EU 배출권거래시장에서 무상할당이 적용되는 경우에는 본격적으로 제도가 시행되는 2026년부터 2035년까지 10년 동안 매년 10%씩 단계적으로 무상할당을 유상할당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이는 EU 배출권거래제에서 무상할당하면서 수입제품에 대해 유상으로 배출권을 구매하도록 하는 것이 EU 역내 산업에 대한 이중 보호가 된다는 점에서 취한 조치이다. 이를 통해 세계무역기구(WTO)에서 정하고 있는 규범과의 합치성을 높이려 했다.

이러한 내용들을 종합해 볼 때, EU의 탄소국경조정은 최소한 단기 혹은 중기적으로 우리나라에 크게 부정적이지 않다. 일단 유예기간이 있다 보니 2025년까지는 우리나라 산업계에서 별도의 조치를 취하지 않아도 추가적인 비용이 부과되지 않는다. 2026년부터는 EU에 수출할 때 배출권을 구매해서 탄소가격을 지불해야 하는데, 당분간은 우리나라에서 철강 산업만이 거의 유일한 적용대상이다.

그런데 철강 산업도 무조건 EU에서 산출한 탄소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탄소국경조정에서는 제3국의 탄소가격제도를 참작하기 위해 별도의 협정을 체결할 수 있도록 했다. 즉, 우리나라의 경우 2015년부터 이미 배출권거래제를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 발생하는 탄소가격을 EU에서 반영해 줄 수 있다. 비록 철강 산업이 국내 배출권거래제에서 무상할당을 받고 있으나 이는 EU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앞으로 유상할당 비율을 어떻게 가져갈 지에 대한 일정만 적절히 설계한다면 이 또한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앞으로 중요한 것은 우리의 상황을 EU에 충분히 납득시켜 국익을 지킬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는 일이다. 그리고 국제사회의 움직임에 초조하게 성급히 대응하기보다는 우리나라의 경제 및 산업여건을 충분히 고려하여 능동적이면서도 현실적으로 저탄소 사회로의 전환로드맵을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프로필

▲한국환경경제학회 학술위원장 ▲한국재정학회 연구이사 ▲국가기후환경회의 저감위원회 전문위원 ▲기획재정부 한국판 뉴딜 실무지원단 자문위원 ▲서울시립대학교 경제학부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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