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기연구원 전력기기연구본부 고락길·하동우·송기동 책임연구원.
한국전기연구원 전력기기연구본부 고락길·하동우·송기동 책임연구원.

완벽한 친환경 에너지라고 알려진 수소도 어떻게 생산하느냐에 따라 기후변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가 배출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의 양과 처리 방법 등에 따라 수소에 색깔을 부여하여 ‘그레이(greay)수소’, ‘블루(blue)수소’, ‘그린(green)수소’로 구분한다.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를 개질(reforming)하여 만든 ‘그레이수소’는 가장 대표적인 수소 생산 방식이지만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 블루수소는 그레이수소와 생산 방식은 동일하지만, 발생한 이산화탄소를 포집·저장하여 다른 분야에 활용하기 때문에 환경적으로 진일보한 수소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그린수소는 신재생에너지원으로부터 만들어진 전력을 활용해 물을 수소와 산소로 분해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이산화탄소 발생이 ‘0(제로)’이다. 친환경 미래 사회는 이산화탄소가 전혀 발생하지 않는 바로 이 그린수소를 요구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만약 그린수소에 열이 발생하지 않는 전기기기를 접목하면 완벽한 친환경 미래사회를 구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바로 전기 저항이 ‘0’인 초전도 기기와 이산화탄소 발생이 ‘0’인 그린수소와의 결합이다. 그야말로 새로운 친환경 고효율 시스템이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국내유일 전기전문 연구기관인 한국전기연구원의 수소 연구팀에서는 액화수소를 만들 수 있는 장치와 기술을 완성하여, 이를 활용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먼저 수소 연구실험실 건물의 옥상에 설치된 태양광 시스템으로부터 생산된 전기로 수전해 장치를 가동하고, 물을 전기분해하여 이산화탄소 발생이 ‘0’인 그린수소를 만든다. 이 그린수소는 수소 액화장치를 통해 20K(-253℃)까지 낮추어 액화수소가 된다. 일명 ‘액화 그린수소’다. 높은 친환경적 가치를 가진 그린수소의 장점과 수소를 대용량으로 안전하게 장기보관하고 이송할 수 있는 액화수소의 장점이 결합한 새로운 미래 수소라 할 수 있다. 또한 불순물이 ‘0’인 액화수소는 추가적인 고비용의 정제 공정이 필요 없는 100% 초고순도 수소로, 연료전지의 내구성 저하를 방지한다.

하지만 액화 그린수소의 단점도 있다. 20K라는 매우 낮은 온도까지 냉각시키고 유지하기 위한 비용이 많이 든다. 장점이 많지만 값비싼 수소인 만큼 어디에 효과적으로 활용하느냐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이에 한국전기연구원은 ‘액화 그린수소’를 새로운 분야, 즉 초전도 응용 분야에 활용하고 있다. 초전도는 매우 낮은 온도에서 전기 저항이 ‘0’이 되는 현상이다. 현재는 초전도 현상을 일으키기 위해서 온도가 77K(-196℃)인 액체질소 속에 초전도체를 넣어 초전도 기기를 구현한다. 그런데 액체질소 대신에 액화 그린수소를 활용하면 냉각온도를 20K까지 더 낮출 수 있어서 초전도 기기의 성능과 효율이 크게 높아지게 된다.

액화 그린수소 기반 수소-초전도 융합기술 개념도.
액화 그린수소 기반 수소-초전도 융합기술 개념도.

액화 그린수소의 활용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초전도 기기의 냉각에 활용되면서 기화된 기체 수소는 연료전지에 공급되어 전기를 생산하고, 그 전기를 초전도 기기의 전원으로 사용한다. 전기 저항이 ‘0’인 초전도 기기의 특성 때문에 높은 전압이 필요하지 않아 적층 개수가 적은 연료전지 스택이 사용되기 때문에, 연료전지 활용으로 인해 발생하는 가격 또한 크게 낮출 수 있다. 기술적 융합을 통해 액화 그린수소와 초전도가 갖는 기술적 단점은 서로 보완되고 장점은 유지되는 효과가 있다. 한국전기연구원에서는 이러한 새로운 미래지향적 기술을 ‘수소-초전도 융합 기술’이라고 부르고, 관련 핵심기술과 응용분야 개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구체적인 적용 사례로 해당 기술이 적용된 미래의 병원을 상상해 본다. 그린수소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나온 산소는 의료용으로 활용되고, 수소는 병원 규모에 맞게 갖춰진 액화장치를 통해 액화 그린수소로 안전하게 저장된다. 액화 그린수소는 필요에 따라 기화시켜 병원의 수소 구급차를 충전하고, 건물용 연료전지에 공급되어 전기와 온수를 생산한다. 설치된 연료전지는 전력계통의 사고로 인한 정전 발생 시에는 비상 전원으로 전환되어 수술실과 중환자실 같은 병원의 중요 시설에 피해가 없도록 보호한다. 또한 20K의 극저온은 병원의 초전도 MRI 장치 냉각과 백신 등 의약품 저장에 활용된다. 많은 활용분야를 넘어 추가로, 그린수소는 친환경 정책에 따라 그 가치를 높게 인정받아 제도적인 혜택까지 받는다.

액화 그린수소를 기반으로 한 수소-초전도 융합 기술은 앞서 언급한 미래의 병원뿐만 아니라 차세대 전기선박 등 모빌리티, 도심지 분산화 및 도서 지역의 자립화 등 다양한 곳에 적용되어 지금까지 우리가 그리던 미래 사회의 모습을 기술적으로 진보된 모습으로 더욱더 구체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전기연구원 전력기기연구본부 고락길·하동우·송기동 책임연구원

저작권자 © 전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