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 발표가 임박하였다. 온실가스를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55% 감축하겠다는 계획을 이미 EU는 발표한 바 있다. 목표달성을 위하여 에너지효율, 건물, 토지이용, 에너지세제, 배출권거래제 등을 포함하는 이른 바 ‘55 패키지’를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조치는 EU 내 산업의 탄소비용 부담을 증대시켜 탄소누출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EU로 수출하는 국가와의 탄소비용 차이를 탄소국경조정제도를 통해 해소할 계획이다.

탄소국경제도의 구체적인 형태는 6월에 발표될 전망이지만 몇 가지 안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우선은 통관 단계에서 탄소비용 차이에 상응하는 만큼의 수입관세를 부과하는 방식이다. EU로 수출 시에 배출권 구매를 의무화하는 방식 또는 소비세 형태로 부과하는 방식도 검토되고 있다. 어떠한 방식을 통하든지 간에 이미 배출권이나 탄소세 정책이 시행되는 국가와의 교역 시에는 탄소비용을 인정해 준다는 방침도 정해놓고 있다.

최근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은 기후정상회의에서 미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2005년 기준 대비 50%~52% 감축하겠다는 도전적인 계획을 발표하였다. 바이든 행정부에서는 탄소국경조정세를 적극 검토하고 있으며, 존 케리 미국 기후특사는 이 분야에서 EU와 협력하되 가능한 미국 주도로 끌고 나가고자 하는 행보도 보이고 있다.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는 탄소국경조정제도의 동향을 살펴보면 새로운 무역규범으로서의 탄소 라운드가 발동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U는 1990년 대비, 그리고 미국은 2005년 대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천명한 이유는 사실 그 시기를 기준으로 이들 지역에서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감소경로를 이미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EU는 그동안 꾸준히 확대해 온 재생에너지, 그리고 역내에서 원자력 발전을 포함한 다양한 에너지 포트폴리오를 통해 온실가스 감축 역량을 확보해놓고 있다.

미국은 2005년부터 고유가 촉발 셰일가스 혁명으로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있으며 또한 태양광과 풍력의 확대, 그리고 이러한 분산자원을 흡수할 수 있는 분권화된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 탄소중립 역량을 강화해놓고 있다.

반면 그동안 신흥국으로서의 우리나라는 산업 및 경제활동 증가에 따라 지속적으로 온실가스 배출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탄소중립을 맞이하였으며 또한 EU와 미국의 탄소국경조정제도에 대비해야 한다. 저탄소 경제와 제3의 성장동력을 동시에 확충할 수 있는 세심한 정책 설계가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때이다.

탄소국경조정제도가 WTO 기준을 위배할 위험이 있으며 또한 비EU 국가들의 반대가 예상되기 때문에 실제 도입되기 어렵다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이는 지나치게 낙관적인 견해다. 지난 3월 EU 의회는 탄소국경조정제도가 국제무역에 대한 위장된 규제나 차별적인 규제 역할을 하지 않는 동시에 WTO와 EU FTA 기준에 부합되는 형태로 추진할 것을 결의한 바 있다. EU 역내의 산업계도 탄소국경조정제도의 도입을 적극 옹호하고 있다. 역내 산업보호 목적으로 도입된다는 점에서 EU 내 철강과 기타 제조업 관련 단체에서 적극 찬성 성명을 발표하는 것도 충분히 예상된 점이다.

곧 다가올 탄소 라운드의 통상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 탄소국경조정제도는 기본적으로 재화 생산과정에서의 탄소 발자국과 탄소비용을 기준으로 평가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국내 에너지·환경세가 체계적으로 정리될 필요가 있다. 기업이 이미 부담하고 있는 배출권거래제에서의 탄소비용이나 녹색 프리미엄 제도와 같이 자발적인 온실가스 감축 관련 비용도 정당하게 인정받을 수 있도록 통계작업도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EU 내의 모든 산업계가 탄소국경조정제도를 환영하고 있지는 않다. 중간소재 수입에 의존하는 산업의 경우 탄소국경조정제도로 인해 오히려 고비용 생산구조를 갖게 되어 이것이 궁극적으로 탄소누출을 더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이러한 EU 내 산업계와 협력하여 탄소관세를 낮출 수 있는 방안도 적극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박호정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 한국자원경제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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