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백신 개발과 보급으로 드러나는 것은 각국의 과학과 기술 수준이고 다른 말로는 바로 돈이고 국력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인 미국, 영국, 러시아, 중국, 프랑스 다섯 나라 중에 프랑스를 뺀 네 나라가 백신을 개발했다. 물론 중국과 러시아가 개발한 백신은 유효성이나 안전성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공개하고 검증받는 과정이 없었다. 비교적 안전하다고 인정받고 있는 대표적인 백신은 화이자와 모더나의 제품인데, 둘 다 미국의 제약사다. 다만 화이자는 독일의 제약사와 같이 백신을 개발했다. 얀센은 벨기에의 제약회사지만 미국 기업인 존슨앤존슨의 계열사다. 아스트라제네카는 영국의 제약사다. 자체 개발에 실패한 프랑스는 국내적으로 논란이 좀 있다고 한다.

충분한 물량 덕분이지만 미국에서는 요즘 아무 데서나 백신을 맞는다. 동네 약국과 편의점, 영화관 등에서도 백신을 맞을 수 있다. 미국 내 하루평균 백신 접종자는 300만여 명에 이른다. 부작용 논란이 많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대해선 사용 승인조차 내주지 않고도 이뤄낸 성과다. 백신 접종자가 성인의 45%를 넘어 일상 복귀도 가까워졌다고 한다. 뭐든지 막무가내였던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밀어붙인 덕분이기도 하다. G20 국가 중 가장 빨리 백신 접종을 끝내는 단계에 들어간 나라는 자체적으로 백신 개발에 성공한 영국이다. 영국은 이미 47%가 백신을 한 번 이상 맞았다. 영국의 백신 개발에는 정부의 지원이 있었다. 영국 정부는 2020년 3월 초 전국 전면봉쇄와 동시에 전혀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상태에서 백신 개발에 2억 파운드를 투자했다. 개발도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백신을 사겠다고 210억 파운드를 먼저 지급하기도 했다. 백신 때문에 영국에서는 EU 탈퇴에 대한 비판이 줄었다. 영국과 달리 EU는 아직 백신 1차 접종 인구가 평균 16%에 불과한 상태다. 그럴 만도 한 것이 EU 회원국들은 단일 국가가 단독으로 백신을 사들이는 게 불가능하다. 일괄해서 계약하고 인구비례로 나누는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OECD 회원국 가운데 백신 접종률이 가장 낮은 나라는 0.9%의 일본이다. 다음이 뉴질랜드, 한국 순이다. 일본의 경우 역시 자체적으로 백신을 개발하지도 못했지만, 보급이 늦어지는 다른 이유도 있다. 자국민을 대상으로 한 임상 시험 결과가 있어야만 사용을 승인한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따라 유일하게 화이자 백신만 접종하고 있지만, 당연히 공급이 수월치 않다. 화이자나 모더나는 백신 물량을 우선 미국에 풀고 남은 물량을 내놓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빨리 백신을 보급한 이스라엘의 비결도 역시 돈이다. 이스라엘은 아직 백신이 개발되지도 않은 시점인 작년에 도입 계약을 맺어 FDA 승인 한참 전에 이미 백신을 확보하고 있었다. 승인을 받지 않았다면 모두 버려야 했지만, 가격은 유럽의 두 배를 줬다. 영국의 존슨 총리는 영국의 백신 접종 성공은 자본주의와 탐욕(capitalism and greed)의 결과라고 말했다. 정부의 백신 확보를 위한 욕심과 과감한 투자, 그리고 제약회사들의 이윤 추구를 위한 탐욕이 합쳐져 만들어진 성과라는 말이다. 개발되지 않은 백신을 선구매하는 방식으로 지난해 미국 정부가 백신 개발을 위해 투입한 예산은 우리 돈으로 모두 5조 원이 넘는다. 전쟁에는 돈이 든다. 백신 전쟁도 마찬가지다.

김상철 경제칼럼니스트 한국경제언론인포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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