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배터리 잠수함처럼 우리 앞질러
SK 패소 원인은 절차상 문제, 소송 더 길어져
SK-LG 8:2 투자 재단 및 펀드 설립 제안, 산업발전 지원

박철완 서정대 교수.
박철완 서정대 교수.

[전기신문 윤병효 기자]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간의 배터리 분쟁이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최종판결 이후로도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소송에서 패한 SK이노베이션은 절차상 문제로 패한 것이지 영업비밀 침해가 인정된 것이 아니라며 추후 절차를 통해 적극 대응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중국 배터리산업이 무섭게 치고 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소송이 더 길어질 경우 승자는 없고 양사는 물론 국내 업계 모두 패자가 될 것이라는 게 업계 공통된 시각이다.

일각에서는 양사가 명예와 실리를 모두 챙길 수 있는 중간지대를 만들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 관심이 쏠리고 있다. SK 측이 더 많이 출자하고 LG 측이 조금 더 보태되 공동 지분 형식의 재단이나 펀드를 만들어 국내 배터리산업 발전을 위해 사용하자는 것이다.

국내 배터리산업 1세대로 평가받는 박철완 서정대 교수는 1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K-배터리 하며 우리나라 배터리가 최고 인양 떠드는 사이에 이미 중국은 잠수함처럼 사실상 우리를 앞질렀다”며 “뿐만 아니라 그 중요하다는 양극활물질 삼원계 전구체 산업은 사실상 중국의 주력산업이 됐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국내 배터리산업이 중국에 뒤처지게 된 이유 중 하나로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긴 배터리 분쟁을 꼽았다.

그는 “이노(SK이노베이션) 공시에도 나왔듯, 절차를 끝까지 가겠다는 입장은 법인 입장에서 상식적인 것”이라며 “이 사태가 장기화되면 두 회사 다 패자가 될 것이다고 언론에 강조한 것은 단순히 중국 배터리산업의 위협 때문만이 아니고 이노 편을 들어서도 아니다”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은 15일 공시를 통해 LG에너지솔루션과의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서 패소한 사실을 알리며 “회사는 미국 내 배터리 생산에 차질이 없도록 앞으로 남은 소송 및 제반 절차를 통해 적극 대응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다수는 ITC의 최종판결로 양사의 합의가 빨라질 것으로 예상했지만 오히려 박 교수는 소송이 더 길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엔솔(LG에너지솔루션)이 합의에 전향적으로 나서라며 ITC 판결을 근거로 내세우지만 이노 입장에서는 합의를 하고자 해도 영업비밀 유출 등에 관해 ITC 판결이 없는 상황”이라며 “합의금 지불 자체가 (SK이노베이션의) 배임이 될 수 있어 끝까지 갈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이어 “엔솔의 절차훼손에 따른 조기패소 전략이 단기적으로 승소에는 기막힌 카드가 됐지만 이노가 합의를 할 근거를 없애버렸다”며 “엔솔이 조기패소 전략을 선택했기 때문에 엔솔은 합의를 더 이상 외치기 어렵게 된 역설적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미국 ITC는 2020년 2월 예비판정에서 SK이노베이션의 증거인멸 정황이 포착됐다며 조기패소 판정을 내렸고 결국 최종판결로 이어졌다.

SK이노베이션도 최종판결에 대한 입장문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해 쟁점사안에 대한 소명을 했음에도 절차상 문제점을 근거로 영업비밀 침해 여부에 대한 실체 판단의 기회를 갖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SK이노베이션이 남은 절차인 대통령 검토와 남은 소송인 연방법원 최종판결까지 끌고 갈 경우 총 소요 기간은 지금까지의 1년 10개월보다 훨씬 더 길어질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박 교수는 양사의 분쟁을 조기에 해결할 수 있는 해법으로 ‘중간지대’를 제안했다.

그는 “승소한 엔솔과 패소한 이노가 전혀 다른 중간지대를 찾아 양자가 다 이긴 상황으로 가는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하다”며 “중간지대로서 이노와 엔솔이 공동으로 배터리 재단 및 펀드를 민간 차원에서 만드는 게 어떨까 싶다. 그러기 위해선 엔솔과 이노가 서로에게 지불하지 않는 중단 합의를 하고, 배터리 재단 및 펀드를 두 회사가 공동으로 출자하되 출자 비율은 이노가 확실히 더 부담하고 엔솔은 최소액을 부담하되 동등한 지분을 갖게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재단과 펀드의 역할로는 인력 양성과 지적재산권 보호를 제시했다. 연구비 및 장학금은 일류 대학교보다는 소외된 대학교에 제공하고 지적재산권 보호는 국정원과의 공조도 제안했다.

ITC의 최종 판결문은 아직 양사에 도착하지 않은 상태다. 양사는 판결문을 받는대로 추후 절차에 돌입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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