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C, SK 영업비밀 침해 인정…10년간 미국 수입 금지
다만 폭스바겐·포드 공급물량 2~4년 수입허용 조치
바이든 대통령, 자국 이익 고려 거부권 행사 가능성
최종판결 토대로 국내 정치권·정부 중재 나설 수도

[전기신문 윤병효 기자] 2년여 동안 한치의 양보 없이 진흙탕 싸움을 벌여온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영업비밀 분쟁에서 결국 LG에너지솔루션이 승소했다. 재판에서 SK이노베이션의 영업비밀 침해가 인정됨으로써 향후 합의나 손해배상 소송에서 LG 측이 더욱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됐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현지시간으로 10일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간의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소송의 최종판결(determination)에서 LG의 손을 들어줬다.

ITC는 LG에너지솔루션의 주장을 받아들여 SK이노베이션의 영업비밀 침해를 인정하며 앞으로 10년간 SK이노베이션의 미국으로 리튬이온배터리의 수입을 금지하는 제한적인 배제 명령을 내렸다.

다만 ITC는 SK이노베이션이 배터리를 공급하기로 한 포드와 폭스바겐이 미국 생산에 대해서는 수입을 허용하는 유예 조치를 내렸다. 포드 전기차 생산용 배터리와 부품은 4년간 수입을 허용하고 폭스바겐 전기차 라인에 대한 부품 공급에 대해서는 2년간 수입을 허용했다.

◆후발주자 SK의 폭스바겐 수주, 소송 계기로 작용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2019년 4월 미국 행정기관인 ITC에 SK이노베이션을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혐의로 소송을 제기했다. SK 측이 자사 배터리 경력직원 100여명을 채용하면서 무단으로 영업비밀까지 탈취했다는 것이다.

LG에너지솔루션이 ITC에 소송을 제기한 이유는 미국이 최대 시장이자 ITC의 강력한 증거 개시 절차 때문이다.

SK이노베이션은 2018년 폭스바겐의 미국 생산 전기차에 공급하는 배터리 물량을 수주했다. 폭스바겐은 세계 최초로 전기차 플랫폼(MEB)을 출시하면서 2022년까지 4개 브랜드에서 1000만대의 전기차를 생산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당시 시장 1~2위를 달리던 LG에너지솔루션은 후발주자인 SK이노베이션에게 수주를 뺏기자 큰 충격을 받았고 이는 배터리 소송을 시작하게 된 계기로 작용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ITC의 강력한 증거 개시 절차를 최대한 활용했다. 2020년 2월 ITC는 중간판결에서 SK이노베이션의 조기패소를 결정했다. LG에너지솔루션이 신청한 SK이노베이션의 인터넷 서버에 대한 증거개시 과정에서 SK이노베이션의 증거인멸 혐의가 포착되면서 곧바로 패소 판정을 내린 것이다.

이때 이미 승기는 LG에너지솔루션으로 기울었다. ITC의 조기패소 판결이 번복된 사례는 지금까지 단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SK이노베이션은 문서 삭제는 정기보안점검 차 이뤄진 것이고 영업비밀 침해와도 상관없다며 불복하는 심사신청서를 제출했다.

ITC의 최종 판결은 당초 지난해 10월 5일 내려질 예정이었으나 이후 10월 26일→12월 10일→올해 2월 10일로 총 3차례 연기됐다.

◆SK이노, 패소했지만 최악은 면해

SK이노베이션은 패소는 했지만 최악의 피해는 피할 수 있게 됐다.

ITC는 SK이노베이션에 앞으로 10년간 미국으로 배터리 및 관련 부품의 수입을 금지하는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SK이노베이션이 배터리 및 부품을 공급하기로 한 포드와 폭스바겐의 미국 생산 전기차 물량에 대해서는 수입을 허용하는 유예 조치를 내렸다. 포드 전기차 생산용 배터리와 부품은 4년간 수입을 허용하고 폭스바겐 전기차 라인에 대한 부품 공급에 대해서는 2년간 수입을 허용했다.

이로 인해 SK이노베이션이 미국 조지아주에 건설 중인 배터리셀 생산공장도 가동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당초 영업비밀 침해가 인정되면 관련 기술이 적용되는 조지아주 공장의 가동 중단도 불가피할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ITC의 수입 유예 조치가 포드, 폭스바겐의 공급에 영향이 없도록 한 것이란 점에서 볼 때 조지아주 공장 가동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SK이노베이션 조지아주 공장은 9.8GWh 규모의 제1공장이 2022년 1분기, 11.7GWh 규모의 제2공장이 2023년 1분기부터 양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SK이노베이션은 최종판결에 대한 입장문을 통해 “이번 ITC 결정은 소송의 쟁점인 영업비밀 침해 사실을 실질적으로 밝히지 못한 것이어서 아쉽다고 유감을 표명한다”며 “다만 SK이노베이션 고객 보호를 위해 포드와 폭스바겐에 배터리를 공급할 수 있도록 유예 기간을 둔 것은 다행이라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이어 “SK이노베이션은 미국 배터리 생산에 차질이 없도록 앞으로 대통령 검토(Presidential Review) 등 남은 절차를 통해 안전성 높은 품질의 SK배터리와 미국 조지아 공장이 미국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중인 친환경 자동차 산업에 필수적이며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점, 수 천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점 등 공공이익에 미치는 영향을 집중적으로 전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또한 “나아가 결정에서 주어진 유예기간 중에 그 후에도 고객들의 이익을 보호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을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바이든 거부권 가능성…손해배상 소송 시작

LG에너지솔루션은 ITC의 최종판결을 근거로 손해배상 소송을 시작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미국 델라웨어 연방법원에 관련 소송을 제기해 놓은 바 있다.

법원 소송은 ITC의 최종판결을 근거로 삼기 때문에 ITC 판정처럼 오래 끌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에서는 SK이노베이션의 손해배상액으로 최대 3조원가량이 거론되고 있다. 영업비밀 침해로 얻은 SK 측의 이득과 이로 인한 LG 측의 기회상실 등을 감안한 규모이다.

다만 이번 ITC의 최종판결에 마지막 변수가 있다. ITC가 행정기관이기 때문에 행정부 수장인 바이든 대통령이 최종판결에 대해 60일 안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SK이노베이션이 입장문에서 대통령 검토(Presidential Review) 절차에 집중하겠다고 거론한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 사례도 있다. 지난 2013년 6월 ITC는 삼성전자가 애플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삼성전자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자국 이익을 고려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친환경 분야에 2조달러를 투입하는 경기부양책을 발표했고 모든 관공서 차량을 전기차로 대체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어 순조로운 이행을 위해 ITC의 판결을 거부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다른 배터리 소송도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SK이노베이션은 맞소송 격으로 ITC에 LG에너지솔루션을 상대로 배터리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했고, 곧이어 LG에너지솔루션도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ITC의 최종판결이 나왔기 때문에 국내 정치권과 정부의 중재 노력도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달 28일 정치인 출신인 정세균 국무총리는 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서 기자의 “기업인 출신으로서 LG와 SK의 해외 배터리 소송에 나설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소송 비용이 수천억원에 달하는 경제적인 것뿐만 아니라 양사가 싸우면 남 좋은 일만 시키는 것”이라며 양사의 합의를 촉구한 바 있다.

저작권자 © 전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