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충전소 보급 목표치 크게 미달, 지자체 허가 지연
규제샌드박스 통과 사용후배터리 사업 착수도 못해
정부-지자체 공조 및 그린뉴딜 대국민 홍보 강화 필요

현대자동차가 운영하는 안성휴게소 수소충전소.
현대자동차가 운영하는 안성휴게소 수소충전소.

[전기신문 윤병효 기자] 문재인 대통령의 전폭적 지지를 바탕으로 중앙부처가 그린뉴딜 산업을 강력 육성하고 있지만 일부 사업의 경우 지자체의 비협조로 브레이크가 걸려버린 상태다. 수소경제의 핵심인 수소충전소 보급은 위험시설이라는 이유로 주민반대가 심해 지자체 허가가 지연되고 있으며, 사용후 배터리 사업도 보유자인 지자체가 선례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이를 내주지 않고 있어 사업에 나선 업체들만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그린뉴딜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중앙부처와 지자체 간의 공조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수소충전소 허가 권한 지자체, 주민반대에 지연

환경부가 운영하는 전기차 및 수소차 충전소 설치장소를 알려주는 저공해차 통합누리집에 따르면 9일 현재 일반 수소차가 이용 가능한 전국 충전소는 49개이다. 이는 수소 승용차(넥쏘)의 국내 보급량 1만500대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전국 시‧도 및 광역시가 총 17곳인 점을 감안하면 평균적으로 1곳당 수소차가 617대 있고 충전소는 2.9개가 있는 꼴이다.

2019년 1월 발표된 정부의 수소경제로드맵에 따르면 수소충전소는 2018년 14개, 2022년 310개, 2040년 1200개를 보급할 예정이다. 2020년 목표는 100개 가량이다. 하지만 산업통상자원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국 충전소 수는 70개이며, 이 가운데 일반 수소차가 이용할 수 있는 충전소는 49개밖에 되지 않는다.

충전소 보급이 더딘 이유는 수소충전 사업의 수익성이 없어 경제적 보급이 이뤄지지 않는 것도 있지만 지자체의 비협조적인 부분도 크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서울 양재수소충전소가 꼽힌다. 이 충전소는 2019년 말부터 지난해 말까지 거의 1년간 운영이 중단됐다.

당초 운영자인 현대차로부터 사업권을 넘겨받은 서울시가 시설 개선과 시험용을 상업용으로 전환하려 했지만 허가권을 가진 서초구가 계속해서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서초구는 주민반대를 이유로 내세웠지만 서울시와의 대립구도 속에서 조은희 서초구청장은 서울시장 후보로 부상하기도 했다.

서울시는 비대면 주민설명회를 개최하고 안전시설 보강 및 지역주민 할인 등의 조건을 통해 겨우 재개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이는 비단 서초구만의 문제가 아니다. 수소업계 관계자는 “많지는 않지만 몇몇 지역에서 위험시설이라는 이유로 주민반대가 심해 해당 지자체가 충전소 설치 허가를 내주지 않는 곳이 있다”며 “지자체장은 다음 선거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주민 말을 무시할 수는 없는 상황도 이해는 간다. 충전소 보급 속도를 높이려면 근본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충전소 보급이 더디자 지난해 11월 환경부 차관이 장을 맡는 ‘범정부 수소충전소 전담조직(TF)’가 설립됐다. TF는 한시적으로 충전소 설치 권한을 기초지자체에서 환경부로 상향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아직까지 이를 실행으로 옮기지는 못하고 있다.

기초지자체가 창고에 보관하고 있는 사용후 배터리.
기초지자체가 창고에 보관하고 있는 사용후 배터리.
◆규제샌드박스 통과 사용후배터리, 지자체 보신행정에 막혀

전기차 폐배터리를 활용하는 사용후 배터리 사업도 지자체의 비협조로 수개월째 착수도 못하고 있다.

전기차는 중앙부처와 지자체의 보조금이 지급되기 때문에 지난해까지만 해도 사용후 배터리의 소유권은 지자체에 있었다. 올해부터는 관련 법이 개정되면서 차량운전자가 소유하게 됐지만 이는 올해 신차부터 적용되기 때문에 앞으로 4~5년간 발생하는 전기차 폐배터리는 계속해서 지자체로 귀속될 예정이다.

세계적으로 전기차 보급이 확대됨에 따라 사용후 배터리를 활용한 사업과 시장은 중국 등 세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관련 규정이 없어 사업을 할 수 없다. 때문에 정부는 규제샌드박스 제도를 이용해 사업 신청을 낸 업체에 한시적으로 사업 허가를 내주고 있다. 실증 성격의 사업을 통해 문제점을 발견해 이를 보완하는 제도를 마련하고 사업화로 이끈다는 것이 규제샌드박스의 취지이다.

A사는 지난해 10월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규제샌드박스 허가를 얻어 사용후 배터리를 활용해 캠핑용 등 소형 ESS를 제작하는 사업에 착수했다. A사는 수억원을 들여 제품 제작을 위한 부품도 사들이고 인력도 보강했다.

하지만 허가를 받은지 3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단 한개의 제품도 만들지 못하고 있다. 사용후 배터리 소유권자인 지자체가 배터리를 내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자체가 내주지 않는 이유는 황당하다. “선례가 필요하다”는 것이 지자체의 전제 조건이다. 사용후 배터리가 워낙 새로운 분야이고 사고가 날 확률이 아예 없는 것이 아니다보니 사고에 따른 책임지는 것을 두려워해 선례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전형적인 공무원 보신행정이라며 개탄스러운 반응이 나오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배터리가 화재 위험성이 있고 사용후 배터리이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러운 건 이해가 간다”면서도 “하지만 이는 실증을 통해 보완해 가면 될 사안인데 처음부터 아예 내주지도 않는 것은 보신행정이라고 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구태 행정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놀랍다”고 비판했다.

정부는 2025년까지 총 73.4조원을 투입하는 그린뉴딜 경제정책을 통해 코로나19로 침체된 경제를 부양하고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며 65.9만개의 일자리도 창출하는 일석삼조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이를 성공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선 중앙부처와 지자체간에 긴밀한 협조 관계를 구축하고 대국민 홍보도 더욱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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