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신문 양진영 기자] 2002년 9월, 월드컵의 열기가 막 사그라졌을 때 쯤, 삼성전자에 생산직으로 입사했다.

성수기를 심하게 타는 김치냉장고 제조로 배치된 후 비성수기마다 다른 부서로 지원을 나갔다.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청소기까지 공장을 옮겨가며 5년 가까이 일하는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날은 입사 첫 해 사내 축제에서 여장 하고 500명 앞에서 노래 불렀던 그날 밤이 아니다.

건너편 라인에서 작업하던 동기가 컨베이어 벨트에 팔이 끼어서 수 미터를 질질 끌려가고 공장이 멈춘 그 날이다.

회사 단지 안에, 심지어 걸어서 10분 거리에 소방서가 있었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 결국 직원들이 직접 용접기로 컨베이어 벨트를 갈라 팔을 꺼낸 뒤 병원으로 옮겼다.

당시 사고를 당한 동기가 일하는 구간은 바로 옆에서 산소용접 작업이 이뤄지는 위험한 곳이었다. 공장 일이라는 게 나도 그랬지만 숙련되면 눈 감고도 할 수 있다.

문제는 동기가 진짜로 눈을 감고 졸았다는 것이다. 삼성전자 답게 설비에 안전장치는 물론 아침마다 안전구호를 외치고 장갑에 팔토시, 안전화까지 지급했지만 결국 사고는 났다.

신년부터 떠들썩 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보며 떠오른 기억이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대표들은 모두들 악법이라 입을 모은다. 사례에 따라 50억원 이하의 벌금부터 사업주의 징역까지 처벌 수위가 높기 때문이다.

특히 아무리 사업주가 안전대책을 갖춰도 작업자의 부주의로 일어나는 사고까지 감당하도록 해 더욱 부담이 크다는 의견이다.

사람의 목숨은 무엇으로도 살 수 없다. 중소기업 가운데서 과연 안전책을 최대한 갖췄냐는 질문에 매우 자신 있게 답하는 곳은 많지 않을 것이다. 물론 돈 때문이다.

그러나 악법도 법이다. 이번 법은 기업들이 작업자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경영 체계를 구축하도록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말 경영자들이 최고 수준의 안전책을 갖추고 있다면, 책임에 따른 처벌 수위는 낮출 필요는 있다.

제아무리 삼성전자라도 졸고 있는 작업자로 인해 발생하는 사고는 막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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