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신문 윤병효 기자] 규제샌드박스라는 정책이 있다. 최근 세계 시장이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규제 개선이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함에 따라 한시적으로 관련 규제를 완화해줌으로써 신사업 육성 토대를 마련하는 취지이다.

이 정책을 총괄하고 있는 국무총리실이 최근 관련 기업을 대상으로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90% 이상이 만족을 표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만큼 정책 실효성이 높다는 뜻이다.

그러나 규제샌드박스도 무력화하는 규제 아닌 규제가 나타났다. 바로 공무원의 보신 행정이다.

지난해 10월 A사는 산업통상자원부의 규제샌드박스를 통과하면서 전기차의 사용후 배터리를 활용한 소형 ESS 제작 사업을 할 수 있게 됐다.

중소기업 A사는 부푼 꿈을 안고 수억원을 들여 부품도 구입하고 인력도 보강했지만 3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단 한 개의 제품도 만들지 못했다. 사용후 배터리를 한 개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기차는 지자체의 보조금이 지급된다는 이유로 지난해까지만 해도 사용후 배터리의 소유권이 지자체에 있었다. 이 때문에 전국 시‧군 단위 지자체의 창고에는 사용후 배터리가 쌓여 있다.

A사가 전국 지자체를 돌며 사용후 배터리 공급을 요청했지만 단 한곳도 응해주지 않았다. 지자체의 공급 전제조건은 단 하나 “선례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혹시라도 자기들이 내준 배터리로 만든 제품에서 사고라도 나면 그 불똥이 자기네로 튈까봐 다른 사례를 본 뒤 내주겠다는 것이다. 눈 덮인 길은 가지 않고 쓸어 놓은 길만 가겠다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보신 행정이다.

세계적으로 운전자가 필요없는 레벨3 이상의 자율주행차가 나오고 민간우주여행 시대가 열리고 있는 마당에 국내 산업의 경쟁력이 뒤처지는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공무원의 보신 행정이 고쳐지지 않는 한 한국 산업의 미래는 참담함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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