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님이 청소기 들고 솔선수범
직원중심 업무환경 개선·복지로
지난해 1년 실적 반 년 만에 달성
공정 최적화·설비에 과감한 투자”

경기도 오산시에 위치한 전선제조업체 '모보'의 공장 내부 모습.
경기도 오산시에 위치한 전선제조업체 '모보'의 공장 내부 모습.

“it's bigger on the inside(안이 더 크다)”

유명한 영국 드라마 ‘닥터후’에서 자주 나오는 대사다. 주인공의 작은 타임머신에 들어서면 넓은 공간이 나오는 것에 놀란 조연들이 던지는 대사다.

경기도 오산시에 위치한 전선제조업체 ‘모보’의 모습 또한 이와 비슷하다. 넓지도, 좁지도 않은 긴 길을 따라 정문을 통과하면 갑자기 큰 부지가 드러난다. 플라스크와 같은 모습이랄까.

넓은 야적장을 지나 얕은 언덕길을 올라가면 비로소 안쪽에 공장과 사무실이 보인다. 모보는 1층은 공장, 2층은 사무실의 구조다.

겉보기에 모보는 여느 전선제조업체들에 비해 특별한 게 없어 보인다. 그러나 모보는 지난해 실적이 크게 늘며 반년 만에 목표를 달성했다. 특히 지난해가 코로나19로 업계를 막론하고 어려운 시기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주목할만한 부분이다.

사무실 안쪽, 대표실에 들어서면 모보의 ‘비밀’ 중 한 가지 힌트를 찾을 수 있다. 전선업체 대표의 사무실에 어울리지 않는, 마치 전투현장에서나 볼 것 같은 ‘헬멧’이다. 전투경찰이나 폭발물 해체반의 것처럼 얼굴 전체를 보호하는 투명한 페이스가드가 달려있다.

헬멧의 주인인 이수열 모보 대표는 자신을 돌격대에 비유했다.

그는 “건식스팀청소기로 스팀을 기계에 분사하면 묵은 때가 벗겨진다”며 “헬멧은 먼지와 이물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수열 모보 대표.
이수열 모보 대표.

가온전선에 몸담았던 그는 2019년 12월 모보의 대표를 맡게 됐다. 출근하고 얼마지 지나지 않아 그는 평소 거리가 멀던 감기를 두 번이나 겪는 경험을 했다. 이 대표는 회사의 ‘공기질’을 의심했다.

그는 “에어컨 필터 청소는 1년에 한 번 자체적으로 하고 있었는데 필터 너머 안쪽은 청소한 적이 없었다더라”라며 “120만원을 들여 에어컨 전문 청소업체를 부르고 에어컨을 뜯어보니 여기저기에서 석탄 같은 곰팡이가 쏟아졌다”고 회상했다.

이뿐만 아니다. 직원들이 세수와 양치를 하는 화장실에서는 녹슨 파이프 탓에 녹물이 나왔다. 찬물만 나오는 것은 당연했다. 이에 1300만원을 들여 물탱크로부터 이어지는 약 100m의 수도관을 모두 스테인레스로 바꾸고 온수히터를 설치했다.

외근이 잦은 직원들이 업무에 자신의 차를 이용하는 것을 보고 직원들의 주도로 업무용 차량을 구매하도록 지시했으며 사내식당에는 좋은 쌀과 국내산 김치를 주문했다. 모보를 찾은 날에도 직원들이 직접 자신들이 쓸 의자를 고르고 있었다.

이 대표는 “차를 사는 것은 직원들의 숙원이었다”며 “직원들이 출장을 가게 되면 누구 차로 갈지 걱정하더라. 클레임이 발생하면 뭘 타고 갈지부터 생각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직원들이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회사. 이 대표가 생각하는 모보의 복리후생이 반영된 모습이다.

이 대표는 이를 공장 전체에도 적용했다. 얕은 눈처럼 먼지와 오일이 쌓인 공장 바닥과 굳은 기름이 덕지덕지 달라붙은 기계 등 공장 전체를 개선하기로 했다.

기계를 청소할 건식스팀청소기와 함께 바닥을 청소할 독일제 청소기를 마련했다. 그리고 매일 점심식사 후, 공장바닥을 청소하는 것은 이 대표의 일과가 됐다.

그는 “혼자 공장을 청소하면 1시간이 좀 넘게 걸린다”며 “청소하고 나면 1만5000보를 걷게 돼 따로 운동하지 않아도 될 정도”라고 말했다. 이어 “청소를 하는 과정에서 현장직들과 교감을 가지며 동료의식도 느낀다”며 “업무지시에 잘 따라주는 것도 이 같은 배경이 있지 않나 싶다”고 덧붙였다.

대표가 앞장서서 청소하는 상황. 생산직과 사무직, 임원을 가리지 않고 직원들도 청소에 신경 쓰게 됐다. 바닥이 깨끗해지며 코로나19 발생 전부터 마스크를 쓰던 현장 근무자들이 마스크를 벗게 됐다.

사무실에서 공장 2층으로 이어지는 통로로 나오면 널찍한 공터가 나온다. 이곳이 두 번째 모보의 비밀이다. 매일 7시 45분, 임직원들은 이곳에서 아침체조를 함께 한다. 그러고 나면 생산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직장과 생산기술 팀장이 간단하게 회의를 한다. 대표가 참여하며 아침 3분 만에 보고와 피드백이 이뤄지는 것이다.

1층 공장에 도착하니 가장 먼저 바닥이 눈에 띈다. 앞서 이 대표의 설명처럼 바닥이 반들반들하다. 지게차와 자재의 이동으로 긁힌 자국은 있지만 지저분한 오염물들은 없다.

반들반들한 공장 바닥.
반들반들한 공장 바닥.

계단을 중심으로 좌우 측에 청소기들이 신줏단지처럼 모셔져 있다. 이 대표가 자랑했던 건식스팀청소기와 바닥청소기다. 전선이 감긴 드럼들도 일사불란하게 정리된 모습이다. 바닥은 빛나고 자재들은 각이 잡힌 모습에서 군대시절이 떠오르기도 한다.

대표가 직원들을 생각하며 근무환경을 개선하니 현장 직원들도 신바람이 났다.

차윤호 직장(현장대표자)은 “대표님이 오시고 작업 현장이 좋아지니 사람들의 불만이 사라졌다. 알아서 다 해주신다”며 “생산현장에도 오지 않는 등 관심이 없는 대표들도 많은데, 대표님은 직접 청소하시고 함께 식사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표님이 아낌없이 해주시려고 하니 직원들도 따라기기 위해 노력하며 일하자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고 귀띔했다.

이 대표가 환경에 신경을 쓰는 이유 중 하나는 ‘공장도 상품’이라는 그의 철학 때문이다. 그는 주변 정리에서부터 업무가 시작되면 좋은 품질과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진다고 믿고 있다. 고객들이 주문 전 현장을 방문했을 때 깨끗한 모습이 믿음을 주는 것은 덤이다.

모보의 공장을 둘러보고 있으면 현장직의 밀집도가 낮은 것을 느낄 수 있다. 다른 회사라면 2명이 운전하는 기계를 혼자서 맡고 있다. 모보의 세 번째 비밀이다.

이 대표는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사람과 설비에 집중했다. 설비에 대한 투자와 함께 비효율적인 작업내용을 바꾸자는 것이다. 그는 직원들의 퇴근까지 기다렸다가 공정별로 함께 저녁을 먹으며 머릿속 구상을 공유했다.

이 대표는 “내가 그림을 그리더라도 결국 주인(작업자)이 받아들여야 소용이 있다”며 “개선하고자 방향을 설명하고 의견을 물으며 교감했다. 가능하면 작업자들이 원하는 부분을 적용시켰다”고 말했다.

직원들과 의견을 나눈 시간만 3개월이다. 공장의 여러 부분이 바뀌다. 마모된 기계는 부품을 갈거나 아예 통째로 바꾸기도 했다. 작업공간 확보를 위해 과감하게 설비를 없애거나 옮기기도 했다. 특정 공정에서만 사용하도록 지계차를 구매해서 두 명이 나르던 자재를 혼자서 옮기도록 했다. 이 같은 개선을 통해 모보는 인당 생산량 20% 향상이라는 결과를 얻었다.

이 대표는 “직원들이 일하며 불편하다는 내용을 개선하고자 했다”며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생산성이 높아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가장 중요한 설비가 상시 운전될 수 있도록 1명의 직장과 2명의 반장이 대기하고 있다. 직·반장은 원래 설비운전을 하지 않았지만, 담당자가 빠질 경우를 대비해 기계 운전을 배웠다.

공장에 한 편에 걸린 플래카드.
공장에 한 편에 걸린 플래카드.

공장의 한 가운데, 작업자들의 동선이 가장 많이 겹치는 곳에 큼지막한 플래카드에는 ‘내가 다쳐도 될 정도로 중요한 일은 없다’라고 쓰여있다.

이 대표는 “생산이든 돈을 버는 과정이든 모든 일을 사람이 한다.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며 “사람에게 투자해야 그들의 능력이 발휘되기 때문에 복리후생에 신경 쓰며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오고 싶은 회사, 일하며 보람있고 재미있는 회사를 만드는 게 내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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