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는 ‘K배터리’ 반도체 아성 깬다
2025년 배터리 1600억달러, 메모리반도체 1490억달러 전망
자국시장 머물지 않고 中‧美‧유럽 등 주요 지역 과감히 진출
그린쉽 수요 시장 형성 기대, 안전 강화로 화재리스크 줄여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생산 설비.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생산 설비.

지난해 국내 배터리산업은 중국을 뛰어넘고 세계 1위 자리에 올랐다. 올해는 중국 업체들이 자국 시장을 바탕으로 무섭게 추격하고 있지만 해외 증설 라인이 본격 가동하면서 계속 1위 지위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그동안 중국, 일본 의존도가 높았던 소재, 부품 분야에서도 국내 업체들의 경쟁력이 한층 향상되면서 부가가치율도 더욱 높아지는 한 해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세계시장 과감한 진출과 투자, 1위 비결

전기차와 핵심 부품인 배터리 시장은 적어도 20년가량은 높은 성장이 예상된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세계 전기차 수요는 2018년 450만대에서 2025년 2200만대로 연평균 26%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른 배터리 수요도 2020년 126GWh에서 2025년 1257GWh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현재 세계 배터리시장의 패권을 쥐고 있는 곳은 우리나라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2020년 1~9월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점유율에서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이노베이션의 3사는 총합 35.1%로 중국(26.7%)을 제치고 1위를 기록했다.

중국이 세계 전기차 시장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실로 놀라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

국내 업계가 중국을 누르고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자국시장에만 집중하지 않고 중국, 미국, 유럽 등 주요 시장에 과감하게 진출한 영향이 가장 컸다. 때마침 미국과 유럽의 중국 견제로 중국 업체들이 해외로 진출하지 못한 것에 대한 반사이익을 봤다.

3사는 지속적인 투자를 통해 1위 자리를 놓치지 않겠다는 각오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18년말 35GWh였던 전기차 배터리 생산능력을 2020년말 120GWh로 대폭 늘린 데 이어 2023년까지 260GWh로 2배 이상 확장할 예정이다.

LG에너지솔루션의 최대 생산기지인 폴란드 공장의 생산능력은 65GWh로 단일 공장으로는 세계 최대를 자랑하고 있다. 미국 GM과 50대50 지분으로 설립한 배터리셀 합작사인 얼티엄셀즈는 2023년까지 30GWh로 건설 중이며 시장 상황에 맞춰 단계적으로 증설할 방침이다.

SK이노베이션 배터리사업은 서산, 중국, 유럽 공장에 총 28GWh 생산규모를 갖추고 있으며 2021년 41GWh, 2023년 85GWh, 2025년 100GWh로 확대할 예정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미국 배터리시장에 최대 50억달러까지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어 앞으로 미국시장에 대한 추가 투자가 전망되고 있다.

삼성SDI는 울산, 중국, 헝가리 공장에 총 20~25GWh 생산규모를 갖추고 있으며 헝가리 공장을 중심으로 증설을 진행 중이다.

전기차용 배터리 수요 전망. 자료: SNE리서치
전기차용 배터리 수요 전망. 자료: SNE리서치
◆전기차 배터리시장 2025년 1600억달러, 메모리반도체 넘어서

지난해 9월 23일 테슬라의 배터리데이 행사가 있기 전날 일론 머스크 CEO가 올린 트윗은 시장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일론 머스크는 “우리는 파나소닉·LG·CATL에서 배터리 공급을 늘릴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최고 속도로 공급해도 2022년이 되면 배터리는 심각하게 부족할 것이다”라고 적었다.

이는 전기차 시장의 성장 가능성도 무궁무진하지만 배터리 시장의 성장 가능성은 그보다 더 높다는 뜻으로 해석되면서 주식시장을 출렁이게 만들었다.

많은 기업가와 전문가들은 배터리시장이 빠르게 성장해 머지않아 반도체시장까지 넘어설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배터리 소재를 전문으로 생산하는 에코프로그룹의 이동채 회장은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단언컨대 배터리산업이 세계에서 가장 큰 산업이 될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은 전기차 배터리 시장이 연평균 25%씩 성장해 2025년에는 1600억달러(약 186조원)까지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2025년 1490억달러(약 173조원)로 전망되는 메모리반도체 시장보다 더 커진다는 것이다.

특히 배터리는 사용처가 전기차뿐만 아니라 다양한 모빌리티에 적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시장의 기대를 더 받고 있다.

예를 들어 세계 각국이 탄소중립을 위해 그린쉽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그린쉽에도 배터리가 적용될 것으로 예상되는 데 선박의 중량은 자동차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무겁기 때문에 어마어마한 양의 배터리가 필요하다.

최근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그린쉽 기본계획에 따르면 2030년까지 총 3단계로 나눠 연료 개발이 진행된다.

1단계는 LNG와 배터리의 하이브리드형, 2단계는 LNG와 암모니아 혼합형, 3단계는 수소 또는 암모니아형이다. 암모니아는 수소를 액체화하기 위한 것으로 결국 수소이다.

한 배터리 전문가는 “1단계 방식은 이미 자동차에서 상용화가 된 것이고 대형화 검증만 필요하기 때문에 상용화가 오래 걸리진 않을 것”이라며 “주요 방식으로 채택된다면 전기차 이외에 또 다른 수요시장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에코프로비엠의 전구체와 양극제 제품.
에코프로비엠의 전구체와 양극제 제품.
◆양극재, 리사이클링 등 소재산업도 성장

우리나라가 배터리시장 1위를 기록 중이지만 속 빈 강정이라는 지적도 받고 있다. 배터리에 들어가는 소재 대부분은 해외 수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배터리는 크게 양극재, 음극재, 분리막, 전해질로 구성된다. 이 가운데 양극재는 배터리 용량을 결정하는 핵심 소재로 원가의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양극재는 중간제품인 전구체와 리튬을 소성시켜 완성한다. 시장조사업체 QYResearch Korea에 따르면 세계 배터리 전구체 시장에서 한국의 소비 비중은 42%에 달하지만 생산 비중은 13.9%에 불과하다. 중국의 생산 비중은 75.8%로 우리나라도 대부분 중국에서 수입해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국내 업체들이 전구체 생산설비를 신설 또는 증설하고 있어 앞으로 전구체 국산화는 높아질 전망이다. 대표적으로 에코프로그룹의 전구체 전문 생산 계열사 에코프로지이엠은 현재 포항에 연 2만4000t 생산규모의 2공장을 건설 중으로 내년이면 같은 규모의 1공장까지 합해 연 4만8000t의 규모를 확보할 예정이다.

에코프로그룹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포항에 총 1조7000억원을 투자해 양극재 생산설비 증설, 리사이클 설비 신설도 진행하고 있다. 에코프로그룹은 이를 통해 5년내 매출 5조원을 달성하겠다는 계획이다.

양극재 업체 엘앤에프는 최근 NCMA(Ni90%) 양극재용 3단계 라인 건설에 총 2100억원 투자를 단행했다. 이를 통해 양극재 생산규모를 올해 3만t, 2021년 4만t, 2022년 8만t으로 늘릴 예정이다.

양극재, 음극재를 모두 생산하는 포스코케미칼은 최근 1조원의 유상증자를 바탕으로 2023년까지 6000억원을 투자해 양극재 6만t을 추가 증설하고 2030년까지 40만t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윤성빈 QYResearch Korea 대표는 “단순히 경제성 측면만 따진다면 중국산 전구체를 수입할 수 있으나 공급망 안정성을 감안하면 국내 자급도를 높일 필요성이 있다”며 “한국의 산업경제 차원에서도 전구체에서 양극재로 이어지는 이차전지 소재 밸류체인을 국내 주력산업으로서 전략적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장도 좋지만 안전 노력도 기울여야

배터리시장이 무섭게 크고 있지만 이와 동시에 우려되는 부분도 있다. 바로 배터리 화재다.

국내 업체 배터리가 탑재된 전기차에서 잇따라 화재가 발생하면서 세계적으로 총 20만여대가 리콜을 진행 중이다.

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가 탑재된 현대자동차의 코나전기차에서 국내외 총 14건의 화재가 발생하면서 7만5000여대 규모의 리콜이 진행 중이며, GM의 볼트에서도 화재가 발생해 총 6만8000여대 리콜이 진행 중이다.

삼성SDI 배터리가 탑재된 BMW와 포드의 PHEV(플러그인하이브리드)에서도 화재가 발생해 BMW는 총 2만7000여대, 포드는 3만여대 리콜을 진행 중이다.

SK이노베이션은 아직 별다른 화재 사고가 보고되지 않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는 차량 화재 원인이 배터리 결함 때문인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라며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내 배터리가 1위 자리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각국의 전기차 화재에 대한 안전규제가 강화되고 있는 점을 감안해 보다 안전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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