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조원 유류세 에너지전환 재원으로만 사용
정유, 탄소중립 이행하려면 막대한 투자 필요
한계주유소 늘고 있어 정부 폐업비 지원해야

SK에너지의 울산 정유설비 전경.
SK에너지의 울산 정유설비 전경.

정부의 강력한 에너지전환 정책으로 석유산업이 큰 타격을 받고 있는 가운데 에너지전환에 사용되는 재원이 다름 아닌 유류세에서 나오고 있어 모순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전문가들은 유류세가 석유산업에서 거둔 세금인 만큼 이를 석유산업의 에너지전환에 지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난 17일 온라인으로 개최된 2020 석유컨퍼런스에서 유승훈 서울과기대 교수는 “석유산업에서 거둔 연간 20조원의 유류세가 오히려 석유산업을 위축시키는 데 사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 교수는 “지난해 6월 수립한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에서는 석유화학산업이 2040년까지 가장 높게 성장할 것으로 예측하면서 이를 지원하기 위한 여러 국가계획이 담겼었다”면서 “하지만 엊그제(15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2050 탄소중립 비전이 명확히 실행된다면 석유산업은 더 이상 전통 플랜트에 대한 투자를 멈추는 게 맞다”고 말했다.

특히 유 교수는 유류세를 석유산업의 에너지전환에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석유산업이 탄소중립 비전에 맞춰 플랜트를 가동하려면 탄소 포집저장(CCS:Carbon Capture Storage)이나 탄소 포집활용(CCU:Carbon Capture Utilization)과 같은 감축 수단이 필요하다”며 “이 설비는 어마어마한 비용과 에너지와 부지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정부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 정부는 석유산업에서 연간 20조원의 유류세를 거두고 있지만 이를 석유산업 발전에 쓰지 않고 오히려 위축시키는 데 활용하고 있다”며 “석유산업이 에너지전환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유류세를 지원하는 정책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올해 3분기 누적 기준 정유업계의 영업적자는 총 4조원이 넘는다. 특히 정유업계는 현금성자산이 거의 바닥을 보이고 있어 에너지전환 등 신사업에 대한 투자가 어려운 실정이다.

정유업계뿐만 아니라 주유소업계도 에너지전환 피해를 보고 있어 정부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주유소업계는 석유 수요 감소로 수익성이 심각하게 악화돼 폐업 직전인 한계주유소가 늘고 있다. 하지만 지하탱크 철거 및 오염토양 복구 등에 필요한 2억원에 가까운 폐업비를 마련하지 못해 그대로 방치되고 있어 가짜석유를 제조 판매하는 온상지로 악용되고 있다.

주유소업계 관계자는 “주유소가 에너지전환 정책의 피해자이고 유류세를 석유산업에서 거두고 있는 만큼 이를 주유소 폐업비 등에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정유업계가 M&A에 적극 나서 시급히 사업 전환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달석 에너지경제연구원 박사는 “2014년 국제유가 하락기에 시작된 상류부문 투자 감소가 2021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돼 코로나 이후 유가 급등 시기가 한 번은 올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이는 에너지전환을 더 가속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손지우 SK증권 리서치센터팀장은 “정유업계의 신규 투자는 이미 한 발 늦은 것으로 보인다”며 “가스, 전력 등에서 M&A를 적극적으로 시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승훈 교수도 “정유업계가 전통 영역에 머물지 말고 혁신과 경쟁력을 갖춘 기업의 M&A 등을 통해 종합에너지 기업으로 탈바꿈이 필요하다”며 “그게 글로벌 석유메이저들이 보이고 있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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