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장비빨’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제조업 등 산업계 전반에 걸쳐서 뭔가 새로운 제품을 만들거나 연구개발할 때 연구자나 만드는 사람과는 관계없이 질 좋고 많은 생산을 하고자 할 때 현장이나 실무에서 흔히 하는 말들입니다. 이와 같이 기술을 필요로 하는 대부분의 분야는 장비나 장치의 덕을 많이 보게 되고 특히 4차산업시대를 앞두고 있는 현재는 더욱 요구되는 사항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것과 같이 이런 ‘장비빨’이 요구되는 건 산업과 연구 분야만은 아닙니다. 문화예술분야 전반에도 비슷합니다. 따지고 보면 미술의 역사는 장비나 재료의 역사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원시시대부터 가장 밀접하게 함께했던 미술이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즉, 사람이 가까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그리고자 하는 표현의 욕망과 어우러져 손에 닿는 모든 것이 미술의 도구였던 겁니다. 숯, 광물, 식물들의 특성을 살려 색을 내었고 바위와 벽에 그림을 그렸던 겁니다. 그러다가 중세 이후 성당벽면과 기념비적인 건물의 벽이 그림을 맞이했고 그래서 프레스코기법도 나오며 인간의 마음을 그려냈던 겁니다. 물론 유화물감 같은 혁신적인 채색기법이 일반화되면서 사람들이 미술을 더욱더 가깝게 접하게 됐고 이런 미술의 대중화는 캔버스가 일반화되면서 폭발적으로 성장하게 됐습니다. 근세에 이르러 사진이 발명되고 이를 미술의 영역에 받아들이면서 미술은 본격적인 미디어의 시대로 접어들게 되고 지금은 방송이나 컴퓨터를 활용한 뉴미디어가 일상화되게 됐습니다. 즉, 예술의 세계에도 본격적인 ‘장비빨’이 전면에 나서게 된 거죠.

이는 비단 회화의 부문만 국한된 것은 아니고 조각과 건축 등 전반적인 미술 분야에도 동일합니다. 초기에 흙 또는 돌을 정으로 쪼거나 손으로 뭉개서 만들던 조각은 철물이나 각종 소재가 대량 생산되면서 새로운 세계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미술 분야와 같이 시대의 조류와 밀접하게 변하지는 못했지만 음악 역시 크게 다르지는 않았습니다. 동물의 가죽이나 털을 이용한 북과 타악기에서 목재를 활용한 현악기로 발전하고 점점 관악기와 전자악기로 확장됐던 겁니다.

이렇듯 예술도 산업의 발전과 함께 출현하는 새로운 소재와 장비, 그리고 기술을 활용해 ‘장비빨’의 발전을 통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넓혀갔던 겁니다. 즉, 산업의 발전이 곧 예술영역의 발전과 함께 한 겁니다.

올해는 뜻밖에 예기치 않은 코로나바이러스의 영향으로 사회 각 부문이 ‘비대면 사회’를 강요당하고 있으며 문화예술계 역시 마찬가지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많은 사람이 모인 상태에서 청중을 대상으로 한 표현방식에 익숙했던 관행에서 벗어나 ‘비대면 방식’에서도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방법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강요당한 시간들이 당면할 4차산업시대를 재촉한 셈이 된 겁니다. 이로 말미암아 문화예술계도 작고도 새로운 도전과 실험이 연이어 이어지고 있습니다.즉 미래 산업으로 무장한 ‘장비빨’의 도움을 받아서 보다 개인화되고 디지털화된 새로운 형식의 예술장비들이 출현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대부분 악기나 그림을 그리는 화구 같은 소품이나 도구 중심으로 발전된 예술장비는 주로 이를 만드는 장인의 손길에 의존하였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예술을 즐기고 만드는 장비는 소위 문화기술에 의해서 이뤄질 전망이고 그 주축은 IT기술이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최근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원광연 이사장이 “앞으로 사람이 만들어내는 모든 창조물(Artifact)은 문화가 결합돼야 하며 이 모든 창조물의 DNA에 문화가 있어야만 부가 가치가 생긴다”며 문화와 기술의 접목을 강조했습니다. 앞으로 이와 같은 지속적인 노력으로 그동안 인류가 접하지 않았던 새로운 형식의 악기와 도구들을 만들어 새로운 음악과 미술을 접할 거라고 예상합니다. 인류가 코로나라는 어려움을 통해 더 나은 해답을 찾는 계기가 되길 기대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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