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선업계를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진퇴양난(進退兩難)’이라 답하겠다.

과거 건설 붐과 함께 전선공장이 우후죽순으로 늘어난 후, 현재는 수요보다 공급이 넘쳐나고 있다. 해외로 눈을 돌리려 해도 국내의 비싼 인건비 등의 이유로 현지업체들과 가격 경쟁에서 따라가는 게 쉽지 않다.

공급이 넘치니 가격은 내려갈 수밖에 없고, 생산이 적자로 이어지는 출혈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생존을 위해 적정한 가격선을 지키고자 의견을 나누자니 ‘담합’으로 몰릴까 무섭다. 그럼 담합수준의 의견교환 없이 적정한 가격대를 서로 지켜야 하는데 전선업계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고 보고 있다. 먼저 나서서 가격을 깎는 측이 이득을, 아니 손해를 덜 입기 때문이다. 공멸로 향해가는 방법을 택하는 곳이 있을까 싶지만, 최근에도 일어난 일이다.

내가 더 오래 버텨서 다른 기업이 망하면 이긴다는 생각에서 이뤄지는 선택이다. 문제는 그렇게 무너진 기업을 다른 곳이 인수해 살린다는 부분이다. 결국 공급의 총합이 줄어들지 않으며 지금에 이르렀다.

시장 논리대로 공급을 줄이고 수요를 늘리면 될 것이다.

해외로 눈을 돌리고 경쟁력을 키워온 몇몇 업체들은 코로나 시국에서도 흑자를 냈고 심지어 내년에는 더 높은 수익을 예상하고 있다. 다만 당장 다른 업체들이 해외 수출길을 뚫는 것은 어려운 일로 차근차근 준비해 나가야 한다.

수요가 당장 해결되지 않는다면 공급을 조절해야 할 것이다. 불꽃같이 회사를 키워온 과거에서 벗어나 적정량으로 생산을 줄이고 가격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세 번째 방법으로 자체 쇄신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는 방법도 있다. 수도권에 위치한 OEM 전문 기업은 약 1년 동안 생산 프로세스를 포함해 대규모의 혁신을 통해 연간 목표수익을 반년 만에 달성했다.

이 같은 방법들의 기본이 되는 것은 결국 상생에 대한 의지다. 상생정신을 대기업에만 강요할 게 아니라 중소기업 간에도 갖춰야 한다,

주식시장이 폭락했던 2015년 경제위기를 겪은 중소기업인들은 2016년 사자성어로 손자(孫子)의 ‘구지편’(九地篇)에서 유래된 ‘동주공제(同舟共濟)’를 선택했다.

‘같은 배를 타고 강을 건넌다’는 뜻으로 이해와 고난을 함께 극복하자는 의미다. 전에 없이 사나운 전선 시장을 건너기 위해 같은 배를 탄 전선업계가 힘을 모아야 할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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