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가 배달할 때 음식 국물이 흐르면 소비자든 가게든 회사든 난리가 나는데, 노동자들이 피를 흘리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근본적인 원인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10월 20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나온 얘기다. 근로복지공단과 산업안전보건공단을 비롯한 고용노동부 산하기관을 대상으로 한 이날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라이더유니온 박정훈 위원장은 음식을 배달하다가 사고로 다치더라도 보호받지 못하는 라이더들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전했다.

“(배달앱에는) 배달해야 하는 시간이 (직선거리 기준으로 계산해서) 2분으로 적혀있는데, 실제로는 산이 있어서 9분 정도 걸려서 돌아가야 합니다. 제가 무슨 드론도 아니고 저 산을 (날아서) 넘을 수도 없는 상황인데 저 배달시간 제한을 지키지 않으면 (배달앱의) 시간표시가 빨간색으로 바뀌기 때문에 난폭운전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배달 라이더들이 교통신호 위반과 위험한 질주로 운전자와 보행자를 위협하고 도로의 무법자로 비난받는 이면에는 1분 1초를 재촉하는 배달시간 제한이 도사리고 있음을 고발한 것이다. 플랫폼 기업이 등장하면서 소비자들은 음식을 빠르고 편리하게 주문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 음식을 배달하는 라이더들은 음식이 어디쯤 오고 있는지 현재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스마트폰 앱 상의 아이콘으로 표시될 뿐이다. 사고가 나서 다치더라도 고객센터는 라이더의 안전보다 음식의 상태를 먼저 묻는다.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의 여파로 식당과 카페, PC방과 노래방 같은 매장들은 문을 열지 못해 텅텅 비었고 폐업이 속출했지만, 비대면 온라인 주문이 증가하면서 택배와 음식 배달 물량은 늘어났다. 기업에는 호황이겠지만 업무량이 폭증하면서 택배 기사들의 안타까운 과로사 소식이 하루가 멀다 하고 이어지고 있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사망한 택배업계 종사자는 총 12명이다. 매일 14~15시간이 넘도록 강도 높게 일하면서도 제도적 보호의 사각지대 바깥에 남겨져 하루하루를 말 그대로 ‘갈아넣던’ 이들의 희생은 구조화된 죽음이고 사회적 타살이다.

음식 배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 여파에다 유난히 길었던 장마와 폭우까지 겹쳤던 지난 여름, 배달음식 수요는 폭증하자 라이더 부족 현상이 발생했다. 여기에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려는 배달 플랫폼 업계들의 공격적 출혈 경쟁이 벌어지면서 아주 잠시나마 배달료가 일시적으로 올랐던 적이 있다. 언론에서는 갑작스레 오토바이로 음식을 배달하는 라이더가 연봉 1억 원을 받게 되었다는 둥, 가정주부들까지 고소득을 올리기 위해 라이더 대열에 합류한다는 둥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나 라이더들의 배달료는 곧바로 떨어졌고, 오토바이 교통사고는 부쩍 늘었다. 사고가 난 라이더들은 대부분 배달에 뛰어든 지 얼마 안 된 초보들이었다.

집에서 편안히 택배를 받고, 음식을 주문하는 소비자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언론에서 잘 다루지 않는 이면에서 택배 기사들과 배달 라이더들은 하루하루 전쟁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밤늦게, 혹은 새벽에 택배 도착 문자를 처음 받았을 때는 당황스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오히려 너무 익숙해져서 무감각해진 것 같다. 이른 아침 출근 전에 받을 수 있도록 아예 새벽배송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지만, 야간 노동이 근로자들의 건강에 얼마나 해로운지 심각하게 다루는 언론은 드물다. 라이더들이 어떤 위험한 근로 환경에서 달리고 있는지, 일하다 다치거나 죽는 라이더가 얼마나 많은지는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다. 소비자로서 빠르고 편리한 서비스를 값싸게 누릴 수 있는 ‘혁신’의 진짜 비결이 그들의 눈물겨운 희생 위에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택배와 음식배달 노동자는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업무 특성상 재택근무를 할 수 없고 대면 노동을 해야 하는 “필수노동자”라고 한다. 국민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전달하고 영양을 공급하는 우리 사회의 혈관과 같은 사람들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이제야 비로소 이들을 최소한이나마 보호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한다. 특수고용직 노동자(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산재보험 의무가입 원칙을 지난 14년 동안 사실상 무력화시켜온 ‘적용제외 신청’ 제도를 폐지하겠다고 나섰다. 아무쪼록 이번 기회조차 놓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청년 노동자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외치고 분신한 것이 꼭 50년 전이다. 과전류가 흐르면 화재 사고가 난다. 더 늦기 전에 예방해야 한다.

프로필

▲성균관대 일반대학원 박사 과정 수료(노동법 전공) ▲라이더유니온 정책국장 ▲전 국회의원 비서관 ▲(사)노동법이론실무학회 이사 ▲<플랫폼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 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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