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로봇’이라는 단어가 세상에 등장한 지 꼭 100년이 되는 해이다. 1920년 체코 극작가 카렐 차페크는 한 희곡을 발표하면서 ‘강제된 노역’, ‘고된 일’을 의미하는 ‘로봇’을 처음 사용하였다.

단어가 전하는 의미 그대로 로봇은 인류의 고된 노동을 대신하며 산업 발전에 이바지해 왔다. 국제로봇연맹(IFR)에 따르면 노동자 1만명당 사용되는 산업용 로봇 지수인 ‘로봇 밀집도’에서 한국은 2018년 기준 8년 연속 세계 1위(718대)를 유지하고 있으며, 싱가폴과 독일이 뒤를 잇는다. 세계 경제순위 12위(2019년, GDP 기준)에 로봇이 기여한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최근 코로나19발 팬데믹으로 인한 미증유의 사태에 전 세계는 다양한 실험대에 올랐다. 한국은 한때 중국에 이어 가파른 확진자 추세를 보이다 ‘K-방역’이라는 신조어가 나올 만큼 체계적 관리를 통해 전 세계 방역 선진국으로 부상했다. 또한 재택근무와 원격수업을 무리 없이 소화해내며 ICT 강국임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전 세계 로봇 밀집도 1위 국가답게 로봇을 활용한 방역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미국의 서비스 로봇 제조 강자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4족보행 로봇 ‘스팟’에 환자와 의료진이 비대면으로 원격진료를 수행할 수 있는 서비스를 선보였다. 중국은 코로나가 대유행이 시작된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병원, 거리를 자율주행하며 방역하는 로봇을 선보였다. 거리에 마스크를 쓰지 않거나 고온이 의심되는 사람을 찾아내 경고하는 드론도 발빠르게 내놓았다.

전 세계가 인정한 우리나라의 방역체계와 의료시스템에 로봇을 활용한 원격진료 및 비대면 서비스가 더해졌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멈추지 않는다.

우리나라 로봇 생태계는 제조업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2019년 기준 IFR 보고서에 의하면 전 세계 로봇 시장 규모는 294억달러로 제조로봇과 서비스 로봇이 차지하는 비율은 각각 56%, 44%로 집계됐다. 반면 우리나라는 전체 로봇 시장 규모에서 서비스 로봇이 차지하는 비율이 11.5%에 불과하다.

반도체, 자동차 등 수출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경제 구조상 제조로봇의 비율이 높은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 세계 로봇 시장 흐름에 비해 서비스 로봇 분야 비중이 너무 낮다는 것이 중론이다.

다행인 것은, 최근 정부의 로봇분야 규제개선 및 지원정책에 힘입어 다양한 서비스 로봇 개발 움직임이 활성화 되고 있다는 것이다. 고령자·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지원하는 돌봄·재활로봇과 자율주행 기반 물류배송 로봇 등이 가파른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에너지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한전KDN은 에너지ICT 공기업으로, 고위험·단순반복 작업에 노출된 작업자의 업무를 대체할 수 있는 로봇을 연구 개발하고 있다. 로봇을 개발하고 운영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기술이 접목되어야 한다. 로봇을 구성하는 고성능 부품부터 이를 제어하는 실시간 제어시스템, 주변 환경을 인지하고 경로를 탐색하는 자율주행기술, 인간의 판단을 대신하는 인공지능 기술까지 말 그대로 최신 기술의 집약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이러한 로봇 기술은 작업자의 안전을 강화시킬 뿐만 아니라 설비 진단 업무를 지능화하여 보다 안정적으로 전력시스템을 운영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다.

선진 방역체계로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대한민국은 이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의도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코로나 팬더믹은 로봇 기술 개발 속도를 가속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서비스 로봇 기술 보유 강국으로 자리바꿈하기를 기대해 본다.

한전KDN 미래에너지사업처장 한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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