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락 에너지산업MD의 월요객석)캘리포니아 반면교사(反面敎師)
작성 : 2020년 09월 28일(월) 14:34
게시 : 2020년 09월 29일(화)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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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락 산업통상자원 R&D 전략기획단 에너지산업MD

지난 8월 14일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또다시 대규모 정전사태가 발생했다. 19년 전에 이미 엄청난 혼란을 한번 경험한 바가 있다. 1990년대 후반 캘리포니아 주 의회는 이웃 주들에 비해 30~50% 높은 전기요금을 낮추기 위해 전력시장 경쟁제도 도입을 승인하였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수익을 올리기 위한 발전회사들의 담합으로 도매가격이 급속히 인상되었다. 이를 견디지 못한 PG&G, SCE 등의 전력회사들이 채무불이행을 선언하자 발전회사들이 전력공급을 중단하여 2001년 1월에 대규모 정전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당시의 상황이 인재(人災)였다면, 이번엔 천재(天災)에 인재(人災)가 겹쳤다. 캘리포니아 지역은 예년보다 20℃나 오른 70년 만의 폭염으로 인한 냉방부하 증가로 전력수요가 급격히 증가했다. 전력망이 연결되어 있는 애리조나주 등 인근 주로부터 전기를 공급받을 수 있지만 다른 주도 전력 수요가 폭발적이라 남의 형편을 살필 여유가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비상수단이었던 가스발전소 한 곳도 불시에 정지된 상황이었다. 캘리포니아 주는 냉각수로 인해 해양환경이 오염된다는 이유로 지난 10년간 11GW규모의 가스발전소를 폐지해 오고 있었기 때문에 비상 시 동원 가능한 가스발전 자원이 충분하지 않았다. 바람마저도 충분히 불지 않아 수천 개의 풍력 터빈은 멈춘 상황이었고, 태양광은 해질 무렵 냉방부하를 충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재생에너지 변동성 문제를 대비해서 2019년 이후 대규모로 보급된 ESS를 방전하였으나 전력 공급능력이 충분치 않아 비상 상황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재생에너지 보급에 있어서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이고 진보적이었던 캘리포니아가 천재(天災) 상황에서 알고도 꼼짝 없이 당한 꼴이다.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 속도와 가스발전소 폐기 속도를 동기화 시키고, ESS 보급을 좀 더 빨리 확대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이미 흘러간 옛 노래가 되어 버렸다. 예측 불가의 수요급증이 천재(天災)였다면 대처 가능한 공급 예비력 부족은 인재(人災)였다.
남의 예기가 아니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 우리나라도 반면교사(反面敎師)할 일이다. 지구온난화로 남태평양 바닷물이 끓어올라 잉태된 태풍이 매주 한반도로 쳐들어오는 등의 천재(天災)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일상이 될 것이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2030년 20%, 2040년 35%로 증가되더라도 이를 안정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선제적이고도 다면적인 대비가 필요하다. 그 핵심은 재생에너지 발전의 특성인 변동성 문제 해결이다. 재생에너지 비중확대 초기에는 변동성 문제로 전력공급이 수요를 따라 가지 못할 경우를 대비하여 추가적인 유연발전 수단이 동원되어야 한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커지면 잉여 발전량을 저장하여 전력공급이 부족할 때 사용가능한 에너지 저장 장치들이 동원되어야 한다. 지역적으로도 전력 공급의 사각지대가 없도록 전국이 유연한 전력망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유연발전 수단으로는 신속한 시동이 가능하고 부하 추종 성능이 우수한 가스발전이 가장 좋다. 가스발전을 유연발전 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현재 급전 우선순위 확보가 어려워 폐기를 고려하고 있는 노후 가스발전소들을 동원가능 하도록 전력 거래 제도를 미리 고쳐 두어야 한다. 현재 국내에서 동원 가능한 에너지 저장 수단으로는 소규모 배터리 기반의 ESS와 대규모 양수발전이 있다. 그러나, 어느 경우도 현재 수준으로는 다가올 재생에너지 시대에 능동적으로 대응 가능한 수단으로서는 턱없이 부족하다. 배터리 중심의 화학적 에너지 저장장치와 함께 양수발전, 열에너지 저장장치 등 다양한 비화학적 에너지 저장장치의 활용 확대를 위한 포트폴리오적 접근이 필요하다. 그린수소도 훌륭한 에너지 저장 수단이다. 기존의 중앙 집중형 전력공급 시대에 설계된 국내 전력망도 재생에너지 시대에 적합한 분산형 구조로 재설계되어야 한다. 재생에너지 발전 밀집지역으로 부터의 원거리 송전보다는 인근 지역 전력 수요 창출을 위한 산업단지 분산배치와 같은 국가적 설계도 필요하다. 궁극적으로는 이웃 국가들과의 전력망 연계로 현재의 에너지 고립섬 상황도 해결되어야 한다. 하나 하나가 모두가 중요하지만 전체를 엮어 퍼즐을 맞추어 완성시키는 시스템 통합 차원에서의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지구온난화는 이젠 더 이상 다음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세대의 생존 문제가 되어 버렸다. 화석연료 의존을 줄이고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를 위해서는 가용한 수단들을 총 동원하여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 캘리포니아 정전사태는 실사구시(實事求是) 차원에서 반면교사되어야 한다. 알면서도 준비를 못한다는 것은 역사 앞에 죄를 짓는 것이다.



프로필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BK21교수 ▲한국기계연구원 가스터빈연구센터장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비상임이사(겸직) ▲한국형 표준 가스복합 발전사업 추진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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