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경제칼럼니스트 한국경제언론인포럼 회장
김상철 경제칼럼니스트 한국경제언론인포럼 회장

일본 아베 총리가 물러난다. 우리나라에서는 아마 가장 인기가 없는 일본 정치인 중의 한 사람이겠지만 사실 누가 뭐래도 그는 성공한 정치인이다. 2006년 첫 번째 집권 때에는 전후 최연소 총리였고, 2012년 두 번째 집권해서는 일본 역사상 최장기 집권 총리가 됐다. 그렇게 하고 싶었다는 개헌은 성공하지 못했다고 하지만, 민주화된 한국의 어떤 대통령보다 오래 집권했고 재정개혁을 위해 소비세도 10%로 올렸다. 다른 총리는 엄두도 내지 못했던 일이다.

최장기 재임의 원동력은 역시 경제였다. 아베 총리가 2012년 12월 2기 집권에 성공해서 내건 공약은 디플레이션 탈출이었다. 이른바 '잃어버린 20년'에서 벗어나겠다는 것이었다. 공격적 통화 살포와 재정 확대, 구조개혁이라는 이른바 세 가지 화살로 표현되는 아베노믹스는 한때 성공하는 듯 보이기도 했다. 아베 총리가 2012년 11월 총선 출마를 선언한 이후 불과 4개월 만에 도쿄증시의 닛케이225지수는 40% 올랐고, 달러 대비 엔화 가치는 20% 떨어졌다. 수출 기업들은 사상 최고 실적을 기록했고 증시의 활력이 경제 전반으로 번지기 시작하면서 고용시장은 최대 호황을 맞았다. 아베 총리는 70%가 넘는 최고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하지만 아베노믹스의 성공은 여기까지였다.

지금 일본 경제는 아베 총리 이전의 상황으로 돌아왔다.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지난 2분기 연속 0.1%로 3년여 만에 최저치에 머물렀다. 2분기 성장률은 전기대비 –7.8%였는데 3분기째 마이너스 성장이다. 지금의 상황이 이어지면 연간 성장률은 -27.8%로 1955년 이후 최악이 될 것이라고 한다.

논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베노믹스 8년에 대한 평가도 부정적이다. 우선 스스로 내세웠던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 아베 정부는 당초 2년 안에 2% 인플레이션 목표를 이루겠다고 약속했다. 성장률도 2%로 끌어올리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둘 다 달성하지 못했다. 집권 기간 내내 물가상승률은 1%에도 근접하지 못했고 성장률은 평균 1% 남짓했다. 실업률은 2%대로 떨어졌지만, 임금은 오르지 않는 고용 증가였다. 그동안 빚은 엄청나게 늘었다. 아베 집권 기간에 일본은행이 사들인 자산은 4조5천억 달러 규모에 이른다. 일본은행이 사들인 국채만 국내총생산 규모와 비슷하다. 일본 정부는 현재 GDP의 240% 가까운 빚을 지고 있다. 일본은 2025년까지 기초재정수지를 흑자로 만들겠다고 했지만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아베 총리의 퇴진으로 아베노믹스도 이제 막을 내린다. 아베노믹스가 실패로 끝나는 것은 결국 아베노믹스의 한계 때문이다. 지난 8년 동안 실제로 일본이 한 일은 돈을 풀고 엔화 가치를 떨어뜨린 것뿐이다. 혁신은 이뤄내지 못했다. 일본의 낡고 보수적인 행정 시스템은 여전히 그대로여서 긴급재난지원금 지급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아베노믹스는 구조개혁을 포기하면서 근본적으로 체질을 개선하기보다는 단기적으로 효과가 있는 진통제가 되었다. 중요한 것은 아베노믹스가 남긴 교훈이 아닌가 싶다. 금융완화와 재정 확대만으로 경기를 살리는 일은 한계가 있고 결국 정말 필요한 것은 제도 개혁과 구조조정이라는 사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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