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세월호 사태가 발생했을 때 정부는 승객 구조의 실패 책임을 해양경찰청 해체로 물게 했다. 해경의 시스템적 문제를 해소하는 대신 해체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정부의 선택은 아직까지도 웃음거리로 남았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해경의 사례를 들어 조직이 해체될 수 있다는 농담이 여전히 나오기 때문이다.

에너지저장장치(ESS)를 두고 업계는 해경의 사례가 다시 반복되지 않을까하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 2017년 첫 화재가 발생한 이후 ESS 가동 중단조치에 이어, 가동률 제한, 특례요금제 폐지, 태양광 ESS에 대한 REC 가중치 일몰 등 지속적으로 ESS 시장의 사기를 꺾어버릴 내용의 정책만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ESS가 전력망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 이는 틀림없이 초기 정책 설계가 잘못됐기 때문이다. 산업계와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초기 정책이 배터리 회사를 중심으로 짜여진 것이 실패의 중요한 이유라고 꼽고 있다.

얼마나 보급하느냐에만 초점이 맞춰졌지 어떻게 운영하느냐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는 것.

이 같은 상황에서 정부의 선택은 민간 ESS 시장을 포기하는 것으로 보인다. 마치 해경을 해체했듯이 ESS 역시 없던 것으로 만들고자 한다는 느낌이다.

그러다보니 정부의 ESS 정책을 믿고 시장에 뛰어든 사업자들은 저마다 큰 어려움에 놓여 있다. 그동안 적극적으로 ESS 사업을 추진했던 여러 기업들이 사업부서를 축소하거나 없애버리는 지경에까지 놓인 것이다.

업계가 “이러다 다 죽는다”며 앓는 소리를 내는 것도 당연하다.

분명한 것은 그린뉴딜을 통해 재생에너지를 확대하고, 분산전원을 통해 안정적인 전력망을 구축하겠다는 정부 계획에 ESS는 반드시 필요한 요소다.

첫 단추를 잘못 끼웠으면 처음부터 다시 고쳐나가면 된다. 첫 단추가 잘못 됐다고 옷을 벗어버릴 필요는 없다. ESS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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