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는 우리의 일상은 물론 기업 활동과 정부 역할 등 모든 것을 변화시키고 있다. 특히 글로벌 이동 제한과 경제활동 중단으로 에너지 수요가 크게 감소했다. 하루 1억 배럴 수준이던 세계 석유수요는 지난 4월 무려 2000만 배럴이나 급감했다. 유례없는 수요 붕괴로 연 초 배럴당 70달러에 육박하던 국제유가는 같은 달 10달러대까지 하락했다. 이후 경제 활동 재개 등에 힘입어 회복세를 보이고는 있지만, 수요 붕괴 및 유가 급락은 석유업계에 충격을 주면서 사업 전략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BP 등 유럽계 석유회사들은 에너지 전환 추세를 고려해 신재생 에너지 등으로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려 하고 있다. 석유사업을 주요 사업으로 이어가되 그 비중을 축소하고 신재생에너지 분야로 투자를 늘려가겠다는 전략이다. 코로나19 이후 석유시장이 보여준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사업 다각화를 통해 위험을 분산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엑슨모빌 같은 미국계 석유회사들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이들은 이번 위기 국면이 진정되면 석유시장은 안정을 되찾을 것으로 본다. 석유에 기반한 산업구조와 생활 패턴이 급격히 변화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석유에 집중하는 사업 구조를 유지하려 한다.

이러한 전망은 일반적인 인식과 다소 상충하는 면이 있다. 일상에서 전기차를 쉽게 볼 수 있으며 태양광 발전 시설도 늘고 있다. 이렇게 신재생에너지가 확대되면 석유소비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신재생에너지는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發電) 용도로서 활용 가능할 뿐 석유처럼 하늘과 바다에서 연료로 다양하게 사용될 수 없다. 풍력과 태양광으로 전기를 공급할 수 있어도 그것이 항공기나 선박의 연료가 될 수는 없다. 전기차는 아직까지는 소형·단거리 용도로 활용이 가능할 뿐이다. 문제는 운송용 연료의 대부분은 소형 승용차가 아니라 대형 화물차와 대형 선박, 항공기 등에서 소비된다는 것이다. IEA는 2030년까지 전 세계 승용차의 10%가 전기차로 대체된다고 해도 석유수요의 1.2%만을 전기로 대체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러한 이유로 에너지 전문기관은 전체 에너지원 중 석유의 비중이 향후 20년간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전망한다. IEA는 현재 31% 수준인 석유의 비중이 2040년에도 28% 정도로 유지될 것으로 본다. 현재 약 11%인 신재생에너지 비율은 2040년 17% 수준으로 늘어나지만, 주요 에너지원이라 보기에는 작은 수치이다. 더군다나 석유 용도 중 약 20%는 석유화학제품의 원료로 사용된다. 신재생에너지는 에너지원으로 사용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섬유, 플라스틱, 화장품 그리고 아스팔트 등의 재료가 될 수 없다는 점에서도 석유의 쓰임은 오래갈 수밖에 없다.

또한 산업, 교통, 항만 시설 등 인프라는 모두 석유, 가스에 맞춰져 있다. 에너지 전환은 국가 기반시설의 전면적인 혁신을 요구한다. 에너지 전환을 한다는 것은 화력 및 원자력 발전소 등이 교체돼야 하고 에너지원을 저장하는 시설과 에너지를 사용하는 교통수단 등도 바뀌어야 하는 역대 최대의 프로젝트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앞으로도 상당 기간 석유는 주종 에너지원으로서의 역할을 지속할 것이다.

이러한 석유의 역할과 관련하여 주목할 점이 있다. 바로 석유의 공급이다. 석유수요가 회복될 경우 석유공급에는 문제가 없는 것일까? 유가가 폭락하자 미국 셰일 업체들의 파산 신청이 이어지고 있고, 석유회사들은 석유개발 분야에 대한 투자를 대폭 축소하고 있다. 개발에서 생산까지 장기간이 소요되는 석유사업 특성상 투자 위축이 바로 공급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해도 시차를 두고 수급에 영향을 준다. 투자 감소는 미래의 공급 감소로 이어져 수년 후 수급 불균형에 따른 유가 상승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코로나19로 인한 국가 간 무역 제한 등으로 에너지 안보는 더욱 취약해질 수 있다. 따라서 원유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로서는 국가 에너지 자원에 대한 생산능력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의 중요성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유가 등락에 얽매이지 않고 국내 석유·가스개발 사업에 꾸준히 투자함으로써 미래에 대비하는 것도 요구된다. 특히 국내 대륙붕 개발은 지리적 장점으로 인해 경제성이 탁월하고 즉각 활용할 수 있으며, 개발 역량도 축적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큰 관심이 필요하다. 이렇듯 상황 변화에 흔들림 없이 장기적인 시각에서 석유 자원의 안정적인 확보에 집중하면서, 코로나19로 인한 미래 에너지 수급의 불확실성과 불안정한 유가 변동의 파고에 대비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한다.

프로필

▲동국대학교 행정학과 ▲연세대학교 경제학 석사 ▲서울대 경영대학원 공기업 최고경영자과정 이수 ▲한국석유공사 석유정보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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